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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  )의 노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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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종림 1986년 03월 49호
1.유토피아(Umpia)의 꿈
인간은 누구나 다 유토피아의 꿈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세계, 이상적인 사회 행복한 활동의 낙원에의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꿈이나 이상이 민중과 사회 속에서 널리 일반화 될 때 유토피아라 이름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상적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와 꿈은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도 있었다. 원시 사회에서나 신화나 전설속에서 형상화된 중국의 무릉도원(武陸挑源), 그리스의 혜스페리데스(Hesperides)의 동산, 발마의 앨뤼시온(ElySion), 이스라엘의 에덴(Eden) 뽕산, 인도나 메소포타미아의 천국이나 낙원 동의 유토피아가 있다..
이러한 이상 세계는 우리에게도 외척의 첨략을 피할 수 있고 전쟁의 고통이 없는 청학동의 배고픈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식장산(食藏山)의 이야기, 제주도 처녀들의 낙원인 이어도 동의 아직 살아있는 유토피아에의 꿈이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적인 꿈이 역사상에서 사회적 사상으로 대두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사회 질서가 동요송훈·혼란기에 많이 나타나게 된다. 플라톤의 국가는 붕괴 되어가는 그리스 사회의 계속되는 내란, 냉제적 혼란, 폴리스간의 대립, 사회 계충간의 갈등 봅의 사회적 혼란기에 새로운 사회 질서를 꿈꾸며 철언챔치圍A政治)의 이상을 피력한 것이다. 르네상스(Re너aissance:문예부홍) 시대의 유토피아사상은 중세 봉건체제(封建體制)의 붕괴, 문예부홍, 종교개혁 동에 따르는 변동하는 시대에 토마스 모어(T.More)의 ‘유륨피OE 캄파넬라(T.Campanella)의 ‘태양의 도시: 빼이컨(F.B-acon)의 ‘노바 아트란티스(Nova-Atl섹ntis)동 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근대에 있어서는 산업혁명(塵業華命)으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동, 자본주의 모순이 낳은 사회적 병폐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산주의 사회, 생시몽(Saint Simon), 오오웬(R.Owedn), 푸리에(C.Fourier) 둥의 사회주의의 이상적 사회상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출현하게 되었다.
유토피아적인 사유의 근거가 되는 초월적인 어떤 것의 성격에 따라 유토피아 사상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신적(神的)인 어떤 것에 유토피아의 근거를 두는 것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의 가장 원형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초월적, 종교적 요인에 인간 역사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으로 신의 약속이나 종교적 경험에 기초한 세계상을 건립한다. 뀐쩌(FAUnzer: 문예부흥기의 독일 사상가)의 농민 혁명과 같은 것은 천년 왕국설(千年王國說)에 사회혁명의 사상이 결합하여 유토피아적인 혁명으로 발전한 형태로 천년왕국의 약속은 현실변혁의 거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관념에 유토피아의 근거를 가지는 경우는 프랑스 혁명이나 사회주의 사상의 이상을 들 수 있다. 현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반대 상으로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합리적인 이상을 제시하고, 이념이나 관념에 의해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천년왕국실적인 이상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제외되고, 절대성은 현존의 상태와 이성적 이상 사이에서 상대적인 진보의 개념으로 대치되고 초월성은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난다. 사회주의는 이성적 이념을 극대화하고 이성에 의한 보편성을 보다 구체화된 형태로 취하여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적인 개인주의를 사회적인 조직화로 지향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객관적인 법칙에 근거하는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적 이상과 자연과학적 입장이라면 혁슬리(Huxley)의 멋진 신세계식의 이상적 세계를 들 수 있다. 사회주의가 이상적 세계상의 건립을 이념이나 관념에 두는 반면에 공산주의는 사회과학의 법칙이나 역사의 발전 법칙에 의한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법칙이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 필연성의 법칙일 수 있느냐 하는데는 아직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사회과학적인 법칙은 개연적(蓋然的)이라는 것이다. 사회과학적 대상은 향상 생성 변화하는 것이고, 상호 관계나 조건 역시 일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관적인 면에서 관찰자가 객관적 관찰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조건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참여인식(參與認識)이 따른다는 것이다. 사회적 현실은 동적(動的)이라는 것이고, 역사의 발전은 신의 뭇이나 인간의 이념 또는 객관적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발전의 방향은 인간 자신이 선택할 수밖에 없고, 실천된 방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상황에 의해서 다음 단계가 결정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적 법칙이나 기술에 의한 이상적 세계는 아직 역사상에 시도된 적은 없으나 생리학이나 심리학등의 자연과학적 기술의 발달과 관리사회(管理삼용)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구조의 조직화를 통한 멋진 신세계의 건설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고, 미래에 상상할 수 있는 유토피아의 가장 강한 경향이다.
유토피아 사상의 흐름으로 볼 때 처음에는 역사와 사회를 초월한 곳에 있었던 유토피아가 차즘 역사와 현실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천년왕국설적인 초월성이나 절대성이 포기되고, 초월성은 현실과 사회 속에서 세속화되고 관념이나 이념은 조직과 기술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것이다. 토인비에 의하면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추구하는 안정된 질서와 사회적 조직이나 기술적 기능이 지배하는 사회는 발육 정지된 문명이 가지는 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유토피아적인 사회는 쇠퇴 과정에 들어선 현실의 문명을 어떤 사회적 수준에서 정지시키려는 것으로, 플라톤의 국가는 발육 정지된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Lykourgos: 스파르타의 입법가) 체재를 본보기로 한 것이라면, 멋진 신세계는 산업사회 문명의 한 정지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토피아적인 사유는 현실의 사회 속에서 실현되어 있지 않은, 현실의 존재를 초월한 어떤 것에 인간의 사고나 행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모순에서 발생되는 갈등과 생활의 어려움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과거의 평화로웠던 어느 시대나 장소로 자신을 도피시켜 현실의 고통을 잊고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를 지향하는 유토피아적 태도는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遊性)으로 실패하게 된다.
복고주의를 과거의 어느 시대나 장소 둥의 무엇인가를 회복하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복고주의적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은 불가역 한 것이고 현재와 과거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고 현재는 떠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은 살아있는 인간의 삶의 현장인 것이다. 과거사회의 제도나 유물이 복원된다고 해도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것이 될 수 없고 그렇게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지혜의 과일을 먹은 인간은 에덴 동산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요순 시대는 단지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자연에의 복귀나 소박한 생활에 대한 원망 역시 하나의 환상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되어 다시는 어머니 품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프롬이 말하는 1차적 관계로서의 핏줄은 한번 끊어진 이상 다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라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설사, 산이나 강, 아니면 교도의 어느 지정된 장소로서 존재한다고 해도 찾아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곳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뿔이다. 실패하게 된 복고주의자(復古主義者)는 부지불식간에 아니면 부득이하게 미래에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래주의와 복고주의의 차이는 시간적 방향의 차이에 불과하다. 미래지향적인 유토피아 역시 파거 지향적인 유토피아와 같이 본질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인 것이다. 미래주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과거로 도피하려는 복고주의적인 시도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내일에 회망을 두고 현실의 고통을 이기며 미래 속으로 탈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하여 취하게 되는 현세적(現世的)인 방법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결탁하여 폭력적인 힘을 행사하게 되고, 미래주의적인 유토피아 자체가 가지는 전체주의적(全體主義的)인 성격은 독재체제나 폐쇄된 사회를 낳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