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대비 민중생
대희대사 제함식
상호광명 이자엄
중등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금강상사...
바로 이 시간에 새벽 목탁소리가 들린다. 똑똑똑똑... 점점 크게 들리다가 차츰 낮아지기를 세 번 되풀이한다. 한방에 자던 일곱, 여덟 명의 스님과 행자 가운데에 지정된 사람이 미리 일어나서 이 시간을 기다렸다가 목탁을 친다. 이제 모두 일어나야 한다. 목탁소리가 나기 전에는 잠이 깨어 있더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잠시 뒤, 도량석을 하던 스님이 종을 치는데 처음 열여덟 번은 빠르게, 다음 열여덟 번은 느리게, 이렇게 해서 백여덟 번을 친다. 그리고 불단에 촛불과 향불을 피우고 방석을 차례대로 다 놓아 둘 때쯤이면 모든 스님과 행자들이 세수하고 예불을 드리려고 모인다. 새벽 세시 십분.
목탁을 치면서 예불을 시작한다. 예불은 오분향례, 능엄주 독송, 발원문 독송의 순서로 진행한다. 능엄주 독송은 백련암에서만 하는 독특한 의식이고 발원문은 노스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것을 독송한다. 능엄주는 본디 ‘大佛頂楞嚴神呪’라고 하는데, 능엄경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셨다는 무척 긴 주문이다.
백련암으로 출가해 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주문을 외워야 하는데 보통 일 주일에서 이 주일쯤 걸린다. 누군가는 단 삼 일 만에 이 주문을 다 외웠다 하고, 또 더러는 몇 달이 걸려도 못 외워서 결국 다른 절로 떠나갔다고도 한다.
예불이 다 끝나면 보통 네 시쯤 된다. 마당에 나가 하늘을 보면 너무도 많은 별들이 보인다. 예불을 드렸기에 더 많은 별들이 보이는 것일까. 이제 흩어져서 각자 정진을 한다. 행자 때에는 누구나 삼백배에서 오백배씩 절을 하고, 스님들은 경을 읽거나 참선을 한다.
다섯 시가 되면 공양을 맡은 이는 공양간으로 가고, 반찬 만드는 이는 채공간으로 간다. 노스님의 공양은 별도의 장소에서 만든다. 반찬은 콩, 당근, 마, 버섯 등으로 만드는데 간장과 된장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 이른바 무염식 -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 - 이다. 이런 공야을 드신지 수십 년이 되었다고 한다. 여섯 시 십 분 전에 노스님의 공야상이 스님 방으로 들어가고 나면 이내 대중의 공양이 큰방에 들어온다. 공양주는 미리 들어와서 발우를 차례대로 방바닥에 내려놓고 기다렸다가 곧 공양 목탁을 친다. 여섯 시, 아침 공야을 한다. 공양을 다 마치면 공양주는 공양간으로 채공을 채공간으로 돌아가고 남은 스님들은 대중방을 청소한다.
노스님의 방 청소는 시자가 한다. 방이 좁기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방에는 등받이 대나무 의자와 앉은뱅이 책상이 있고, 방바닥에는 얇은 담요를 깔아 두었는데 비질과 걸레질을 한 뒤에 이것들이 본디 있던 자리에 놓여 있지 않으면 다시 시키고, 뒷마루로 통하는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아도 다시 시키고, 벽에 걸린 일력을 한 장 떼어 내지 않아도 불러서 다시 시킨다. 떼어 낸 일력 종이는 반으로 접어서 뒷마루에 가지런히 모아 두어야 한다. 물건을 싸거나 양치질 한 뒤에 컵의물기를 닦는 등 허드렛 일에 쓰신다. 청소의 맨 마지막은 휴지 한 장을 톡 뽑아서 반으로 갈라 휴지통 위에 놓는 일이다. 스님은 언제나 반장씩만 쓰신다.
청소가 다 끝나면 다시 모여 차를 마신다. 주로 인삼차, 작설차, 꿀차 등을 마시고 때로는 커피를 마신다. 이때 노스님께서는 큰방 어간 문목에 포개 놓은 방석 위에 앉아서 우리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공자 같은 성인도 배워서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열심히 해라.”
이 시간이면 마을에 사는 부목 노인이 편지와 신문 뭉치를 가지고 올라온다. 이런 것들을 모두 시자실에 놓아두면 시자만 신문을 읽고 검토해서 노스님께 보여 드린다.
여덟 시쯤이면 각자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노스님의 서고 장경각藏經閣에는 수천 권의 책이 있는데. 우리가 읽을 책은 스님께서 직접 가려 주신다. 보통 출가한 지 여섯 달쯤 지나면 스님께서 그 첫 번째 책을 주시는데 부처님의 일대기를 비롯하여 법구경, 아함경, 열반경, 법화경 등 사십여 권의 경전과 그 해설서들이다. 그런데 그 책들은 모두 일어판이므로 우리는 일본어를 독학해야 했다. 이 책들을 다 읽는 데는 이삼 년이 걸린다. 이 동안에 개별적으로 노스님의 승낙을 얻어 삼천배를 하고 화두를 받는다. 그러고 나면 스님들은 선방으로 간다.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기 위해서이다.
열 시가 되면 다시 공양주와 채공이 소임을 보러 가고, 열시 반이면 노스님의 공양을 맡은 스님도 소임을 시작한다. 열한 시에는 부처님게 공양을 올리고 오분향례를 드린다. 열한시 이십분, 스님의 점심 공양이 스님 방에 들어가고 나면 대중들은 대중방에서 점심 공양을 한다. 아침 공양 때처럼 죽비 세 번 치고 바로 공양에 들어간다. 복잡한 바루 공양에 익숙치 않은 행자들은 한두 번씩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점심 공양이 끝나면 오후에는 공동 작업, 곧 울력을 한다. 울력은 다양하다. 초봄에 배추밭 파 뒤집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거름을 내고 씨뿌리기, 마당의 잡초 뽑기, 땔감준비 등등이다.
오후에는 노스님을 뵈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과 부산 등에서 오는 신도들이 백련암에 도착하면 호후 서너 시가 된다. 이들은 씻고 좀 쉬었다가 곧 삼천배를 할 준비를 한다. 이때 따라온 아이들은 노스님의 친구가 된다. 스님이 마당에 나와 계시면 그 곁에 가기도 하고, 또 큰방에 들어와서 노래를 하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하여 노스님과 친구가 된다.
오후 여섯 시에는 저녁 공야을 하고, 일곱 시에는 예불을 한다. 대중은 큰방에서, 신도들은 바깥채 법당에서 따로 예불하고 기도한다. 백련암에서는 천수경을 하지 않고 예불 참회문을 외우면서 백팔대참회를 한다. 이 예불대참회문 禮佛大懺悔文에는 팔십아홉 분의 부처님 이름이 나오고, 그 뒷 부분의 긴 경문에는 보현 행원품의 게송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노스님께서 새벽에 외우시는 경전도 바로 이것이고, 삼천배 할때도 이 부처님들의 이름을 반복해 부르면서 한다. 저녁 예불이 끝나면 다시 각자 책을 읽거나 참선을 하는데. 때로는 노스님 방에 가서 안마를 해 드린다. 이 시간에 노스님은 스님들이나 행자들 개개인의 신상에 대해서 물어 보기도 하고, 스님 행각할 때의 이야기도 해 주시고, 때로는 윤회에 대해 이야기도 해 주시고, 또 우리가 읽는 경전에 대해 물어보시거나 질문에 대답해 주기도 하신다.
밤 아홉 시, 상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세 번 가볍게 울리고 나면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자리에 든다. 살림을 맡은 원주는 대구에 살림 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빠짐없이 다음날 새벽 에불에 나온다. 언제나 노스님의 예불 소리가 들려 오듯이.
이런 세월 속에 스님은 가고 행자가 오지만, 가야산과 백련암은 움직이지 않는다.
원영스님은 해인사로 출가하여 성철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주로 해인사 백련암에서 큰스님 시봉을 많이 했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하였다. 지금은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정안정사 주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