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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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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최정희 1986년 02월 48호
봄을 잉태한 늦겨을 추위는 맵다. 민감한 사립들은 벌써부터 나직한 소리로 다가오고 있는 봄의 찬가를 간직하며 가슴을 설렌다.
「누가 오는데 이처럼들 부산스러운가요」
「사슴의 노래」를 옮은 시인 노천명은 「봄의 서곡(序曲)」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입춘을 앞둔 봄이 오는 길목, 아직은 천명의 시에서처럼 부산스럽게 다하기에는 좀 철 이르나 봄이 오는 길목에는 확실히 설레고 들뜨는 부산스러움이었다.
요즘 우리의 주변은 어떤가. 대학입시, 졸업, 진학, 취직문제 등으로 젊은이들은 희망에 부푸는가 하면 좌절, 번뇌, 갈등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할 것이다.
이들은 계절적으로만 봄의 길목에 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계절에서도 봄의 길목을 맞은 셈이다.
인생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굳은 의지로 내일을 설계한다. 그러나 더러는 정신적인 방탕과 갈등의 늪에서 서성이는 젊음도 있을 것이다.
장애자들의 대학 합격문제가 신문에 오르내리자 어느 카톨릭 신도는 자기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크게 말했다.
만약 카톨릭의대에서 그들을 구제치 않는다면 자신은 성딩에도 나가지 않을 뿐더러 카톨릭교를 믿지 않겠다고.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봄의 길목에서 한창 새 봄을 설계하는 그 풋풋한 젊음이 장애자라는 슬픈 이유 때문에 영원히 겨을 속에서 지내서야 되겠느냐는 준엄하면서도 인간적인 선언이다.
그 사람은 남의 일이라 하여 강 건너 불 보듯 하거나 외면한 것이 아니라 장애자 수험생의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이다.
불자(佛子)들은 너·나 없이 이웃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공부하고 있다. 무슨 무슨 경經) 어느 귀절이라고 들추지 않더라도 그것은 보살행의 기본 실천 덕목이다.
어느 젊음이, 어느 새 순이 봄을 시생하는 매운 추위에서 힘들어하는지 주위를 살펴보고 이끌어 줘야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한다면 오늘의 사회풍조에 어을리지 않는 지나친 간섭이라고 비웃을런가.
나는 어느 여고졸업생과 스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고 있다.
오래전 서을의 명문여고를 갓 졸업한 한 여고졸업생은 가정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녀는 여고시절의 꿈을 일순에 깨야하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어느 날 조계사를 찾았다.
법당 부처님 앞에 앉아 보아도 무거운 마음은 풀리질 않았다. 행하니 넓은 초춘(初春)의 법당은 그녀를 더욱 춤게 했을지도 모른다.
법당에서 나와 멍하니 나무에 기대선 그녀를 스님이 보시고 사연을 듣게 됐다.
스님은 그녀에게 진학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부처님 말씀과 함께 들려주면서 위로했다. 얼마 후 스님은 그녀에게 일자리를 구해줬다. 그녀는 돈독한 불자(佛子)이자 성실한 직장여성 그리고 명량한 사회인으로 성숙했다.
자신의 월급으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고, 좌절에 빠진 자기에게 새 길을 열어준 스님을 극진히 시봉했다. 또 주변 어느 스님에게도 그녀는 공경심을 잃지 않았다. 애인이 생기자 먼저 스님에게 선보였고, 지금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처럼 이웃과의 인간관계, 특히 「나눔의 정(情)」은갈림길에 선 한사람의 삶의 패(인간의 계절)를바꿀 수도 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예를 인연으로 돌린다. 물론 인연이다. 그러나 인간의 계절을 만드는 그 인연의 끈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끊임없는 자기정진, 그리고 그 정진의 힘에서 나은 동체대비심과 보살행이 씨줄 날줄(인연)이 될 때 인간의 계절은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으로 와야 한다. 함께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그 인(因)과 연(緣)은 인간의 계절에서 가장 소중한 핵이다.
특히 바랍이 매운 봄의 길목에선 더욱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