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平 0誑男女群
彌天罪業 過須彌
活陷阿0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이 노래를 들어서 다 안다 하기는 바다에 빠뜨린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하였으니 그러리라 하겠지만, 그저 일고 해석이나마 하는 이가 또 얼마나 될지? 간절한 합장과 오체투지가 오로지 스님의 진영으로만 향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속객은 멀리 서서 마음으로만 예를 올립니다.
살아서 내도록 남녀들 무리를 속였다셨으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남녀군상들을 보면 열반 뒤에도 여전한 아픔이겠습니다. 그 죄업이 수미산보다 더하다 하심도 그렇게 사실일 뿐 산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갈래일 것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한 수레바퀴 뷹게 토한 것 있어 푸르른 산에 걸렸다함만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편집장 스님을 따라 돌아본 경내는 어디 할 것 없이 분주합니다. 궁현당 맞은편 관음전은오색천에 만사를 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마침 송광사 주시 스님께서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일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장이 천 개를 훨씬 넘었으리란 소리가 들립니다.
그 말을 귀에 담고 소림원小林院이라 이름한 선원으로 향합니다. 행사 기간중에도 내내 제일 조용하던 자리라 오도吾道를 좇는 수련장답다 할 것입니다. 회나무와 전나무가 문앞을 지키는 그 자리는 해인사를 비로소 ‘해인’이게 하는 자리이면서 아직 젊고 용맹한 내일의 퇴옹들이 늘 깨어 있는 곳입니다. 산중 안팎에 그런 이들이 적지 않겠으나 성철스님의 열반으로 떼로 고아가 났다 하면 제격일 자리가 이곳 선원입니다. 이 소란중에도 내내 고요하던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큰 울음 소리는 아득하여 오히려 귀에 들려 오지 않는 것이리라. 그 라래 율원에도 그런 고요가 있었습니다.
큰스님의 법신을 모신 퇴설당은 삼엄한 분위기로 속인의 출입이 가능하지 않다는데. 그 문앞에 합장해 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문에는 ‘분향소는 궁현당’이라 써 붙여 놓았습니다. 그이 누워 계신 자리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서서 슬픔 가누려는 이들을 나무라고 쫓아내는 소리인 셈입니다.
그 앞 다각에서는 간단한 공양을 준비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걸음이 부산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스님네들의 인사 나누는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어디 사시오.”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상가집은 사사람들의 모처럼 만나는 자리 구실도 하기 마련입니다. 절집안도 크게 보면 세상 안일 뿐입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건네 주는 종이장에 성철스님의 법문이 적혀 있습니다.
극미소한 먼지가 광대한 세계를 삼키되 그 세계가 먼지 한 귀퉁이를 채우지 못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어서 둘러 본 사내 중심 대적광전은 지붕을 크게 손보는 중이라 사방문이 다 닫혀 있고 현판도 내려져 있습니다. 그 안 비로자나께서는 발 아래 물결치는 사람의 바다를 보시지 못하고 다만 그 물위에 떠 계시는 셈입니다.
잠시 다녀온 칙간에도 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먹은 것이 있으니 버릴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부끄러움 무릅쓰고 남자 변소로 뛰어드는 아주머니를 보고 웃습니다.
“밥을 먹었느냐. 바리때를 씻어라.”하는 말씀은 큰스님의 법문 한 구절입니다.
“스님, 바루 씻을 자리도 오늘은 없습니다”하고 보니 그 위에 오줌, 똥 가릴자리가 모자라는 터입니다.
그 길로 장경각에 들러 건너편 단지봉, 오봉산에 비안개 낀 풍광을 바라보다 뒤안으로 돌아 우두산 밑 운동장을 둘러보면서 바람을 쐬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은 목수간을 들러 오게되더니 그 옆에 대적광전에서 나온 서까래들이 한무더기 버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낡은 단청을 벗지 못한 채 진땅에서 비맞는 것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머지 않아서 뼈다귀 같은 온몸을 다비하여 낡은 단청을 벗고 이승 떠날 터입니다. 그 날 한줌 재가 될 것을 생각하면서 혼자 조용한데 방금 만난 이가 자꾸 말을 걸어옵니다. 긴 생각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사람이 몸으로 사는 한 생애와 사찰 장엄에 쓰인 소나무 한 그루의 평생 그 시종이 다를 바 없습니다. 흔적 없음 -. 하필 내일 퇴옹의 법구를 참나무 더미에 넣어 다비한다 하여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생각 끝에 잠시 앉을 요량으로 편집실로 돌아왔습니다.
그 방에도 사람이 가득 들어 비좁은 방에 기자들과 스님네들이 김치 속처럼 섞박지 되어 있습니다. 그 방에 가만 앉아만 있어도 줍게 되는 낙수꺼리가 한짐입니다.
큰스님께서 목포의 눈물을 테이프가 낡도록 들으셨다거니. 야 이 가시나야. 이 도둑놈아 따위 욕설을 입에 올리셨다거니, 열반 전에 병환 있으셔서 어찌했다거니, 임종 가까운 무렵 “ 필아. 필아” 하셨다거니 하는 이야기에서 실참한 선수행에 겪은 이야기를 통해서 뵙게 되는 좀더 핍진한 큰스님 이야기까지 차고 넘칩니다. 어느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뒤에 한마디가 더 있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어두운 소견으로는 말 한마디는 없고 다른 짓하나 있으면 좋으리라 싶었습니다. 그런저런 이야기 두루 퇴옹을 흠모하는 나머지인 것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던 스님은 텔레비전 중계차까지 동원되어서 방안 불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큰스님을 벌거벗기려는 듯하다면 언짢아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법한 소감이겠습니다.
문득, 궁현당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금강경 독송이 들려옵니다. 입적하신 뒤 내내 하루 세 번 그 독송이 있었다 했습니다. 궁현당을 가득 채워 앉은 스님들의 모습이나 울려 나오는 독송 소리와 목탁 소리가 두루 장관입니다. 이미 어두워진 뜰에 다시 나서 보니 내일 법구를 모실 운구 꽃집이 밝은 색 국화꽃으로 단장하고 있습니다. 몰려오는 구경 인파가 귀찮았던지 지켜 앉은 비구니가 퉁명스럽습니다. 그 뒤란의 범종각 옆에는 다써서 내어 놓은 만사를 장대에 달아 매는 일로 바쁜 사람들이 보입니다. 분향하러 왔다가 일손 없다 하여 늦도록 그 일을 하시는 보살들입니다. 기쁘게 하는 일이라 뜻깊은 조문이 되었을 법합니다. 고생하신다하고 그 곁에 기대어 놓은 만장들 들추어 보았습니다. ‘本地風光’, ‘自性淸0’이니 하는 문안들 속에 우리글로 된 것은 열에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법계에 가드하신 부처님’, ‘이 뭣고’, ‘정진해 보세나 모두가 공이로세’가 눈에 뜨입니다. 그만해도 고맙습니다. 그 자리 둘러보다 언뜻 생각 키우는 것 있어서 해인서점으로 가 보았습니다. 연이틀 날밤을 새웠다는 직원에게 몇 마디 물어 봅니다.
“그 새 제일 많이 판 것이 뭔가요?”
“성철스님 법문집이요.”
“제목은?”
“자기를 바로 봅시다. 백일법문.”
“선문정로는?”
“그건 잘 안 나갑니다.”
역시 그렇구나 싶습니다. 토씨만 한글로 실려 쓴 책은 여염 사람들에게 어렵습니다. 평석이 나와서 읽을 만해진 것은 겨우 며칠 전 일입니다. 세상과 산중 법문의 거리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해인서점 있는 불이문과 닿아 있는 그 뜰은 어둠 깊어 있은지 오랩니다. 뜰을 밝히는 카메라 조명이 환해 보입니다. 해 없으니 그 밝음이 발 앞을 분별하게 하여 큰 밝음을 잊게 하는 가봅니다. 아침이 되어야 이 저녁의 환한 불빛이 스러지는 아침이슬인 것을 깨닫게 되려니. 그러나 그 큰 밝음이신 한 말씀은 낡은 껍질에 싸여 아직 깊은 산중에 숨어사는 듯합니다. 아쉬움 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 큰절 안팎을 오르내리면서 보는 가야산 삼다三多는 불심을 이고 진 듯한 인파와 숲을 이룬 가야산 나무들과 그치지 않는 빗방울들입니다. 이 세 가지 많은 것 중에 퇴옹을 안다 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꼽아야 할 듯합니다.
그 저녁에 들은 이야기로 내내 잊히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로 승풍이 퇴락하여 선문이 허전할 것 염려하는 목소리들입니다. 그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이런 시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性澈本無性
東山海上飛
退翁活面目
龍城0秋菊
성철 본디 성품 없으니
동산은 바다 위를 나르네
퇴옹의 산면목이여
용성 안에 가을 국화로다.
모름지기 퇴옹의 빈자리를 반듯한 것으로 채우고 그이 자리도 바른 안목으로 살펴 제자리에 놓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있을 수 있는 걱정이겠으나 걱정으로 끝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합니다.
고요한 가운데 큰스님의 열반을 맞고 소란한 영결을 의젓하게 지켜보는 듯하던 선원이 떠오릅니다.
이제 청년의 사자후가 가야산을 귀먹게 하고 구산에 그 메아리 가득 울리도록 해야 할입니다. 구경꾼들의 걱정은 그 날로 스러져 흔적 없을 터입니다. 잿빛 납의가 백화점 점원들의 제복과 다른 것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그리 될 것 짐작하겠습니다. 이 순간에도 안목 있는 이의 마음에는 보일 것이 분명한 당간 끝에 나부끼는 누더기는 하찮은 걱정으로 그 찢길 듯한 서슬을 버리지 않을 것 분명합니다. 그래저래 그 밤은 잠들기 어려웠습니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둠 걷히지 않은 연화대를 살펴 보러 나섭니다. 다비장에는 참나무 더미를 감싸 솜씨 있게 마무리 해 놓은 연화대 - 이름 그대로 진분홍 연꽃송이입니다. 집채만한 연꽃송이 뒤로는 병풍처럼 소나무를 둘러 있고, 그 한 계단 아래에는 차나무 한 그루 단정히 심겨 있어서 제상의 ‘모사’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차 다茶, 도울 비毗 무슨 뜻일까하였는데 조금 이해될 법합니다. 어둠속에 차나무인지 확인하기 어려워서 입사귀 하나 떼어 씹어 봅니다. 알 수 없으되 싸아한 향기가 아침 피곤을 조금 가시게 한 듯합니다.
내려오는 길은 조금 환해져서 송림사이로 급히 닦아 놓은 길이 드러납니다. 그 길 잠시 뒷면 수천수만의 인파로 뒤덮일 것을 생각합니다. 그 끝은 여관과 음식점들이 즐비한 자리입니다. 스님께서는 퇴설당을 나와 이 구차한 거리를 지나서야 다비장에 오르실 터입니다. 그 생전에도 자주 밟아 보신 길일 리 없으나 마음에서 지워 버리신 바는 아니리라 여깁니다. 그 저자거리에도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오늘, 영결식입니다.
퇴옹께서 머물던 집을 나서는 첫 대목부터 확인키로 하고 찾아간 자리 퇴설당입니다. 거기서 오래 기다립니다. 시간이 되자 퇴설당 비좁은 대문이 열리고, 법구 행차임을 알리는 붉은 만장과 작은 영정을 앞세운 법구가 스님들 손으로 모셔져 나옵니다. 사진기자들이 잠시 부산스럽게 움직입니다.
퇴설당에서 영결식장까지 천천히 옮겨가는 법구 행렬을 뒤에서 지켜봅니다.
영결식이 시작된 것입니다.
영결식은 전국 사찰에서 동시에 울린다는 다섯 차례 조종소리로 시작되어서 삼귀의, 영결법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 묵념과 큰스님의 육성 녹음 법문, 영결사, 추도사, 조사, 조가, 헌화, 분향, 문중 대표 인사, 조화, 조전 소개, 사홍서원, 폐식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영결식장으로 들어가는 법구를 보고나니 시루 속 같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갈 자리 아예 없어 조용히 희랑대로 발길 돌립니다. 희랑대 높은 자리에서도 행사장이 엿보였습니다. 솔잎과 갈잎이 두텁게 깔린 오솔길이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하는 듯하던 그 길은 당연한 일인지 인적이 드뭅니다. 그 자리에서 멀리 행사장을 보아도 어수선한 야단법석 다르지 않습니다. 야단? 법석? 그러고 보니 그 야단에 유례없이 큰 법석이 열린 것입니다. 거기까지 들려오는 육성 녹음뿐 아니라 산하 대지에 형체 없이 스민 그이 한 말씀이 눈 바로 뜨고 귀 크게 열면 언제나 법석의 법문이실 것을 압니다.
행사를 다 마치기 전에 서둘러 내려와 비석거리쯤에서 행렬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행렬의 맨 처음은 동자승이 이끕니다. 그 눈 맑아 보이는 동승의 뒤를 이어 길을 여는 인로왕번이 앞에 서고 명정과 오방번이 그 뒤를 이어 영정 앞에 옵니다.
독경단 스님들 뒤에는 꽃집에 누우신 법구와 꽃 같은 만장들과 상좌, 비구니들과 뒤따르는 인파로 긴 뱀의 모습입니다. 장사진이라 하던 표현이 그 실상을 얻은 셈입니다. 이천을 헤아리는 만장이 큰절과 다비장을 한끈으로 이은 듯합니다. 그 인파를 뚫고 갈 길이 없어서 다비장까지는 길 없는 산을 기어 가야했습니다. 새벽에 확인해 둔 지형을 상기하면서 가파른 산을 달리다가 대략 어림하여 내려선 자리가 요행 다비장 뒷자리 영락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노인네들 한숨 끝에 그 소리 잘 하시더니 그 심정이 이해할 만합니다. 땀으로 젖은 뒤라 굵어진 빗방울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도 다행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니 흰솜방망이 스무 개쯤 연화대를 에워싸는 것 보입니다.
거화하는 순간입니다.
샛노란 불꽃 줄기가 높이 솟구쳐 오르고 연화대가 불길에 휩싸이는데,
“큰스님-”하는 회침이 다비장을 가득 채웁니다.
“큰스님-.”
그 소리 울려 가는 하늘에는 방송용 헬기가 비를 맞으면서 떠다니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손님이라 짜증스럽지만 나라 안 모든 사람들이 이 자리의 일을 궁금해 할 것 생각하면 나무라기도 쉽지 않습니다.
연화대 고운 분홍빛과 흰정수리가 화염으로 뒤덮혀 사라질 즈음에 공식 행사가 끝난 것을 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석가모니불을 되뇌이면서 천천히 다비장을 떠나는 인파가 썰물 같습니다. 그 물결을 바라보다가 문득 허기가 몰려 오는 것을 깨닫습니다. 초저녁 가까운 시간까지 입에 넣은 것의 거의 없습니다. 그 날 종일을 굶은 입이 꽤 많았을 것입니다. 큰스님이시라 그 덕이 고루 크게 미친다 하는 농담들을 주고 받습니다. 파장입니다.
저녁 늦은 시간, 어둠 깊은 연화대는 온통 큰 불덩이가 되어 있습니다.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인 연화대 비로소 그이 다비하는 자리다와 보입니다. 초가지붕 이고 있는 원두막 같은 연화대는 이제 갈데 없이 화택火宅입니다. 살아서나 지금이나 고요하던 이의 집이라 오로지 장엄할 따름 번뇌없는 큰 불덩이 - 푸른 산에 걸린 붉은 덩어리, 한 수레 바퀴 토해 둔 것. 一輪吐紅掛碧山. 영락없습니다. 속진을 더불어 사는 자가 그를 바라보되 뱃속 깊이 삼키지 못할 따름이라 바라보는데 슬픔이 깊습니다.
그 어둠 속 해덩어리를 지키는 이들도 이제는 천명을 넘지 않습니다. 불덩이가 무너지면서 키가 줄어 집꼴이 스러지는 무렵 그 자리를 떠납니다. 언덕길 내려오면서 내일 보비겠다 하고 인사하였습니다.
작아진 불덩이는 산모퉁이 돌면서 이내 보이지 않습니다. 지친 걸음으로 어둠에 잠긴 해인사에 다시 오르자니 비가 여전합니다. 그래도 그 비 그저 맞을 밖에 없습니다. 수 시간 전에는 그 많던 사람들로 걸으 수도 없던 길이 벌써 인적 드문 한적한 자리되었습니다. 하얗게 저승 가는 길. 그 밝은 날 꽃처럼 빛나던 아름답고 장엄한 행렬이 한갓 꿈이었는가. 눈 씻고 보아도 가라앉은 빗길 어두움 뿐입니다. 길가 전화통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로 아직 저 아래 어딘가에 길이 막혀 있음을 압니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어느 길목은 아직 그 어지러운 한낮의 꿈에서 깨어 나오기 전이겠습니다.
꿈이야 그렇게 흐르는 것이지. 삶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듯이.
속객은 흘러가는 꿈의 길을 거슬러 가는 셈입니다.
그 꿈을 그렇게 천천히 지워내면서 산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 잔 비바람 흩뿌리는 중에 헐벗은 키 큰 나무에서 갈색 이파리 두엇 허공을 걸어 내려오는 것 보았습니다. 멀리 절집에 켜 놓은 불빛이 아련한데 허공에 쉬엄쉬엄 내리는 그 잎새가 뭐라 하는 듯합니다.
그이는 이런 걸음으로 가셨거니 그대가 본 허공 꽃 같은 일이야 그이와 상관없는 세상일 한바탕이었을 따름.
그런가? 한바탕 꿈에서 깨어나 보니 적막한 어둠 속 외길 언덕이더라고?
이렇게 작별 인사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오르다 보니 지친 몸뚱이는 한낱 종이짝이 된 듯합니다. 그 위에 그린 눈알로, 끼치는 비, 드문드문 내리는 낙엽, 먼 불빛들을 살피면서 큰 뜰에 다시 들어섭니다. 불이문 안은 벌써 적적하고 태연한 얼굴입니다. 비 젖은 화환들이 씻지 않은 그릇처럼 추레할 뿐입니다.
하산하여 자정 넘은 시간에 다비장이 건너다 보이는 객실에서 쌓인 먼지와 땀을 씻고 앉아 보니 먼 데 반짝이며 움직이는 불꽃 하나 희미합니다. 기름 종지에 담긴 불씨 같습니다. 기름 다하면 꺼질 것입니다.
동숙하신 이가 이런 날 이렇게 편히 앉아서 건너다 보아도 좋은 것인지 묻습니다. 그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잠이 들었던가 봅니다. 아침입니다. 꿈 없는 잠이었습니다. 건너다 보이는 불꽃 자리에는 흰 연기 한올 안개비 속에 피어 오르고 있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다녀온 그 자리는 불기운 다 가시지 않은 잿불뿐입니다. 긴대나무 장대 끝에 매단 낫 한 자루를 부지깽이 삼아 잿불 건사하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선골, 사리 습골은 계획보다 늦어진다 하고 세상 일로 분주한 사람들은 떠나가도 좋을 시간입니다. 흙덩이가 된 신발을 대강 물로 씻어 신고 버스에 올라 환히 뚫린 큰길을 달리는데, 그 길이 여전합니다.
뒤에 사리 백십 과와 사리 박힌 뼈조각을 수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비장에서 법구 불타는 곁에 부처 좌상이 나타나셨더라는 이야기며, 백련암에 방광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랬을 수 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할 일이지만, 굳이 삿된 마음자리나 넓히는 짓이라 하고 상관치 않았습니다. 퇴옹께서도 쓸데없다 하였을 터입니다. 금빛 그릇 안에 붉은 주단을 깔아 모신 오색사리를 사진으로 보면서도 같은 생각했습니다. 그이 생전에는 누더기에 깃들어 계시더니 이제는 팔자에 없던 호사를 하고 뭇 시선에 드러나 있습니다. 살아서 내내 남녀 무리를 속여 왔노라 하신 말씀이야 그이 하시는 빈말이라 하겠거니와 호사가들의 입초시에 오른 사리 소식은 듣기에 편치 않았습니다. 사리 소식이라니, 있으나마나 한 소식이라 생각키로 합니다.
그 저녁 호젓한 비석거리에서 큰스님께 인사 마쳤으니 나머지 기별은 제게 오는 것 아니다 합니다.
제 집에서는 큰스님께서 마지막 선물이라 하고 마음에 없으신 보물을 원 없이 남긴 것 아닌가 했습니다. 그이가 차마 그러기도 하시는가. 노장 스님의추도사 한 구절이 그 감회 오히려 잘 정돈 하신 듯합니다.
雨露無高下
木草自短長
자연의 비와 이슬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데,
나무와 풀 포기 따위 스스로 키 크고 작은 법이라.
쓸데없이 군생각 말고 그저 구영 잘하였다 하라시는 것일지.
한바탕 꿈에서 깨어 보니.
대적광전 앞 화창한 아침입니다.
노장께서 그 큰 뜨락 환히 쓸어 두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