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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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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 여연 1982년 09월 7호
* 차를 저장하는 일
낮에는 전원에 나가 노동하여 일상의 삶을 꾸리고, 밤에는 참선하며 설법하면서 온전히 생을 자유자재했던 중국의 부대사(傳大士)는, 좋은 차를 얻고자 몽정산(夢頂山)에 들어가서 스스로 띳집을 엮고 차나무를 심으며 살았었다.
다도(茶道)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차의 방편을 통해 끊임없이 들먹이는 인간의 심성을 정좌(靜坐)하여 다스리는 일이다.
우리의 초의(艸衣)스님이 산천도인(山泉道人) 김명희(金命喜) 한테 보낸 글 가운데 “옛 성현들은 모두 차를 사랑했었는데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성미가 사특하지 않느니라” 하는 귀절이 보인다. 이리 이 세상 생명을 지니고 있는 사물 하나 하나가, 제각기 제 모습 갖추어 곱고 맑은 것 아닌게 있겠는가 마는, 차는 특히 조주(趙州) 스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가장 어여쁜 식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고운 차를 따서 만들고 이윽고 법제된 차를 분별하여 골고루 나누어 갈무리하는 일 또한 정결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차의 오묘한 것은 조다(造茶)의 정갈스러움, 차 저장의 적절함, 그리고 포법(泡法)의 적의함,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지는데 있다.
아무리 정성들여 만든 차라도 잘못 저장하면 다 버리는 낭패를 만나게 되는 것이 차의 까다로움이다. 무엇보다도 차는 습기와 찬 곳을 피해야 하며 음산한 곳을 가려야 한다.
좋은 곳을 찾아 수행하는 납자(納子)들이 거처를 선택하는 것이나, 사람들이 맑고 청결한 곳에 안주하여 지순한 삶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차 또한 좋은 장소를 얻어 머물려야 되는 것이다.
차를 저장하려면 먼저 만든 차를 깨끗한 함지나, 또는 좋은 문종이나 딱종이로 여러 겹의 자루를 만들어서, 그 속에 넣고 공기를 차단하여 품성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오래도록 저장하는 것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좋은 것 같았다. 부드럽고 연한 차가 뜨거운 물에 의하여 기운이 상하였으므로, 본디 가지고 있던 자연한 성품이나 때깔을 회복하여 중화되려면, 아무래도 많은 차가 서로 어울려지기를 기다려야 미묘한 발향(發香)이 될 것이리라.
이리하여 중화된 차를 각각 조금씩 나누어 가지려면 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초의스님의 저서에서는, 청결한 병에 담아 대나무로 만든 피편(筍皮)으로 누르고, 또 몇 차례 종이와 댓잎(죽순껍질)으로 빈틈없이 쑤시고 봉한 후, 연와(煙瓦)를 얹어 다실(茶室)에 두는데, 이 때 다실에는 바람이 스며들거나 화기가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바람이 차에 스미면 냉해지고 화기에 접하면 차색이 황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다소(茶統)에서는, 자기항아리에 넣고 역시 죽순 껍질로 누르고 입구 또한 죽피로 꽉채워 봉하고, 삼끈으로 매어 새로 구운 곱돌로 그 위를 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저장하는 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옛날에는 사실상 그릇들을 습기를 피하게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였으리라. 오늘날도 차를 보관하는 용기를 선택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오동나무나 피나무 그 밖의 잡목들로 만든 차통이 있거니와, 특수 코팅된 포장봉투도 일본 중국 등에서는 사용되고 있지만 제일 완백하고 무난한 것은 역시 캔(깡통)인 것 같다. 이런 것은 일본에서는 기계화되어 진공으로 찰 처리되고 있다.

*불을 다루는 일
차를 끓이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불이다. 초의스님도 이 불에 대해서는 여간한 주의를 기울인 게 아닌듯하다. 불이 화로에서 완전히 달은 후, 다관(茶罐)을 얹어서 가볍게 빨리 끓여야 한다. 이것을 문무지후(文式之候)라 한다. 문(文)이 과하면, 수성(水性), 곧 물이 지니는 성품이 유(柔)하게 되어 차가 뒤지고, 무(式)가 지나치면 화성(火性), 곧 불의 사나운 기운이 극력하여져서 좋은 차가 물에 풀려 스미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찻물을 끓이는 숯은 단단하며 완전히 숯이 되어야 한다. 좋은 숯이 아니면 아직 나무 속에 남아있는 성질이 연기를 내어 물의 품성을 상하게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불을 다루는 일 또한, 예전에는 편리하고 쉽게 다룰 수 있는 도구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더욱 어려웠으리라. 오늘날은 물을 끓일 수 있는 포트나 전기주전자 등 여러가지 가전제품이 많이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으나 굳이 전통이라는 틀에 걸려 어렵고 까다로운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를 어떤 것에 맞추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이겠으나, 멋과 품위 그리고 고상한 아취는 형식에 있는 것은 아니리라. 참으로 깊고 너그러운 중화(中和)는 기술적인 꾸밈의 길이 아닌, 자연에 순응하고 사회에 순응하는 걸인 것 같다.
〈스님, 해인사 원당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