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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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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선영 1986년 02월 48호
1.접근의 방향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교육작용은 인간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작용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현재의 인간은 그가 지금까지 교육받은 정도에서의 인간이며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그가 지금까지 교육받은 수준의 범위를 뛰어 념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인간경험이 누적 되어감에 따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들이 배워 익혀야할 지식과 기술및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그것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저절로 배우고 익히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정한 교육내용을 선정하여 계획적이고도 조직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는사회적 제도로서 교육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에서 교육제도란 교육에 대한 재(諸)활동이나 작용이 일정한 법규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조직화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역사성과 사회성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적 승가교육제도」란 말은 막연한 의미에서의 오늘날의 숭가교육제도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쩍이고도 사회적인 의미률 함축한 「오늘날」의 숭가교육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벌써 현숭가교육제도에 대한 재검토 제음미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발표의 제목 가운데 「정립」이란 말은 위와 같은 제검토, 제음미를 통하여 새롭게 고치고 다듬어 다시 정립(定立)시킨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또 「당위성」의 문제는 이와같이 새로운 「정립의 의지」가 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가 하는 정당성의 문제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시각에서 「현대적 숭가교육제도의 정립(整立)과 그 당위성」 문제를 논하되 이 모임의 주체취지에 따라 주로 강훤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강원교육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숭가 교육제도 천반(全般) 문제와의 관련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우선 지금까지 본인이 기회 있을때마다 주장해 온 숭가 교육제도 개선안(改善案)을 다시 한번 간단하게 요약하여 제시하고 나서 강원 교육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하려 한다.


2. 한국 승가 교육제도의 개선안

지금까지 본인이 주장해 온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要約) 되어진다.
1) 출가와 위숭댐借)의 개념을 구별하여 출가에는 세속적 학력의 제한을 두지 말되 위숭은 현대적인 불 교고둥교육 이수자로 해야 한다.
2) 원래 승려는 비구 비구니이고 사미(沙爛) 사미니(沙弼尼)가 되기 위한 입문(入門) 과정의 견습생이며 행자(行者)는 사미 사미니가 되기 위한 입문 과정에 있는 출가자라고 할 때 비구 비구니의 승려는 불교고둥교육 가운데서도 대학원 과정의 이수자로 사미 사미니는 대학과정의 이수자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셰속의 중등교육 미필의 출가자를 위해서는 예정된 은사(恩師)나 소속 사찰주지가 책임을 지고 세속의 중등교육을 이수시키든가 아니면 종단에서 일정한 사찰내에 문교부 인가의 중등학교를 셜립하여 교육 시키든가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비구 비구니와 사미 사며니 가운데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분들은 기득권을 인
정하되 경과조치로써 일정한 연수(冊修)를 통해 그 기득권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숭가 교육제도는 승려의 역할과 기능 문제와 관련하여 개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승려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수도와 포교로 구분하고 포교의 개념은 폭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바 사미 사미니의 양성을 위한 대학과정의 불교교육기간 중 포교승을 지망하는 경우에는 각자의 소질과 취향 및 발원(옳願)에 따라 필요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더욱 심화(深化)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케 한다. 수도승을 지망하는 경우에는 대학과정 졸업후 대학원 과정을 총림에서 3년 이상의 수도생활로 한다.
그리고 비구 비구니의 수계에 있어서는 계첩(械鷹)에 전문적으로 분화된 자격을 명시하고 종단에는 이 자격에 따른 승려의 활동무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4) 일단 승려가 되었다 하더라도 제도적으로 계속적인 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 하 며, 이제 교육제도는 법계(法階)의 품수(票受)와 승계(합階)및 종단의 인사행정(人事行政)과 관련지어 이루 져야 한다.
5) 승가교육의 실제를 위한 구체안은 현i대와 다가오는 미래에서 요망되는 이상적인 비구 비뮤니상(像)파 그러한 승려의 수습과정에 있는 이상적 사미, 사미니상 및 이 사미 사미니의 전 단계인 바람직한 행자상이 확립되어야 하며 각기 그러한 상(像)의 숭 가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고 어떠한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며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고 그 분석된 내용을 어떠한 순서와f방법에 따라 교육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측정, 평7할 것인가 하는 방법과 도구가 마련되어야 가능하다. !
6) 조선조 중기(中期) 이래로 정착 전승되어온 현 강원제도는 대학원 과정으로 개편되는 것이매}람직 하다.
7) 이상과 같은 모든 것을 위해서는 불교계에 「연구」 「기획」 「시행」의 세 가지 개념이 서로 정밀하게 구현되면서도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며 끊임없는 「개발(開쫓)」의 개념이 불교계에서 꽃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개발기구가 있어야j한다.


3. 현대적 승가 교육제도와 강원의 방향

교육제도는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 이 밝혔듯이 역사서과 사회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도 새로이 나타나고 사회적 요청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교육제도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요약된 본인의 「한국 숭가 교육제도의 개선안은 이러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것이었다.
강원은 조선조 중기 이래로 정착 전승되어온 중심적인 승려 교육기관이었으나 과연 오늘날 불파계가 젊어지고 있는 역사적 과업과 사회적 요청에 (副應)할 수 있는 승려를 양성할 수 있는 내용과 효 적인 방법을 갖추고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다면 그렇지 못하다고 밖에 활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승려의 본분사(本分事)를 구도(求道)와 포교에 둔다고 하면 불교를 을바른 알아 실천하기 위한 구도(求道)의 면에서 볼 때 사미파(沙鋼科), 사집파(四集科), 사교과(四敎科), 대교과(大敎科)로 편성된 강원의 교육 내용은 불교학 자체의 체계로 보아도 대단히 비체계적이고 부분적이어서 미흡하며 더욱이 현대적인 시각에서 음미하고 이해하기에는 더더욱 부족하다. 또 한 포교의 면에서 볼 때에는 포교의 대상인 사회를 진단하고 이해하기 위한 내용은 전무(全無)한 형편이며 나아가 현대적 의미에서의 포교 능력을 배양시키는 내용은 더더욱 현 강원체제로서는 불가능하다.
둘째 혹자는 한문(漢文)으로 된 불전(佛典)을 보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데는 강원교육이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바, 이러한 주장은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나 한문 불전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불전도 아니며 그리고 한문 불전의 독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학습의 경제 효율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도구교재(道具敎材)의 개발이 요청되는 것으로써 현 강원체제는 비효율적이다.
세째 현 강원은 내용과 방법및 체제에 보아서 세속의 학교 교육제도와는 전연 연관성이 없어 불교와 관련지어 타학문을 하기 위한 세속학교에의 진학이 강원 졸업만으로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 문제는 강원교육이 현대에 있어 유인체제(諸因體制)를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며 이러한 경우 강원의 학인들에게 정신적으로 방황과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요인(要因)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현 강원제도는 그내용과 체제면에서 세속의 제도는 대학에 준하여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문교부의 인가를 받도록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개혁된 강원은 전절(前節)에서 제안된 본인의 한국 승가 교육제도의 개선 안에 따르면 사미 사미니의 양성기관이 될 것이며 타학문을 전공한 대학졸업자 가 강원에 학사편입을 하여 졸업한 후에야 사미 사미니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 강원체제는 모두 없어져야 하는가? 불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교과 대교과에의 연구체제로서 현대적 교육학의 안목으로 볼 때에도 매의 탁월한 장점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학인 각자가 사기(私記)를 참고하면서 원전(原典)을 검토, 음미한 후 깅주(講主)를 모시고 함께 강론하는 연구체제는 그대로 살리고 계승하되 이 체제는 개혁된 강원 즉 대학 체제의 숭가 교육기관을 졸업한 후 학숭을 지망하는 학인들이 진학하는 대학원 체제로 개편, 확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단(但) 이 때에 있어서 교육과정은 불교학의 학문적 체계에 입각하여 개편되어야 한다.
현 강원체제가 이상과 같이 정립되어질 때에만 강원은 과거 불교계에서 차지했던 숭가교육의 핵심적 기관의 기능을 명실(名實) 공(共)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강원이 현대의 불교가 젊어져야 할 역사적 과제와 사회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승가 교육기관이 됨을 뜻하기도 한다. 본인은 이 제안의 당위성의 근거를 여기에 두고자 한다.
혹자(或者)는 본인의 이상과 같은 제안을 한국불교계의 현실을 전연 염두에 두지 않은 그러므로 실현 불가능한 공상(空想)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 반박에 일변 본인도 수긍이 가는 점도 있을 것이며 그 충정을 헤아리지 못할 바도 아니다. 본인의 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교수진에 따른 인적(A的) 자원문제와 행정 제정상의 여러 난점(難點)이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역사성과 사회성을 외면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결국 어떠한 결과를 자초(自初)하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더라도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오히려 어려운 문제이기에 우리 불교인들의 새로운 발원과 분발이 요구되는 것이다. 본인은 오히려 이 기회에 보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불교계에 간청하고 싶다. 종단이 진실로 청정에 바탕을 둔 화합을 이루어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 사심(私心)없이 적극성을 보인다면 실현방법은 충분히 발견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