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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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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2년 10월 8호
뜻에 맞는 친구와 마주 않아 얘기를 나눈다면, 그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하나 임이 분명하다. 의견이 다르고 하는 일이 같지 않은 이웃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하나이다.
얼마 전 태고종과 조계종의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동안 원만치 못했던 관계를 대화로 풀어보려는 노력은 바람직하고 환영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걱정의 소리 비난의 말이 섞여 들리고 있으니 저으기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화합이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일에 뜻을 같이하고 행동을 함께한다는 의미이겠다. 이 말과 어감은 비슷하지만 그 뜻은 전혀 다른 말이 있다. 야합이라는 말이다. 떳떳하지 못한 일에 합세하라고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뜻에서 이다.
걱정의 소리 비난의 말 속에는 바로 화합이기를 바라고 야합이 아니길 비는 마음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양 종단의 대화가 재산분배나 다른 이권 때문에 이뤄진다고 생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화합이 아니고 야합이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지나간 일들을 되집어보고 새롭게 앞날을 모색해 보자는 의도 때문에 자리를 함께 하지 그야말로 돈과 이권에 관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믿고 싶다. 그것이 야합을 지양하고 화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키 때문이다.
도둑이 훔친 물건을 좋은 일에 썼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설사 좋지 못한 방법으로 돈이 만들어진들 그게 어떻게 바로 쓰여지리라고 기대하겠는가? 그것이 적지 않은 돈이라고해서 어찌 한 종교의 양심에 값할 수 있겠는가?
어렵사리 마련된 양 종단 간의 대화가 항간에서 떠도는 걱정과 의심을 명백히 없애주고 모두가 바라는 바대로 노력하는 종교 성장해가는 종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종교의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도 중요시해야 한다.
종교의 생명은 양심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