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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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진각
1986년 01월 47호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학자는 그의 본문인 학문 탐구의 이상(이상)을 가지고, 경제인은 자신의 사업에 충실하면서 보통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들의 소망을 위해 각자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그리고 성직자(성직자)들은 이 세상의 영원한 인류 평화와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구도심으로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자기 인상에 그 나름대로의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진 소망들은 모두 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아진다.
사람들은 마음이란 묘한 것이어서 그 마음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는데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물론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마음가짐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부처님 말씀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말이며 인생에 있어서 그 어떤 결과도 비유하여 말하자면 어떤 사물에 있어서 마음이란, 실체와 성공과 실패, 아니면 행복과 불행이라는 그림자의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것은 불교에서는 인과(因果)의 법칙이라고 하여 불교 이론의 근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마음은 자기 인생의 분명하고 중요한 결과로서 나타나는데 정작 마음이란 어떠한 행위(行爲)를 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업이란 말 속에는 착한 일을 하는 선업(善業)과 악한짓을 하는 악업(惡業)과 그리고 착함도 악함도 아닌 무기(無記)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업들은 다분히 습관과 버릇에 기인하는데 그러므로 그런 습관이 나오도록 하는 환경적인 제(諸) 요소도 생(生)에 있어서 퍽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행위의 당위성(當爲性)에는 참으로 많은 고뇌가 따르기 마련인데 사회학에서도 종교에서도 이 문제는 계속 논의(論議)되어 왔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당위란 어떤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르기 마련이며 그것이 사회적 제(諸) 요소와 함께 개인의 생각을 말살하거나 부정될 경우와 가치기준에 혼란이 왔을 때 , 거기에 처한 인간들은 누구나 회의하기 마련이며 좌절과 고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위와 가치 기준은 언제나 보편적인 윤리(윤리)에 바탕을 두야 한다고 생각되며 인간의 양심(良心)에 뿌리를 두지 않을 때 자연 갈등과 혼란을 초래 할 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가 죽어버린 비도덕적 사회 내지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사회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삶의 목표가 없거나 자신의 주체 의식이 박약할 경우 늘 내적 외적 유혹에 빠지거나 방황과 좌절과 혼미 속에서 지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보편 타당한 당위의 문제를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진실과 진리에 그 바탕을 두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당위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궁극적인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종교에 귀의하거나 양심에 바탕을 둔 윤리에 입각하여 참회와 정진으로 자기의 나아갈 길을 재확인하고 악한 업을 배재하고 착한 업을 권장하면서 영원한 상대적인 선악을 초월한 열반적정(涅槃寂淨)을 향한 선정(禪定) 속에서 자신을 재조명하고 성찰을 계속해야 하리라고 본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양심의 고지를 굳건히 함은 물론 영원한 자기 행복과 인류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밝은 마음이다. 태양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세상의 진실을 비추어야겠다.
우리 모두가 병인년 새해에는 새 아침을 밝힐 저 햇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비추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