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스님은 신라 선덕여왕 때 스님이다. 신라시대 대표적인 화가로 우리는 솔거스님을, 서화로는 김생(金生)을 첫손가락에 꼽듯이, 조각과 조상(影像)에는 양지스님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경주박물관에는 스님께서 조각하였음을 알려주는 뛰어난 조각 작품들이 현존하거니와, 그 당시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영묘사(靈妙寺) 장육삼존상(杖六三尊像)과 천왕상 또 전탑(殿搭)의 기와, 천왕사(天王寺) 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삼존불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들이 모두 양지스님의 작품이었다. 또 스님께서는 글씨도 뛰어나 영묘사와 범림사의 현판을 썼고, 벽돌로 탑을 만들기도 했으며, 삼천불을 만들어 모시는 등, 스님의 재주는 참으로 비상하였다.
이렇게 상을 만들 때에는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모여 스님께 흙을 날라드리면서 노동요를 불렀는데 그것이 지금도 향가(鄕歌)의 하나로 전해오는 풍요(風謠)이다.
오다.오다.오다./오다. 슬프도다 인생은/서러워서 우리들은/공덕 닦으러 오다
지금은 잊어버린 노래지만,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이 노래는 노동요로써 널리 불렸던 노래의 하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께서는 신통이 뛰어나,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그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가 시주(施主) 의 집에 가서 스스로 흔들면서 소리를 내었다. 시주들은 그 소리를 듣고 그 빈 포대에다 시주물을 넣어주었다. 그러면 이 요술지팡이는 다시 날아서 양지스님이 계시는 절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스님이 계시던 절 이름을 석장사(錫杖寺) 라고 했다.
이렇듯 스님께서는 재주가 있고, 신통이 뛰어났으며, 또한 덕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귀의를 하였다. 일연스님은 그런 스님을 기려 이렇게 노래했다. 「
재(齋) 마치니 법당 앞에 석장은 한가한데
노압(爐鴨)에 손질하여 홀로 단향(檀香) 피우네
남은 불경 다 읽어 할 일 없으니
부처님 원만한 모습 합장하고 우러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