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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어디서나 슬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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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86년 02월 48호
초여름의 새벽 이 지구촌엔 오직 파인애플향기로 가득 쌓여있는 것처럼 온통 거리는 그 향기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외제 자동차들이 발이 묶여 도시는 무질서의 혼돈으로 쌓이고 들끓는 군중들, 차의 소음과 인간의 목소리의 혼잡, 그것들이 파인애플 향기에 취해 아우성치고 있었다. 마치 이것은 스폐인의 노벨상 작가 G.마르께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바다나 농장이 망한 다음 그 향기가 10년동안 거리의 물결로 흐르고 있었다”는한구절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환상소설도 아니고 시(詩)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 생존하는 이 세계의 땅 방콕시의 중심가에서 엊그제 일어난 일이다.
‘세계의 숭가가 하나의 진리’라는 주제로 열린 제4차 세계 숭가 회의차 방콕에 갔다가 그곳 숭원에서 하룻밤을 묵고 야침에 태국πai)스님들과 탁발하려 나가다가 본군중시위의 한 현장이었다. 바로 우리가 묵고 있었던 대리석 사원의 주위엔 여러 정부청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농림 성을 겨냥하고 가난한 농민들이 생존의 투쟁을 벌린 것이다. 파인애플 데모의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고 몇 년째 태국 정부에서 파인애플을 재배하여 먹고사는 수많은 농민들에게 가격인상을 선심(약속) 쓰고도 한 푼도 을려 주지 않은데서 일어난 농민운동인 것이다. 파인애플 하나 값이 1바트(한화로 약30원)도 안 되는 0.5바트로 중간 도매상인들이 버지값으로 매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5~6배가 넘는 돈으로 과대한 폭리를 하고 있었다. 결국 가난한 농민들이 피땀 흘려 거둬들인 과일이 똥값으로 팔려 최소 임금도 안나오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생존의 권리가 착취당하고 있었다. 정부와 도매상들은 몇 배로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대부분의 농산물들이 그런 유통과정으로 하여 태국의 빈부 차는 극심할 정도였다. 계층 간의 갈등은 극대화되고 첨예한 인간의 소외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농촌의 현실과 똑 같았다.
수많은 농부들이 먼 곳 고향 땅에서 밤새 트럭으로 방콕시에 달려와 새벽 정부청사가 있는 중심 가의 2km거리에 그들의 살덩이를 산더미처럼 부서 버리고 만 것이다. 과일들이 말없이 누워서 남국의 아침 열기에 제 몸을 썩이는 그 인간애의 마비현상, 그것이 오늘날 세계의 도처에 잠식되고 있다
함께 사는 삶, 민중의 공동체 의식의 마비 현상이 종교 속에 더욱 팽배해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프롬은 우리는 우리들 인간의 내부 속에 도사리는 비인간 애의 이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유스러워져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종교인들이 흔드는 관념적인 사랑의 깃발들, 초현실적인 출세간 주의나 초월적인 신비주의 경향은 그와 같은 비인간 애의 마비현상의 한 극단적인 모습일 것이다.
태국을 국교가 불교라 해서 불자들은 참 부러워한다. 부처님 진리대로 사랑의 실천을 나누며 사는 국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한 정종교의 이념이 사회제도나 국가의 지배(통치) 이념으로 표방에 그것들이 잘못된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되고 다스려 졌을 때 민중들의 삶은 제도적 이념의 메커니즘에 상처를 입게 된다. 태국은 수백만의
승려들이 먹고사는데 아무런 불편도 없이 잘 살고 있다.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그와 반대로 수백만의 농민들이 가난 속에 신음하고있다. 군부와 권력자 그리고 성직자가 결탁하여 민중의 소외, 갈등을 낳고 있다. 그런 모진 바람이 우리 땅의 들판에도 불고 있었다.
낮은 언덕의 나뭇가지에 재잘재잘 봄기운이 열리는 산사의 마루턱, 유마거사가 앓고 있는 병이 어느 곳에서 끝날까. “중생의 고통이 다하지 않은 한 나의 아픔(병)은 끝나지 않으리라” 그렇다 민중의 구체적인 삶 속에 동참되지 않을 때 우리들 수행자들은 극한의 역사 이 사회 속에 영원한 사랑의 마비, 정신의 폭력자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