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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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을 생각하며 - 김정만
1993년 12월 142호
큰스님을 친견한 것이 1967년 봄이었습니다.
큰스님에 대해서는 1960년쯤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이 계시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친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 큰형님이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여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에 큰스님을 뵙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형님을 통하여 큰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나도 친견하기를 원하여 함께 가기로 약속하였습니다. 1967년 봄 어느 토요일 오후, 큰형님과 나는 점촌에 있는 김용사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큰스님 방으로 가서 삼배를 올리고 처음 뵈었습니다. 스님을 뵙는 순간 번쩍이는 안광이 나를 압도하였습니다. 나는 저절로 귀의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큰스님이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오라고 하셔서 형님과 저는 저녁 공양을 하고 여섯 시쯤 삼천배를 하려고 법당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성냥개비 서른 개를 놓고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삼천배가 그렇게 어렵고 힘이 드는지 몰랐습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으나 겨우 겨우 삼천배를 마치니 시간은 새벽 네시쯤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법당에서 내려와 방에서 얼마 동안 쉬고 난 뒤 큰스님을 뵈러 갔습니다.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니 수고했다며 화두와 법명을 조그만 종이에 써서 주시곤 자상하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화두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암호와 같으니 뜻으로 찾지 말라고 하시며 참선하는데 병이 되는 경우를 일러 주셨습니다.
제가 불교를 믿게 된 것은 외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옴마니 반메 훔’을 염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일학년때인 1955년에 종로 삼가 대각사에서 소천스님의 금강경 설법을 듣고부터 더욱더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1967년까지 여러 큰스님들이나 법사들의 설법을 듣기는 하였지만 참선은 상근기를 위한 것으로만 알았지 저 같은 하근기는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서 화두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큰스님께서 참선하라시며 화두를 주시니 매우 흥분하여 선처 받은 사람과 같은 생각도 들어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사실 큰스님을 호랑이라 하며 무섭다고들 하지만, 공부에 대하여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큰스님 말씀을 거역하지만 않으면 매우 인자하게 대해 주시고 특히 공부에 대해서는 자상한 가르침을 주신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따라서 그때부터 되거나 말거나 조금씩 좌선하는 기회를 가지려고 했고, 마음에 번뇌가 생길 때는 가까운 사찰에 가서 부처님께 절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님을 두 번째로 뵌 것은 1967년 여름 휴가 때 동생과 함께 백련암으로 갔을 때였습니다. 큰스님께서 해인사 방장으로 추대된 직후였는데, 많은 대학생들이 모여 여름 수련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이 대학생들에게 법문을 하셔서, 저도 곁다리로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 무렵은 지금처럼 큰스님의 설법을 쉽게 들을 수 있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요즈음은 큰스님의 설법집도 나와 있고 여러 법사님들이 큰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설법을 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때를 계기로 불교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큰스님에게 큰 은혜를 입게 되었음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큰스님의 가르침을 확실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인생을 사는 목적이 불교 수행에 있다는 생각과 나름대로 확실한 불교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행동은 큰스님의 가르침에 얼마쯤 비슷하게라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답답해하며 언제나 큰스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이십여 년이 지나 큰스님 열반을 맞이하였으니 세월의 무상함과 허송세월 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큰스님 설법 가운데서도 특히 돈오돈수에 대한 설법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고, 깨치지는 못하더라도 논리, 즉 지식으로는 불교를 얼마쯤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스님이나 법사들이 돈오점수에 대하여 설법하였고 나 자신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의문이 있던 것은 중생이 생긴 때가 언제이며 부처가 된 다음 다시 중생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스님과 밥사들에게 여쭈어 보아도 제 자신이 납득이 가지 않아 늘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이 ‘돈오돈수’와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 또는 ‘번뇌 곧 보리’라는 설법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의 의문이 논리적으로 해결되었고, 수행 방법은 큰스님 가르침에 따라서 하기만 하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불교도 공부하다 보면 이 방법이 옳으니 저 방법이 더 좋으니 하면서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큰스님의 크나큰 은혜를 입어서 거기에 흔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평생 갚을 수 없는 고마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법을 들을 때면 늘 듣는 얘기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듣고 믿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듣고, 더욱이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정확한 정법을 이 만큼이라도 이해하고, 행동은 그렇지 못하지만 언제나 수행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제가 열심히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고 또한 다른 중생들을 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부처님과 큰스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큰스님은 열반하셨지만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내 보이시는 것으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근래 어느 종교 지도자가 큰스님과 같이 중생을 일시에 교화하는 이런 큰 방편을 쓰신 분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불교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큰스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전체가 부처님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상황에서 우리 불자들 모두는 말로만이 아닌 참다운 행을 하는 불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저와 큰스님과의 만남은 나의 오십 평생에 가장 귀중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큰스님과의 만남은 제 인생살이에 큰 변화를 주었고 사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런 귀중한 만남이 훌륭한 열매로 맺어지도록 끝없는 정진이 있어야겠다는 것이 저의 서원이 되었습니다.
큰스님의 열반으로 현실에서 방황하는 모든 중생들이 발심하여 불국토 건설에 앞장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