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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교수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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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초대석 - 시명 1986년 01월 47호
문화란 시대 정신의 반영

-해인 표지화를 그려주신 고현교수-

창간호부터 해인지의 표지화를 그려주셨던 고현 교수님을 찾아가는 날은 겨울날씨 답지 않게 포근하였다.
세밑이라 신정 연휴를 즐기려 가는 사람들을 헤집고 광주에 도착한 시간은 의외로 늦은 시간이었다.
언제나 고현 교수님을 만나서 느끼는 인상은 그 외모에서 풍겨오는 것이 여간 단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의 몸가짐에서 예술가연 한다든지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예술가적 냄새를 피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이자와 지성으로 일상을 가다듬는 , 선이 활실한 그리스 조각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을 받는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성품이 격리되어 있거나 딱딱한 편은 아니다. 그와 잠시 이야기 해보면 당장 남도(남도) 사람다운 훈훈함과 안으로 타고 있는 동백꽃 같은 정열을 만나게 된다.
\"문화란 그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 전통은 전통대로 수용해야겠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현대에 맞는 이 시대 사람들의 호흡이 필요합니다. 사원의 벽화나 천정화에서 뿐 아니라 작은 인쇄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그 표현 방법이 보다 불교를 전달해 주는 확실한 메시지이어야 합니다. 불교는 이제까지 너무나 과거 지향적이었습니다. 찬란한 과거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요, 조상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유산이나 선물에만 만족해 있다면 결코 과거에 걸맞는 문화의 계승자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문화유산이 다시 새로운 창조작업을 계속해 가야할 것입니다. 새로 세우는 불교건축은 이 시대의 표현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몇 백년 뒤에 오는 불교도들에게 이 시대의 불교도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 문화진통을 잇는 작업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불교계의 출판물 붐과 함께 그의 그런 점들을 전통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이 시대가 가진 방법으로 시도하였다. 지난 부처님 오신날 봉축 기념 포스타가 그랬고 불일출판사가 만든 여러 가지 불교카드는 새로운 인식을 불러 일으키는 선각자적 작업이었다.
이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그의 일괄된 정신은 시각적 예술인 회화로써 종교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자 하는, 불교로 향한 뜨거운 정열과 구도적 자세로 넘쳐 있었다. 그런 정열만큼 외로움도 깊다고 이야기 하였다.
특히 해인지 표지작업은 더 외로웠다고 말했다.
\"처음 해인지 표지화를 그릴 때에는 굉장한 의욕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습니다. 몇 시간씩 그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정신에 좀 가까운 표현을 할 것이며, 법보종찰 해인사의 이미지를 잘 나타낼까 고뇌하다가 해인사의 근본이념인 화엄종과 법보의 근본인 반야심경을 그 바탕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는 수인이나 연꽃을 그리기도 하며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첫 표지가 나가고 나서 표지화에 대한 독자들의 불평이 쏟아져 들어 왔을 때, 그는 그래도 갑자기 표지화가 바뀐 것 때문에 독자들의 당혹감을 이해하는 차원으로 작업을 계속했다. 둘째호를 받은 독자들로부터 부처님의 손이 잘렸다는 등의 항의전화가 들어왔을 때, 그는 표지화를 그리는 일을 그만 두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향적스님의 한마디에 새로운 정신으로 이 작업에 임했다고 말해 주었다.
\"교수님, 교수님이 하시는 작업으로 세상에 그 흔한 박수나 환호소리를 기대하면서 작업을 했습니까? 새로운 일을 시도할 사람에게는 고난과 질타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제야 말로 교수님이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술이란 얼마나 고독한 작업인가, 자기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과 고뇌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어야 하면서, 자기만족이나 세계에만 국집할 수 없는 전달 매체로서의 미술인 응용미술, 목적미술이 가져야 하는 부담감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리라.
그것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누구도 시작하기조차 꺼리는 황무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작업에서랴!
그러나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이 일은 꼭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아무도 시작하지 않으려는 이 일에 나는 웅덩이를 파는 작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내가 이 일을 완성하는 자가 되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시작한 작업을 꾸준히, 열심히 내 나름대로 하다가 보면 누군가 이해하고 협력해 줄 사람, 같이 해야겠다는 의식을 가진 분들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그윽한 연꽃이 피어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다. 그가 하는 작업이 아직은 정착된 단계는 아니다. 그의 의도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다만 그가 할 뿐인지도 모른다. 순수나 전통만을 고집하고 있는, 아니면 구태의연과 낡은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는 이 땅의 불교미술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첫 시도였었다.
그는 그의 모친이 독실한 불교신자임을 여러번 강조하였다. 그도 한때 출가를 결심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불교를 포함한 전통에 뿌리를 둔 작업을 계속했으며 대학원에서도 「단청미술의 민예사적 고찰」로 학위논문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관심만으로 불교미술이 되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줄곧 불교정신을 작품활동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그 혼을 불어넣어 왔다.
\"불교예술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곧 신행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과 예술은 다른 것 같지만 이것은 하나로 늘 연결된 것이니까요. 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말은 왜 이렇게 불교미술이 낙후되었느냐 하면 그 속에는 불교측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불교 미술하는 사람들의 신심문제와 계속적인 공부와 그리고 구체적인 불교계의 지원입니다.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그 교리나 논리가 퍽 세속인이 알기에는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작가는 공부해야 하지요. 그리고 그 심오한 불교의 세계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니 쉽게 해도 될 작업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구태여 어려운 작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작업에 대한, 댓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현대의 시대가 산업화 시대이고 물질문명 시대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아직도 불교계에서는 「무주상보시」라는 말을 너무 편의대로 적용하려 합니다. 이런 풍조에서는 불교의 일에 전념하기 어렵고 전반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도 힘들 뿐, 미래의 후학들에게조차 권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는 불교쪽의 작업을 한 후 상당량의 빚까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해인지에 쏟은 정열만큼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방문자는 자꾸 그 말이 송구하고 부끄럽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가 부어준 만큼 불교미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상당한 세월을 앞당겨 준 그 공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구차스러운 변명이 될지 몰라도 해인지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그분의 성의있는 작업에 보답하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그렸던 창간호 이후의 그림들은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인지의 역사에 기리 남겨질 것이다.
<대담·편집 : 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