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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넓고 밝은 마음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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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초대석 - 시명 1986년 03월 49호
-안의 법인사를 찾아서-

경상남도의 지도를 펼쳐놓고 자세히 보아도 그 지명(地名)마져도 회미한 서부 경남의 소옵(小물) 안의(安義)거창에서 2Okm쯤 맑은 개울을 따라 뼈스를 타고 가노라면 아직 높고 먼 산에는 잔젤(殘좁)이 녹지도 않은채 있고 거창장에는 일용품를 사가지고 가는 산촌사람들 틈에 끼어 법인사(法印훈)를 흥1아가던 날은 을씨년스럽게 잔뜩 찌푸련 하늘에서 간간이 비를 뿌리고 있는 오후였다.
내가 법인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월간 「법회」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마치고 나서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쓸 기사(記事)를 다 빼앗긴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진작 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낭패감을 느끼면서 법당에 가서 참배를 드렸다. 법당의 외관(外觀)이나 법당안의 분위기는 지용 기와가 낡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고 다른 절과 다를바 없이 정숙해 보였다.
법당에 이어져 있는 스님들의 방에 가니 아직도 어린 아이들이 여렷이 동화책을 일고 있었고 내가 들어서자 그들은 일어나 삼배를 하였다.
참으로 소문대로 어린이 포교가 참 잘된 곳이라는 실감이 이 작은 일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학생회가 있고 청년회가 있는 도시 절에 객(客)으로 가노라면 소위 불교청년 회원이나 학생 회원들이 객스님 보기를 뉘집 개 보듯이 뻔히 쳐다보고마는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스님들은 모두 세분이 계시는데 방 한칸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계셨다. 주지스님이라고 하여 따로 방을 쓰거나 쓸데없는 권위를 부리는 일을 처음부터 주지 원해(圖海)스님은 사양하셨다.
이 집의 주인은 이 집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인이 됩니다. 저희들은 같이 먹고 같이 생활하는 대중 생활을 원칙으로 하며 아침 저녁으로 백팔참회와 좌선시간은 하루도 거른적이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밥 먹는 식구가 스님과 학생과 신도들이 합쳐서 20명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일을 성가셔 하는 공양주가 따로 없고 그런 사소한 일로 학생과 신도와 스님과의 사이가 멀어질까 오히려 그것을 염려하였는데 묘하게도 신도와 학생들이 공양주 일을 자원 봉사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야말로 그들의 생활은 자활(自活)이요 열려진 도량이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이 절의 주인은 이 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말이 전혀 속알없는 말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주인이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국민학생이 700명이나 되고 있으며 그중에서 명균 470명이 법회에 참석하는 인원이며 중등부는 약 300명 회원에 I80명이 법회에 참석하므로 법인사의 대중은 천 여명이었다.
그러면 마을에 있는 국민학교의 총 학생수는 몇이냐고 물었더니 850명이라고 했다. 그말에 더 물어 그러면 교회는 몇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둘이 있는데 예배인원 학생이 법인사의 10분1쯤 될 것이라고한다. 그럽 무슨 특별한 어린이 지도 묘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지도 법사이신 철오(澈뽑)스님께서「우리들은 어린이를 부처님으로 봅니다. 우리에게는 부처님께서 신앙의 대상이자 가장 존귀한 분이 아닙니까. 어린이를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부처님 대하듯이 정성을 기우립니다. 둥·하교시에 그들의 어려운 점을 우리들이 나서서 해 주고 있으며 주말이면 그들이 나오는 학교 정문에서 그들에게 친절히 법회안내를 해주고 있읍니다. 또 다른 절에서는 청년 회원들이 보통 지도를 해 주고 있지만 우리들은 스스로 직접합니다.
청년들에게 아낄 수도 있지만 먼저 스님들과 어린이들의 관계를 좁혀서 스님들과의 사이에 전혀 거리감이 없도록 지도함이 더욱 중요하다」 고 강조하였다.
그러면 교안(數案)이 마련되어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어린이 불교공부」라는 팡프렛을 스님들이 직접써고 가르치는데 법인사 어린이들의 실천 강령으로는「바른마음 넓은마음 밝은마음」이었다.
제일 주된 교안의 내용은 우리는 이 우주의 주인임을 강조하고 우리 마음이 곧 창조주이며 동시에 부처님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고 각묵(寬熱)수님께서 힘주어 말했다.
서양종교들이 한결같이 우리들은 주인이 아니고 종임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곧 민족혼을 말살 할려는 서양사람들의 발상인데 왜 우리가 그러한 사상을 따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불교는 도저히 주인 의식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이것은 곧 민족주체사상과 이 땅의 주인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책임감과 사명감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자연 레크레이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어린이 법회가 아니고 레크레이션에서 얻는 극락성 보다는 극기심과 인내심동 일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을 통하여 참 기쁨을 얻어내도록 가르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린이 회원들은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전체 수석에서 학급반장이 거의 법인사에 나옴으로 자연 부모들도 불교에 관심이 높아져 신자수가 자꾸 늘어난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법인사의 어린이회 불교의 역사는 이제 겨우3년이다. 단 한 명의 어린이 불자도 없던 「안의」에세 이첸 안의의 어린이라면 법인사를 모르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 다른 곳에서는 교회가 자꾸 세워지지만 「딴의」에서는 새로운 어린이 법회 장소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이야기 해 주는 스님들의 뜨거운 말씀 속에서 한국불교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자부심과 희망을 가져 보았다.
이렇게 까지 포교가 활성화 어찌 그냥 되었겠는가 그것은 글로서나 말로서는 도저이 옮길 수| 없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법인사 스님들의 숱한 노력과 희생의 토양 위에 피어난 신행(信行)의 꽃이었다
「이젠 우리 불교도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그리고「자신들은 썩어서 거름이 되어 새싹을 F1우겠다」는, 그리고「하면 된다」는 신념에 찬 법인사 걱님들의 전송을 받으며 법인사를 나서는데 새 생명의 밤생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히 대지에 내리고 있었다
(대담·편집/ 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