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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과 생사불이(生死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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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7호 - 일타 1982년 10월 8호
경(經)에 말씀하기를,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마음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세가지가 모두 다르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라 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 육단심(肉團心)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몸 속에 있는 것으로서, 부모님의 혈기(血氣)로 만들어진 것이고 둘째, 연려심(緣慮心)이라하는 것은, 선과 악, 그러고 순(順)과 역(道)의 모든 경계(境界)를 여러가지로 분별하는 것이고, 셋째에 영지심(靈知心)은, 이것이 참 마음으로서, 천차만별(千差萬別)하는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지럽지 아니하고, 그러고 삼세(三世)에 두루 뻗쳐 있으면서도 변천하지 않는 것이니, 환하게 홀로 비치고 우뚝하여 짝할이 없어서, 성인이라고 더하거나 범부(凡夫)라고 덜하지도 않는 마음자리라, 생사고해(生死苦海)에 있어서는 마니주(摩尼珠)가 창해(蒼海) 속에 비치는 듯하고 열반의 언덕에서는 밝은 달이 허공에 뜬 듯 한 것입니다. 부처넘은 이것을 깨달았으므로 참된 마음이라 하고, 중생은 이것을 깨닫지 못해 망식(妄識)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부처가 곧 중생이고 중생이 곧 부처이므로, 마음 밖에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깨닫고 미(迷)함이 다르기 때문에 성인과 범부가 동뜨게 달라진 것 뿐입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가지가 차별이 없는 도리(道理)를 어떻게 알 것입니까? 조사(祖師)스님의 말씀에, 「몽리(夢裡)에는 명명유육취(明明有六趣)라가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 (空空無大千)이라」(꿈을 꿀 적에는 분명히 사생육도(四生六道)가 벌어져 있었는데, 꿈을 깨고 나니 텅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렇게 본다면 경(續)에서 말씀하신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國土)를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극락이요, 그 세계에 아마타불이 계시어 지금 설법(說法)하고 있다」고 한 것도, 실은 모두 다 유심정토(有心淨土)와 자성미타(自性弼院)를 가리킨 말인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아미타불이요 내 마음이 극락정토라, 이러한 이치로 말할 것 같으면, 금일(今日) 망령(亡靈)도 날 적에는 송이송이가 연꽃이요, 죽을 적에는 줄줄이 보배나무라. 어느 때나 극락세계에 가지 않은 적이 없고 잠깐 동안도 아미타불의 광명을 떠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그럴진대 이 마음과 부처와 중생을 떠나서 따로 이야기 할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사람의 몸뚱이라 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와 같고, 마음은 운전수와도 같은 것입니다. 자동차가 홀로 가고 오는 것이 아니고 운전수가 운전하는 대로 그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이 몸뚱이는 껍질 사람이고 마음은 참 사람인 것이니,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복종해야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기쁘고 즐겁고 편안하게 몸을 부려야만 할 것입니다. 만약에 자동차가 늙어서 아주 못쓰게 되었다면, 부득이 폐차처분을 하고 새 차를 타야만 할 것입니다. 조금도 버린 차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성현들은 마음이 참 나인 것을 깨달아서 영원과 자재(自在)를 구현(具顯)했던 것입니다. 신심(信心)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양이 없는 마음, 그러나 결코 있는 마음, 몸뚱이를 지배하고 만가지를 좌우하는 이 마음이 참 나인 것을 바로 믿어서, 나아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면 생(生)과 사(死)가 다시 어데 있으며, 이승과 저승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것을 열반의 세계라 하고 바라밀의 경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사는 길이 되고 영원을 사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 위 법어는 해인총림 율주(律主)로 계시는 일타스님께서 1982. 9. 19 해인사 큰법당에서 행하신 영가천도법문의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