강남 포교원은 80년도의 소위 10.27 법난이란 불교계 최악의 비극적 사태를 반성적 기점으로 82년 9월 7일 개원하였다.
1,600여년의 긴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이 땅의 불교가 외부 세력에 의해 한순간에 송두리째 유린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제 이 땅의 불교는 안일한 긴잠에서 깨어나 여사 안에 자기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절박감에서 출범하였다. 그 엄청남 비극적인 사태를 경험했으면서도 다시 태어나려는 노력이 종단적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개인적으로라도 어떠한 시도를 해보아야겠다는 신념에서, 당시의 열악한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도전한다는 일념으로 도심지에 개척 포교당을 열었다. 그것은
하나의 모험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불교 운동을 전개한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세우고 않을 수 없었다.
첫째, 가장 붓다다운 불교인 근본 불교사상을 전개한다.
둘째, 오늘 우리 불교 안에 자리잡고 있는 비불교적 요소들을 배격한다.
셋째, 불교 경전과 의식을 한글화 한다.
넷째, 요일 중심의 정기 법회를 정착시킨다.
다섯째, 사원 운영을 신도 중심으로 공개한다.
여섯째, 불자의 정예화를 위해 소그룹 중심으로 교리 공부를 철저히 시킨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출발하였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아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근본불교 사상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지지 않아 법회 자료를 준비하는 데 쫓겨야 했고 불교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비 불교적 요소들을 지적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이끄는 작업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 씨가 지적하였듯이 불교인들이 매달리고 있는 미신적 사고의 굴레는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그대로 였다.
포교는 단순히 많은 사람을 법당으로 이끌어들이는 작업만이 아니라 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타협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교와는 관계없는 입춘, 칠석, 동지 등을 무시해 버리니 재정의 궁핍을 당했고, 초하루, 보름이나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을 기도 없이 보내니 기존의 불자중에는 심한 이질감으로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약간의 곤란을 겪더라도 그러한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성공적인 포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점차 모든 법회는 음력에 관계없이 수요일과 일요일로 정착되어 갔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벗어나게 되었다. 세시풍습이나 음력 기도일을 거부한 대신 부처님 오신날,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 그리고 우란분절만은 요일에 관계없이 특별법회를 열었고, 이날이 평일일 때에는 야간에 모임을 가졌다. 특히 일년에 한번 수계일을 부처님 출가일로 정하여 수계의 의미를 부여했고, 온가족의 축하 속에서 수계식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420명의 수계자가 있으니 한해에 60명 정도가 불자 되기를 새롭게 서원하고 약속한 셈이다. 때로는 왜 방생을 가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지만, 오늘 우리 시대의 방생은 물고기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보다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설득하면서 장학회비제도를 개설하여 그 회비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포교원의 재정운영을 신도회에 일임하고 매월 첫 번째 정기법회 때에 그 결과를 공개토록 하고, 나는 법회와 교리 교육에만 힘써 왔다. 때로는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법문을 듣자는 일부 신도의 요청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바라거든 그런 곳을 찾아가서 들으라고 했다.
만 7년이 지나도록 외부 법사를 초청하지 않고 정기법회를 이끌어 오는 과정에서 내 스스로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상을 마주하여 설법을 하자니 그 준비를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귀찮게 여겨졌지만 법회 자료를 정리하고 원고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이 「불교근본교설」,「반야심경의 세계」,「설」그리고 「말씀 1,2」라는 책들이다. 많은 시각의 변화로 언제인가 다시 고쳐써져야 할 것들이지만 소중한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소그룹 중심의 교리 공부는 주로 야간에 실시되며, 가장 붓다다운 불교사상에 눈뜨기 위해 수타니파타나 아함경전들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기본적 시각은 강의를 하고 참가자 각자가 자기가 맡은 부분을 읽고 정리하여 발표하도록 하고 있다. 가르친다고 하기보다는 서로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나 역시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이 적지 않았다.
벌써 강남포교원이 문을 연 지 만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의 건물에 임대하여 살고 있으며 신도의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니 외형적으로는 이렇다 할 발전이 없다. 포교의 결과에 대해서도 아직 평가를 내릴 시기도 못 되었다고 본다. 포교원을 통해 처음으로 불자가 된 사람들은 주로 학생이거나 젊은층이었으므로 7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은 그들이 포교원의 실질적인 주축으로 자리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신도들 가운데도 포교원을 통해 처음으로 불자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 수효가 절대다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막연하게나마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다가 포교원에서 교육을 받고 신도로 정착하였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포교한 것이 아니라 재교육한 사람들일 뿐이다. 포교당운동은 사람을 모이게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비불교인을 불교인으로 귀의시키는 교세확장 운동이다. 도심지에 법당을 마련하고 이미 인연맺고 있는 불교인을 이끌어들이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교세 확장이 아니라 결국은 제 살 뜯어먹기의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한 사람의 비불교인이나 불교에 대한 배타적인 견해를 가졌던 사람을 불교 안으로 이끌어 들여 신념있는 불자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포교는 인내가 필요하고 열정이 쏟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작업이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사문이 되었기 때문이요, 이 땅의 불교사가 그것을 우리에게 역사적 사명으로 짊어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회피해서는 불교의 중흥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