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4월 초파일. 이날은 자비의 상징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그래서 불교계
는 이날을 일년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로 기념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여서 각종 문화 예술, 학술, 신앙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다. 5월 7일에는 부
처님 나신날을 닷새쯤 앞두고 봉축행사의 꽃 이라 할 수 있는 제등행렬이 있었다.
매년 불탄일 당일 또는 전일에 진행되어 왔던 이 제등행렬이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앞당겨 시행되었다 부처님의 오심을 기리는 것은 물론 교세의 과시라는 측면에서 종단에서도 가장 신경을 쓴다는 이 제등행렬은 최근 오육년 사이 별탈 없이 끝난적이 없을 정도로 사회의 주목을 받는 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전보다 더 큰 파장을 낳았는데 그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오전에는 부산 동의대 사태로 숨진 전경 6명의 장례식이 T.V로 생중계된 이날, 봉축 위원회의 경찰투입 요청이 없었음에도 오후 4시경부터 정 ∙사복(소위 백골단) 경찰 약2,OO0명이 여의도에 깔렸다. 이들은 법회에 참여한 불교도의 대열을 에워싸거나 혹은 대열 중간에 들어와 방해했다. 평화롭고 경건해야 할 법회 장소에 청하지 않은 경찰이 나타남으로써 많은
불교인은 위축감과 불쾌감을 느껴왔던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날에는 특히 불자들어 예불을 드릴 때 대열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이 불자와 마주서 담배를 피우면서 불교도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등의 행위로 불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오후 7시경 예불이 끝나고 제등행렬이 시작되자 대불련 행렬을 중심으로 사복전경(소위 백골단) 6개 중대 900명이 중놈들이 뭘 안다고 다 죽여 버리겠다는 등 협박과 폭언을 하면서 따라 붙었다. 행렬이 마포대교를 지나자 사복경찰은 정법수호 불교도가 앞장서서 조국통일 앞당기자는 내용이 적힌 만장과 플래카드, 그리고 불국기, 만장기 들을 강탈, 훼손하였다. 9시경에는 제등행렬이 아현동 고개를 지나면서 해체 합수부 퇴진 노태우 등의 구호가 연도의 시민들에게 호응을 받으면서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사복경찰 300명이 대열을 급습하여 닥치는 대로 불자를 때리고 상징물과 연등을 부수었다. 이로 인해 대학생 불자 손상훈, 노복영 법우가 각각 둔기로 머리를 맞아 기절하여 병원에 실려갔고, 머리가 깨져 8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또한 윤영희 불자가 역시 둔기로 맞아 코뼈를 수술하는 등수십 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000여 개의 연등과 상당수의 장엄물이 파괴되어 길거리에 나뒹굴어 약 20분 동안 행진이 중단 있다.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시 행진은 시작되었으나 경찰의 협박과 폭행은 계속되었고, 10시경 행렬이 종각 앞에 다다랐을 때는 재차 경찰이 대열을 급습하여 장엄물을 부수고 불자들을 폭행하였다. 게다가 이를 항의하고 말리던 스님에게까지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러 보
문, 제영, 진오, 연산스님 등이 부상당하고 오조가사까지 찢겨지고 안경이 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거세지는 불교계의 항의 물결
이날경찰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에 분격한 대불련 회원 등 불자들과 스님들은 행진이 끝난 후 민정당사 앞에서 항의집회와 농성을 갖고 서대문경찰서 기동대장의 사과를 받았으며 대불련 회원 일부가 통불협에서 농성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날은 일단 귀가하였다. 그리고 동일 법보, 불교, 주간, 해동 불교신문 등의 불교계 기자14명은 ■책임자 엄중 처벌과 사과.■피해보상 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날 대불련, 통불협에서는 항의, 규탄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서불청협에서는 비상대표자 회의를 소집, 전행실무 책임을 결의했다. 그 다음날에는 대승불교 승가회, 정토구현승가회, 동국대, 석림회 동에서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으며 청년단체는 조계사 청년회 주관으로 제 1차규탄법회를 갖고 성명과 결의문을 발표했고 대불련 임원5명은 항의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5월 10일에는 서울 불교 청년회 주관으로 청년단체 제 2차 규탄 법회가 있었으며 17개의 승려, 청년단체는 5.7 제등행렬 경찰 폭력 만행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위원장에는 명진, 진관스님과 배영진 씨 등 4인을 추대했다.
다음날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당국자 부처님전에 참회 ■공개사과 및 책임자 처벌 ∙피해보상 등을 촉구했다. 13일에는 대불련이 동국대 정각원에서 규탄 법회를 가졌으며 이 무렵에는 안내전단, 자료 등이 전국 각지의 사찰에 우송되고 있었다. 이어 15일에는 동국대 석림회 스님들이 조계사 불교회관 l층에서 단식기도에 돌입했으며 치안본부장과 시경국장을 고소했다. 이튿날 오전에는 공대위 항의단 40여 명이 시경을 방문했으나 15명이 재가불자와 스님 한분이 남대문 경찰서에 한때 연행되었다 풀려났으며 오후에는 공대위 의장단 등이 재차 시경에 항의 방문하고 시경 4부장에게 항의문을 전달하였으며 치안본부장과 내무부장관에게는 항의문을 발송했다. 이 항의문은 정부 당국과 경찰에 대한 우리의 요구사항에서 정부당국의■ 공식사과 성명을 5대 일간지에 게재하고 ■책임있는 국무위원의 조계사 대웅전 참회 ■내무부장관 사퇴 ■치안본부장, 시경국장 파면 ■부상자에 대한 보상과 정신적, 물질적 피해 배상 ■이상의 요구가 5월 19일까지 관철되지 않을 시는 종교를 탄압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집단으로 규정, 현정부 퇴진우동을 벌여 날갈 것 등을 촉구, 천명했다. 그런데 공대위는 이날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5.7 만행에 대한 총무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할 예정이었으나 서원장이 백담사의 전두환씨 부부 백일기도 회향에 참석했기 때문에 회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는 중앙승가대학 스님들이 석림회 스님들의 단식기도에 동참하고 18일에는 동국대 교수 10명이 \"5.7 제등행렬에 의해 진행된 불상살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이날의 경찰폭력은 명백한 종교탄압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불교도가 납득할 수 있는 당국의 조치를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불교계의 분노가 확대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비화되자 이종국 서울시경국장은 공대위가 제시한 대로 5월 19일 조계사를 방문해서 단식기도중인 스님들께 참회의 큰절을 하는 등 공손한 태도로 사과와 함께 400만원의 배상금을 가져왔다. 16일 공대위 항의단이 서울시경을 방문했을 때의 경찰측의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는 사라졌는데, 오히려 총무원장 스님이 비굴한 태도로 일관해 자리를 같이한 17개 단체 대표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은 또 시경국장에 의해 항의문에 대한 회신이 전달되었다. 이 회신은 \"불기2533년 부처님 오신날 종축 제등행렬 중 장엄물이 일부 파손됙 신도들 다수가 부상을 입었으며, 행렬이 저지되는 등 예기치 않았던 사안이 발행한 데 대하여 전불자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는 한편 깊은 사려보다는 직무의욕만 앞선 일부 대원들의 불민한 소치였음을 깊이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금후에느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치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요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평화로운 제등행렬 정착을 위하여
20일 낮 조계사 마당에서의 공대위 주최 \'5.7 재등행렬 경찰 폭력만행 규탄법회\'는 전날 시경국장의 사과로 인해 다소 맥빠진 가운데 200여 대중이 모여 법회를 마쳤으며 예정된 평화행진은 취소되었다. 다음 날 석림회 주최의 규탄 법회는 스님 80여분을 포함 300여 명의 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법회를 마치고 조계사에서 파고다공원까지 왕복 평화 행진을 했다.
공대위는 이날 발표된 결의문 부제가 \'5.7 불교탄압을 분쇄하고 불교자주화 혁신으로 민족자주와 통일의 여래사가 되자!\'는 것에서 표현되듯 구체적인 요구사항보다는 선언적인 내용을 천명하면서 이 날의 규탄법회로 사건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석림회는 다음 날 규탄법회 결의문을 통해 ■내무부장관 공개사과 ■현장책임자 직위 해제를 주장, 시경국장의 사과로 마무리는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최근 오륙년 동안 제등행렬 때면 단지 구호와 플래카드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폭력이 자행되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행진이 중단되는 발생하고 행진이 중단되는 불상사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러한 불상사는 최근 현정권에 민주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된 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정권은 \'좌경, 폭력세력 척결.\'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의 미명 아래 각계각층 국민들의 생존권, 민주화, 기본권 요구와 주장을 공권력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화를 하겠다는 6공은 요즘들어 그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5공과 다를 바 없는 본질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평화적이고 합법적 연례행사인 제등행렬에 가해지는 폭력을 보면서 많은 불자들은 정권 스스로가 가장 폭력적이면서 \'폭력세력 척결\' 운운하는 것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초파일을 며칠 앞두고 시국사건과 관련하여 수배중이던 조선대생 이철규군이 변사체로 발견되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익사추정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의 고문에 의한 타살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나돌고 있었으며, 지금도 이 사건이 불법적인 임의단체인 공안합수부의 과도한 탄압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겠다. 그 폭압의 시절 5공 때도 시국관련 구속자 수가 하루 평균 1.6명에 불과했으나 89년 들어와서는 4.3명으로 2.69명이나 늘어난 것에서 나타나듯 양심수가 양산되고 있다. 특히 4월 3일 합수부가 결성된 직후부터는 하루 평균 8.3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80년대 10.27법난, 87년 광주원각사 경찰난입사건에 이어 이번 5.7 제등행렬 경찰난입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정권에 의한 불교계 탄압은 본질적으로 국민에 기반을 둔 민주정권이 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 불교인은 힘을 합쳐서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정진해야 한다. 더이상 정권이 불교를 침탈할 수 없도록 하고 평화로운 제등행렬을 보장하는 길은 불교인이 각성하고 힘을 키우는 것뿐이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