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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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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윤이흠 1986년 03월 49호
1. 과학정신과 권위타파

최대정신의 대표적인 성격은 이른바 과 정신(科좋iL精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학정신은 논리적 타당성(論理的 풍當性) 이외의 어떤 권위(權顧)에도 의존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서 과학정신으로 무장된 현대인에게는 성인의 말씀도 기성 도덕성이나 고전, 그 어떤 것도 그가 가진 전통적 권위 때문에 그것이 진리라고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대만 논리적 타당성이 인정되었을 때만 그 진리성을 언쟁하려는 태도를 갖는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논리적 타당성 이 외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훈련받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현대사회생활 전체가 합리적 사고를 하고 논리적인 행동을 하면서 사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당연히 꿇었어야 할 커피포트에 물이 끓고 있지 않았다면 우선 포트의 플러그가 꽂혀 있는가를 확인하고 그것에 이상이 없다면 타이머가 정확
하게 설정되었는가를 보고, 그것도 이상이 없으면 포트를 들고 전기상에 가져가게 된다. 현대생활은 이처럼 매사에 일종의 논리적 추적을 습관화해서 살아가게 된다. |
이러한 논리적 추적 태도는 이미 현대 교과과정에서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서 습관화 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런 논리추적은 현대인의 체질이 된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은 그의 지식체계와 생활습관에서 논리추적이 체질이 되면서 중요한 정신적 특성을 갖게 된다. 하나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권위 타파적 행동을 갖게 되고, 다음은 고독한 개인으로 존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다만 논리적 타당성에 근거해서 자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인은 독립된 사유 판단자 이다. 그는 성 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되는 무한한 개인이며, 특히 종교가 제공하는 전통적 지혜에도 의흔하지 아니하는 그의 권위타파적 태도는 그로 하여금 정신적 고아로 만든다. 그는 문화전통에서 부터 정신적 유대감(精빼的 組帶感)의 단절을 갖게 된다.
사실 인간의 삶에 관한 미스테리는 첨단과학의 빛나는 발전 앞에서도 아직 벗겨지지 아니한 채 무거운 베일에 가려 있다. 우리도 분명히 부모의 육체에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는 우리가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며, 이는 한마디로 우리의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이다. 이 어린아이의 물음과 같은 질문,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과학은 우리의 생리학적 진화과정의 연원에 관한 해답은 줄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은 결코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은 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인의 권위 타파적 태도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타당성에 대한 민감성을 체질화하면서 이에 반하여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확언하는 정신적 자기훈련에는 크게 소원해 간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합리적 사고를 체질화하고 보다 안정된 사회보장과 풍요해진 창제조건 속에서 살아가도 현대인이 정신적 고독감과 무력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삶의 의미를 밝혀주는 전통적 종교의 지혜에서 유리되어 있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2. 현대문화와 정신적 방황
현대과학은 산업기술을 쇄신하고 새로운 기술문화는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이는 다시 인구이동을 야기 시키고, 새롭게 재편성된 산업구조 안에서 개인은 전체의 한 부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모든 문화와 사회구조가 기실 과학기술의 혁신에서 성원하는 것이다.
과학에 대한 평가에 두 가지 상반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에게 경제적 번영과 건강 및 수명의 연장 그리고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는 이른바 삶의 질의 중진을 약속한다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정신은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말살하고,
인간정신의 소외현상을 야기시킬 뿐이라는 비판적 태도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태도가 현대사회에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전자는 권위 타파적 합리사상에 입각한 사회 발전적 입장이고, 후자는 전통문화 내지 종교적 입장이 각각 대표한다.
이 두 입장은 지금까지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에서 대립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권위 타파적 합리주의 태도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사회조건의 개선이나 또는 체계적인 철학적 해답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먼저 사회조건의 개선이 인간의 정신적 고통과 번민의 문제를 경감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철학적 해답이 영혼의 해답이 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든다면 자유의 이상과 그 이상을 구현하는 조건들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하는 것과 영혼의 자유를 체험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현대인들이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영혼의 평화를 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행(苦行)을 통하여 자아의 욕망을 극복하고 계율과 소명에 순종하는 삶의 훈련을 통해서 영혼의 명화를 확보하는 종교적 삶의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현대 합리주의자들은 수도 곧 삶의 훈련의 필요성, 수도를 위한 집단생활의 필요성, 수도를 위한 규범화(規範的)된 행동의 반복의 필요성 곧 의례(依禮)의 필요성은 인식치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주어진 전통적 세계관을 스스로의 삶의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실천적 방법의 필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찾고 있는 인생에 대한 해답은 언제나 하나의 실험적(廣뚫的) 제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인생의 문제를 극복하는 조직적인 전략의 청사진은 되지 못한다.
반면에 권위 타파적인 과학정신을 배격하는 전통적 태도는 한마디로 신앙절대주의자(信뼈絡처主義者)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은 신앙의 내용이 과학지식보다 상위에 있으며 자기 종교의 교리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최대의 약점은 맹신에 떨어질 위험이 크다는데 있다. 이들은 엄격히 계율을 지키고 교리를 믿으며 자기 신심이 얼마나 부동(不動)한가를 보여 줌으로써 신앙의 내용의 진실성을 설득하려 한다.
그들은 신심의 부동의 정도는 행동의 통일의 정도이지 신앙내용의 진리의 정도가 아니란 점을 모르고 있다. 진지한 신앙인이 진지한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오랜 인간 지성사의 공동유산의 하나인 과학지식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신앙절대주의자의 태도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이다.
권위 타파적 합리주의자들과 신앙절대주의 자들은 각각 과학정신과 전통적 종교교리의 철저한 신봉자들이다. 현대사회의 이른바 대중은 이 양자가운데 어느 하나도 철저한 신봉자가 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정신적 무감각 상태에서 현대조건 안에서 살고 있다. 정신적으로 무감각한 대중은 두 가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기복(析福)행위이고 둘째는 대안 없는 행동주의이다.
이처럼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정된 기반은 구축하지 못한 채 현대사회에서 서로 공존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정신적 방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정신적으로 무감각한 대중의 정신적 방황은 현대인의 정신적 불확실성을 한충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 고행과 정신적 자유를 위하여 먼저 철저한 신봉자가 되지 못한 대중이 종교적인 성향을 띨때 기복행위에 빠지게 된다. 기복은 매우 복잡한 내용을 갖고 있어서 쉽게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복의 대상을 열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복은 병을 고치고, 건강 장수하고, 재물과 부귀를 갖고, 자녀와 가정의 안녕을 바라기 위해서 특정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 대상들은 모두 세속적조건(世洛的條件) 둥을 만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복의 목표를 전통적 종교의 고행과 수도의 목표인 해탈과 같은 이른바 종국적 인간이상의 구현 또는 이상인간(理想人間)의 자기완성과 같은 출세간적이상(出世間的理想)과 비교한다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한마디로 기복은 영원한 종교적 이상이 상실된 채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염원인 것이다.
대중이 기복을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l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현실조건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현실조건의 만족보다 더 중요한 이상(理想)의 추구의 필요를 지각하지 않는 한, 그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결여된 현실조건의 구체적인 충족이다. 그러므로 대중은 기복을 필요하기 마련이다.
다음으로 “철저한 신봉자”가 되지 못한 채 권위 타파적 합리주의자는 행동 자체에서 생의 의미를 찾으려한다. 내가 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기 때문에 내 존재의 가치가 스스로 인정되고, 내가둥산을 하기 때문에 나는 아직 활력이 있고, 때가 섹야를 즐기기 때문에 나는 아직 젊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가치를 발견하거나 삶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나라 행동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렴 없기 때문에 행동한다. 현대인의 이러한 행동주외북 바로 고독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이다. 또한 그것은|그의 삶을 통일시걱주는 신념체계를 갖지 못했다는 증제이다.
물론 현대인만 무의식적으로 그의 행동을 옮기는 것은 아니다. 고대 및 원시인도 무의식적 행 을 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행위충동(行鴻衝動)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형식화(形式化)되고, 정기적이며, 집단 전체가 참가하는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춤 행위 또는 행사, 사실 이것은 제례이지만 이에 근거해서 본다면 현대인의 행위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대인은 인간·사회 ·우 가 동일원칙에 의하여 질서 지워져 있다는 이른바 비교적 우주관에 근거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적인 행동도 실은 통일된 신념체계 안에서 이루어 갈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행동은 신념체계가 결여된|채 단순히 행동충동만을 사회적으로 공유한 상태이다i|그 대표적인 예를 스포츠와 대중가요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둘은 형식화된 행위, 정기적 행사, 사회적 여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제례際禮)이다. 다만 이 제례는 신념체계痛念#系)없이 인간의 근본적인 행위충동을 사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철학 없이 행동만 하는 충동체계이다. |
이처럼 기복(析福)과 행동주의(行動主義)는 철저한 신념체계 없이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대중의i두가지 정신적 무감각증상인 것이다. 정신적 무감각 상은 서로 상반되는 종교적 신념이나 과학정신 둘가운데 어느 하나에 보다 철저하게 섰을 때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정신적 무감각증은 극복될지 모르지만, 이 경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신앙절대주의와 권위타파적 합리주의가 갖는 편향성은 피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신앙절대주의, 권위타파적 합리주의, 기복행위, 행동주의, 그 어느 것도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을 금복할 수 있는 대안이 못된라. 아마도 극복은 종교적 신념과 과학정신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든 희망을 버릴수 없다.
과학정신이 권위타파적 성격을 띄게 된 것은 그것이 추구하는 지성적 솔직성빼(性的 率直性)에 기인하는 것이다. 과학정신은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것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예를 들어 1O을 말하고 싶지만 그 가운데 4만 확실히 증명할 수 있을 때 4까지 말하고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는 여기까지 와서 더 나가지 않는다”라고 스스로의 확신에 입각해서 스스로를 통제한다. 희망사항과 확실한 지식을 엄격히 구분하고 확실한 지식에 입각하는 지성적 솔직성과자기 통재 능력, 이것은 과학정신이 현대인에게 준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다.
우리는 이 과학의 정신적 유산을 고대 종교적 지혜에서 메아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종교의 공통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시키지 마라. 그것이야 말로 인생과 사회 악의 근원이니라”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아마도 “나는 여기까지 와서 더이상 안나가겠다”라는 자기 통제와 자기 훈련의 종교적 수행과 고행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지금까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대치하면서 명행선을 이어온 것처럼 여겨왔지만 이제 그들이 인간의 자기 통제를 통한 자기 발견과 계발이라는·윤리적 태도에서 서로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과학과 종교가 서로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까닮은 과학적 이론과 종교적 교리률 서로 대비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정신과 종교적 신념의 메시지를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인간 정신의 윤리적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파학정신의 유산인 지성적 솔직성과 종교적 신념의 유산인 정신적 자기수련 곧 고행을 통환 정신적 자유률 확보하게 될 때 현대인은 진정 성숙한 인간의 전형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