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끄뜨 머리를
움켜잡고
흐르는 시간 속에
구멍 뚫린 자신의
공허함을 허공에 띄운다
이제
어김없이 밀려오는
내일이메
그 깨끗한
여백에다
자신의 삶을 담고
마음껏
휘파람 불어야지
조각난 상념들을 모아
맑은 느낌과
새모습으로...
위의 글은 시가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흐트러진 자신을 가다듬고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며 그것에 대한 간추린 표현방법일 뿐이다.
밝아오는 병인년 새아침 아내의 권유에 못이겨 창문을 열면 바로 코앞에 닿을 듯 가까운 앞산에 참으로 오랜만에 등산길 나섰다. 새벽이라기엔 늦은감 있는 시간이라, 오르는 사람보다는 내려오는 사람들이 태반이어서, 마주쳐 오르는 자신이 왠지 쑥스럽다.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부터 이렇게 지각생이 되어 버린 듯한 자신의 모습이, 이미 묵은해가 되어버린 지난해의 나의 생활 일면이 아니었던가 싶다.
문득 지난해 등산길에서 가끔 마주치던 노시인(老詩人) 한분이 생각난다. 늦가을 숲속의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소매없는 런닝셔츠와 짧은 바지차림으로 대각선 등산로를 힘차게 가르던 모습이, 오늘도 어김없이 이 길을 달렸을 것을 생각하니 숨이 벽차 힘겨운 자신에 채찍인냥 생기를 더해 준다.
후회없는 삶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의 마지막 순간 \"나에게 좀더 빛을\"하며 숨져간 어느 철학자의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의 생명이 단 몇 시간만이라도 소생될 수 있었다면 그는 다시 무슨말을 하였을까. 어쩌면 처음과 같은 말의 되풀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흐른 시간을 되돌아보며 느끼고, 내일을 생각하며 이상을 키우고,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점철된 과거와 오늘의 삶이 나 자신 미래 설 수 있다면 감히 답할 수 있으리라. 자를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번민하며 숱한 오욕을 억누르고 자신을 과연 올바로 직시할 수 있을까.
삼년여 「해인」지 출판의 일원이 되면서부터 진정한 삶이란 어떤 형태의 모양일까 하고, 난해하고 깊게만 느껴졌던 불교의 심오함이 미약하나마 「해인」지를 통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음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 집안 대대로 이어져온 불교의 가풍이, 어머님 오직 한 분만이 그 명맥을 고집하고 계심이 안타까웠는데, 이 자식이 그 뜻을 본받아 나의 2세까지 떳떳이 이어주리라고 다짐해 본다.
벌써 산마루가 밝아온다. 보다 맑은 느낌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가꾸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새벽마다 앞산에 올라 상쾌한 약수와 더불어 그날의 계획들을 정리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좀더 많이 가져야겠다.
보다 새로워진 자신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