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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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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수상(山居隨想) - 현담 1982년 09월 7호
가야산은 너무 결백하다. 너무 완강하고 오롯하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아와서 온갖 주문을 하지만 결코 자신의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질서와 리듬에 의해 고쳐야할 것만 고쳐가고 용납할 것만 용납하며 움직여 갈뿐 쓸데 없는 주문에는 응답하지 않는다. 때로는 냉정하게도 생각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야산을 거울로 생각하고 있다. 기쁨과 슬픔을 경박하게 내색하지 않는 아주 신중하면서도 그러나 다이내믹한, 살아 있는 의연한 거울 말이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무덥고 지루했다. 계절의 기후가 그랬고 세상의 움직임이 그랬다. 우리 산에 사는 사람들은 큰 산 그늘 아래서 부끄럽게도 잘 지냈지만, 마을의 하루하루는 몹쓸 무더위 바로 그것이 였다.국내적으로는 자기들의 기업논리에 의해 얻어갈 만한 이익은 다 얻어가고, 이때까지 종사하던 200여명이 넘는 근로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문을 닫아버린 콘트롤데이타사건이라든지, l876년 강화도 사변 이후 1945년 일본군국주의가 멸망할 때까지, 강압과 야만으로 진행된 저들 일본근대사를 왜곡 미화하여, 또 한번 한국민을 비롯하여 동양제국을 모독한 일본 교과서 왜곡 사건이라든지 특히 생각나는 것은 저 사막의 나라 팔레스타인 해방독립군의 일이다. 신을 섬기며, 같은 땅에 살면서도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 무엇보다도 저 교활한 열강의 이해 놀음에 농락 당하여 수천년의 정든 땅과 처자와 부모 형제를 적에게 내놓고 쫓겨난 해방전사들의 일이다.
사람은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땅은 바로 우주이고 생명이며 어머니이다. 저 허구의 높다 높은 하늘의 나라가 아닌 여기 낮은 땅이야말로 사람을 사람이게 하고 역사를 생장시킨다. 그런데 저들 자신들의 빼앗긴 땅을 찾겠다는 독립군들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덜된 쇼비니즘에 젖은 시오니스트들파의 물리적 전쟁에서 졌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 유대 사람들의 승리를 승리로 생각치 않거니와, 빼앗긴 땅과 자유를 찾기 위해 죽기를 맹세하며 혁명 ! 혁명 ! 의 구호를 비장하게 외치며 퇴각하던,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전사들의 정의가 패배하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한국사람으로서 저들의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니와, 무엇 보다도 소중한 자유와 생존과 그리고 평화야말로, 내가 가진 힘과 용기에 의해서만이 보장되어진다고 하는 교훈을 받는 것 같다.
정말이지 오늘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부처 이상이고 신을 뛰어넘는 귀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가치와 진실이란 바로 우리의 생존이 선행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존이 없다면 모든 것은 그야말로 무이고 적멸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부딪히고 겪고 체험하는 것, 사는 것, 이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해도 크게 잘못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도 하다. 부질없는 열정 같은 여름이 지나고 조금씩 의젓해지고 눈이 맑아지는 가을을 맞으며, 아니지 아니지 하면서 저 원론적인 의문을 다시 갖는다. 살아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면 그러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목숨의 무한 연장이 아닌 참으로 산다는 것, 사는 것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소중한 것이 존재이듯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본질의 정립이겠기 때문이다. 존재 즉 본질 본질 즉 존재, 진여 즉 생멸 생멸 즉 진여이겠기에 말이다.
가을을 맞으며 다시 생기 있는 목소리를 갖고 싶다. 모두의 귀에게로 가서 밝고 맑은 메아리가 되고 싶다. 가야산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좀더 따뜻하고 좀더 겸허해지시라고. 그리하여 커다란 원칙,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민족적 대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다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참으로 온전한 거울로서 우리의 말씀과 행위를 비춰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