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홀로 가는 길
거리에 걸망을 맨 스님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해제를 한지 한달 가량 지난 지금 도심에서 운수납자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이상스런 일은 아니다. 석 달간의 용맹정진 후에 만끽할 수 있는 만행의 법열이야 수행자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세간을 초월하여 닦은 지혜의 크기를 시정에 다시 맞추어 측량해 보려는 참된 구도자의 길이 만행이리라. 지혜의 크기만큼 만행의 폭파 깊이도 다양할 때 그 닦음은 참된 자신의 생명일 것이다. 만행 중에 만나는 우리의 이웃들을 홀로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수행자와는 달리 집단적 희노애락에 젖어 산다.
내 친척, 내 가족, 우리 동네라는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군상들인 것이다. 집단적 감정이 그 집단의 이익만을 위하기 때문에 그 집단에 구속되어 버리고, 초월적 감정은 홀로 맛보는 법열이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집단적 감정이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그 집단 개체간의 감정과 이익을 공유하려는 공동체적 관계라면 초월적 감정은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를 간과하기 쉬운 독단적 감정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만행은 초월적 감정이 공동체적 감정으로 관계 지워지는 과정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그러한 공동체적 집단이익에 매몰되지 않는 초월적 감정을 획득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어야 한다. 만행의 길, 그것은 현실 고통에 대한 확인이다. 개인적으로 구조적으로 우리의 이웃들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가에 대한 절실한 체험의 길이며 역사적 사회현실과 만나는 현대판 사문유관인 것이다. 이렇게 만행을 통해서 얻어진 값진 체험들은 다시 홀로 가는 길을 통하여 그 지혜를 넓고 깊게 하여야 할 것이다.
.홀로 가는 길. 이것은 더불어 가는 길로서 가능해지고 더불어 가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을 통해서 또한 가능해진다. 홀로 가는 것과 더불어 가는 길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파 같이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되게 흘로 가는 길은 더불어 가는 삶을 통하여 그 폭을 넓히고, 참되게 더불어 가는 길은 흘로 가는 길을 통하여 그 깊이를 더욱 굳게 하는 변증법적인 지양의 길인 것이다. 홀로 첨묵속에 수많은 소리를 듣자. 그 소리의 외침이 3월의 맑은 하늘이 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