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봄은 여인의 옷차림에서 시작된다. 나들이 여인의 옷이 가벼워지고 회4}해지는 것을 보고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확인한다.봄! 이 봄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마음 셜레는 것이다. 지난겨을은 유난히 추워 오리파카가 50만벌이나 팔렸다고 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했을까? 아니면〈86아시안 게임〉의 역사적인 새봄을 맞이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들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추운 겨을이 지나가고 풀내음이 물씬 풍기는 봄이 도착해 있음을 느끼고 나니 가슴속이 후련하고 따뜻해져 은다.
대구에서 살아은지 20여년. 대구의 봄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 유난히 쌀쌀한 기온과 그 기간이 짧다. 봄은 있는 듯 하다가 곧바로 5월부터 여름 날씨로 접어드는 특성은 특이할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대구에는 봄 가율이 짧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겨을파 여름이 길다는 말이다. 해마다 겨울철 관리를 위해 집안에 들여놓은 화분을, 4월이 되어야 바깥에 내어놓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어느 해인가 따사로운 3월의 봄볕이 아까워 실내에 있는 화분을 양지 쪽에 내어놓고 물을 듬뿍 주고 봄맞이를 시킨 것이 실수를 저질렀다. 밤새 봄을 시생하는 영하의 변덕 날씨에 겨우내 힘들여 보관한 화초 50여 그루를 몽땅 죽여버린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이후부터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4월이 되어야 화분을 바깥에 내어두는 것이 습판처럼 되었다. 이러한 기후 조건 관계없이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곳이 대구는 역시 동성동이다.
이곳은 항상 살아 숨쉬고 있는 대표의 상징이요 동맥 같은 곳이다. 이른 봄 소식은 의연히 여인의 가벼운 옷차림에서부터 활기찬 도시인들의 걸음걸이에서 금새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여름을 〈어머니〉, 가을을 〈미망인〉, 겨을을 〈계모〉, 봄을 〈처녀〉에다 비긴 것은 폴란드 사람들이다. 처녀들이란 꿈과 낭만을 갖고 있으며 생기에 차있어 발랄한 존재들이다. 성급한 처녀들이 옷매무새로 봄 단장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의미에 맞는 것이며 적성이 풀려온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도심의 봄소식은 시골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시골에서는 입춘이 지난 봄 보리를 맨 먼저 보는 풀이라 하여 선조들은 보리에게 간맥랑園쫓娘)이라고 이름을 불였다. 뚝새풀이 논바닥과 밭 둔덕에 다부룩 다부룩 돋아나 있고 냉이가 이미 땅바닥에 나부죽이 엎드려 있는 냄, 양지바른 곳에 쑥도 싹을 내벌고 있는 것이 시골의 봄 정경이요 봄소식이다.
도심의 봄소식은 여인이 전해주고 시골은 자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어 팩 대조적이다. 도심의 폼이 인위적인 전달요소가 있다면 시골의 봄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도시인들은 자연의 풍요 대신 흔히 도시문명의 타성에 젖은 것 같다. 대구의 동성로는 항시 봄을 안겨다주는 매력과 요소를 안고 있다. 이 거리에는 〈젊음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젊은이들의 힘찬 활기가 넘치고 우리의 정직한 숨결이 숨쉬고 인간 생존의 터전인 바닥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활달함, 살아 보겠다는 긍정적인 의지, 나도 하면 된다는 희망의 생이 동성로 대동맥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삶이란 오늘 이 순간에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삶의 현실인 것이다. 하루를 출중하게 살기 위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하루의 묵은 찌꺼기일랑 밤새 지우고 새아침 해돋이처럼 늘 새얼굴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움 속에 새것이 탄생되고 기쁨이 충만되기 때문이다.
대구의 생명줄인 동성로에 병인년의 봄기운이 가득하다. 살아 움직이는 활력소는 대구시민이 가꾸어야 하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대구시민의 자신감의 표현이며 문화의 산 척도라는 결 잊어서는 안되겠다. 도심의 봄도 우리의 봄도 모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