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좌석에 앉은 두 초로가 달리는 차창 밖을 턱짓하며 무감하게 입질한다. 아닌 게 아니라 국도변엔 그들 말대로 절터뿐일 진입로에 페인트 칠이 보기 흉하게 벗겨진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가을걷이가 끝난 다랑논 사이로 농로처럼 작은 길이 나 있다. 그 뒤로는 겨울산---그리고 금방이라도 눈보라를 휘몰아 내려줄 듯 잔뜩 찌푸린 하늘.
(2)
노인은 사십여 년 만에 지리산을 찾았다. 지난 사십여 년 동안 그때 그 주검들을 잊고 산 적이 없겠기에 발길은 더욱 더디고 더뎌질 밖에 없었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과자 등속을 샀다. 인민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모였던 얼굴이 하나하나 스치기 시작했다. 앳된 얼굴에 차림이 남루한 아이의 얼굴도 겹쳐지고 있었다. 다리쉼을 할 때마다 찾기 힘들 것이라는 조바심도 났다. 몇 개월을 생명을 걸고 오르내리며 온 몸으로 익혔던 지형과 큰 나무 작은 나무들에 지난 세월을 셈하며 숨이
찬 것도 잊고 오르고 있었다. 가끔은 은신처로 안성마춤이었던 큰 바위덩이들만은 세월과는 무관했다. 갈대같이 세어 버린 흰머리를 쓸어넘기며 이마의 땀을 홈쳤다. 온 것이다. 사십여 년 전 그곳을. 소주의 마개를 따고 그 주위에 뿌리고 남은 몇 모금을 마셨다. 잎이 져버린 탓인지 산은 한적하였다. 가까운 곳에서 새소리가 났으나 노인은 듣지 못했다. 골짜기 가득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너무도 생생하여 사십여 년 전의 상황으로 기억을 되돌려 놓기에. 노인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채 몇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 잿빛으로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그때 죽어간 사람들의 중음신처럽 눈발이 나리고 있었다.
(3)
산길을 걷다 간혹 무성한 잡초 속에서 몇 포기의 율무나무를 발견하곤 한다. 어린 행자 시절 노스님 뒤를 따라 산보길에서 들은 말씀에 의하면 그 자리가 중무덤이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살아서는 상투가 없고 죽어서도 무덤이 없는 것이 중이라는데 중에게 무슨 놈의 무덤이냐 가당찮다 싶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옛날 스님들이 만행중 길이 멀어 겨울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쓰러져 동사한 자리이거나, 혹은 토굴에서 정진하다 양식올 구하러 먼 마을까지 가서 탁발올 해 걸망을 메고 산비탈을 오르다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변을 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정에 의한 죽음도 있었겠지만.
그 이듬해가 아니면 다음해라도 죽은 스님의 목에 걸고 있었던 율무 염주가 사체가 썩어내리면서 싹을 틔우고 몇 포기씩 자라나 여름 잡초 속에서 흰 꽃잎을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은 금강주나 월성주에 밀려 구경하기가 어렵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조그만 대바구니 속에 또아리를 틀 듯 천주나 삼천주의 참회 염주가 율무 열매로 만들어져 법단 탁자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가 있었다.
놀라운 일은 율무의 발아능력이다. 몇 년을 몸에 지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스님의 손때와 몸기름에 쩔 대로 쩔어 들기름 먹인 장판지처럼 반질반질 윤이 났을 터인데 어떻게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어른 키에 버금가리만치 자라서 중무덤임을 가리키냔 말이다.
(4)
동안거에 든 스님들이여. 포행 시간마다 겨울산을 치어다 보자.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칠엽굴에서 쫓겨난 아난의 심정같은 각오를 다지며. 한해의 벼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