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이판 사판이었다. 아내의 말마따나 이번 전시회에 실패하면 어디 사립학교 미술교사로 취직을 하든지, 아니면 공종달 이름 석자가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그림 값이 이수근 화백이나 누구만큼은 못 따르더라도 호당 백만 원 받기는 다방 레지 엉덩이 두드리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호텔 입구에서 또 한번 눈 앞이 노래지는 충격을 받았다.
주문한 사이즈 대로 대형은 틀림없는데 현수막 글씨를 발바닥으로 썼는지 아니면 유치원 원생이 썼는지 괴발개발 제 멋대로인 데다가 크기도 엉망이었다.
그가 초고속으로 간판집까지 달려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 간판 쟁이는 가게에 있었다. 그는 대뜸 간판쟁이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미친놈아! 너 나하고 전생에 대체 무슨 원수를 맺었길래 남의 전시회를 망치려고 대들어도 유분수지 그걸 글씨라고 썼어?”
간판쟁이는 유들유들했다.
“아니 여보쇼. 그 글씨가 대체 어쨌다고 그러쇼? 가서 길을 막고 물어 봅시다 보기에 드문 초현실적 구상에다 색채가 아닌가….”
“이 뺑끼쟁이 새끼가 지금 누굴 약올리는 거야?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 따위 씨도 덜 여문 수작을 해?”
“그 말씀 한번 잘 했소. 나는 당신을 알지만 댁은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쇼?”
“누구긴 누구야? 간판이나 그리는 뺑끼쟁이지…”
“그건 맞소. 당신이 당신 분야에서는 제 일인자라고 자부하듯이 나도 이 방면에서는 내가 최고라고 ale고 있는 사람이요. 왜? 그 작품이 어디가 어때서 그래요. 내 솜씨를 탓하지 말고 선생의 낮은 안목을 나무라쇼. 정 마음에 안 들면 내 돈은 안 받을 테니 나처럼 천한 뺑끼쟁이에게 일 맡기지 말고 고상한 당신이 직접 그리든지, 다른 집에 가서 알아보쇼. 내 말 알아 들었으면 자리 줌 비킵시다. 나도 일을 해야먹고 살지∙∙∙”
공 화백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급행료를 주는 조건으로 다른 간판집에서 현수막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소동은 다음 날 오픈 직전에 일어났다.
호텔 양식부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주효해서인지 손님은 꾸역꾸역 모여드는데 작품 두점이, 그것도 가장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1999와 작품 2020이 없어졌다.
작품 1999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피카소가 와도 감탄할 역작으로, 그 상징적 의미는 해학의 극치였는데, 법석을 떨며 찾아보니. 휴지통에 들어가 었었다. 같은 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마찬가지로 화장지도 뒤를 닦으면 휴지가 되지만 알록달록 채색을 해 .놓으면 예술품이 되는데, 무식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식당 안이 어지럽다고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으니, 공 화백은 이제 호당 가격을 따져서 호텔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보는 방법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