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병 없이 오래 살고자 하며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제 나름대로 성공하고 권좌(權座)에 오로고자 한다. 이는 사람으로 누구나 바라는 심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이 모두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기대한 만큼 어떤 결과를 이루지 못하는 것도 또한 인생살이에서 흔히 있고 당하는 일이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못하는 일을 종교적 힘인 천지신명의 힘이나 부처님의 영험에 기대어서라도 이루어 보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의 힘보다 위대한 초인적인 힘에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기복(祈福)이라 할까, 작복(作福)이라 할까, 엄밀하게 한계 지우기가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성취해가는 방편을 무작정하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치성(致誠)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복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이와는 달리 어떠한 발원을 하고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지극정성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부처님이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신념과 기대를 가지고 만약 그 성과가 뜻대로 되지 못했을 때에도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였음을 자인(自認)하고 더욱 분발하고 노력을 하여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세를 나는 작복(作福)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 다만 의지하고 기구(祈求)만 하면 부처님은 \"복주머니가 여기 있으니 가져가라\"하시며 선뜻 내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복, 즉 복을 비는 행위요, 자신의 최대 최선의 노력을 할분 거기에서 오는 결과를 오로지 부처님의 가피(加被)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내가 내 자신의 복주머니를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작복, 즉 복을 짓는 행위하고 말할 수 있으리라. 전자(前者)는 노력은 하지 않고 부처님의 힘만 빌릴려는 자세이고, 후자는 자신의 노력에 부족한 점을 부처님의 힘을 빌려서 보완(補完)하고자 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이 두 행위를 구별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전자는 맹목적이고 소극적이고, 후자는 논리적이고 적극적인 자세하고 한다면 어떨까.
불교는 흔히 세상에서 지나치게 기복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그 동안 불자들이 너무나 맹목적이고 소극적인 태로를 취한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마치 부처님께서는 큰 복주머니를 나누어 주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불자들의 자세는 복주머니 나누어 주기를 앉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하여 복주머니를 만들어내겠다는 신념으로 부처님께 서원(誓願)하고 한마음으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기복인 경우에는 결과에 대하여 이루어질 것인가, 말것인가 예기(豫期)할 수가 없고, 불안이 따르고 때로는 불평 불만조차 따르기 마련이지만, 복을 짓는 행을 하는 분들은 부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노력을 하게 되니 항상 희열과 자신이 따르고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설사 성과가 미흡하다 할지라도 자책은 할지언정 부처님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며 더욱 분발하려는 용맹심이 발동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숱한 위기와 곤경을 겪어왔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곤경을 극복하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오로지 굳건한 신심과 어떤 경우에도 비관하거나 실의(失意)에 잠기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대처해 온 결과하고 생각한다. 역경에 처했을 때일수록 좌절하지 아니하고 헤쳐 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바로 신행인(信行人)의 자세, 즉 복 짓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복과 행운을 부처님으로부터 공짜로 얻어려 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복과 행운을 만들어 자신만을 위해 쓰지 말고 온 누리에 있는 중생들과 함께 나눈다면 그 또한 보살의 행이 아니겠는가.
새해에는 복을 많이 지어 모든 이웃과 세상이 더욱 풍요하고 복되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