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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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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2년 09월 7호
세상은 넓기 때문에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태 또한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흔히들 이렇게 다양한 삶의 문제를 쉽게 이원적으로 구분지으려 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진 자 못가진 자, 높은 이 낮은 이…..
이렇듯 대립적인 형태로의 구분은 끝이 없을 것이다.
대립은 대립을 낳고 계급은 계급을 부를 뿐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문제이듯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서로 간의 자리가 바뀌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못난 이는 보호를 방아야 하며, 못가진 자는 좀더 분배 받아야 하고, 낮은 사람은 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난 이는 겸허해져야 하며, 가진 자는 정당해져야 하고, 높은 사람은 성실해져야 한다.
어버이의 사랑은 차별이 없다고 한다. 잘난 아들에게나 못난 딸에게나 조금도 차이지지 않게 베풀어진다고 하며, 고은 맏이나 미운 막내를 안가리고 한결같이 나뉘어진다고 일러온다.
이와 똑 같은 깊이로 세상 모든 생명들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신의 사랑이요 보살의 자비이리라.
정년 한 종교가 인간은 그들의 자성(自性)이 같고 신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려면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듯이 종교는 어떤 인간도 감싸안을 수 있어야 한다. 종교의 대상은 인류 전체 나아가 생명 전체이지 가진 자 높은 이 잘난 사람만을 위한 것도 못가진 자 낮은 이 못난 사람만을 위한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못나고 못가지고 낮은 이들의 힘과 권리와 자유를 위해 정열을 쏟는 만큼 가지고 잘나고 높은 자들을 위해서도 겸허 성실 정당을 가르쳐야 한다.
요즈음 여러 종교에서 낮은 데로 임하는 종교, 민족을 위한 종교, 국가를 생각하는 종교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맞은 편에는 또다른 계급 민족 국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게 염려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종교의 이름으로 대립과 갈등을 불러들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정치의 길이 다수를 위한 길이라면 종교의 길은 전체를 위한 길이다. 정치가 져버린 소수를 위하여 끝까지 연면의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 종교의 길인 것이다.
가을 햇빛처럼 모두에게 골고루 퍼부어지는 가르침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