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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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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김수용 1989년 06월 88호
자칭 추상화 보급의 선구자요 초현실주의자인 공 화백은 중생들의 낮은 안목이 안타까워 속된 말로 미치고 팔딱 뛸노릇이었다;
그림을 회수해 오긴 했지만 며칠 전 세계물산 사건만 해도 그랬다.
세계물산의 김 사장이 고동학교 동창생이라 개업 선물로 가장 아끼고 아꼈던 작품 0.134를 눈 딱 감고 보낸 바가 있었다.
며칠 뒤에 안부도 물을 겸 사장실 문을 두드렸더니 당연히 눈에 뜨여야 할 자신의 역작이 보이지 않았다
차 한 잔을 마신 다음 슬그머니 그림 이야기를 꺼내자 김사장은 아주 당황해 하면서 이렇게 말머리를 꺼냈다.
“실은 말이야 자네 그 작품 정말 대작이었어. 이 방에 걸어 두고 나 혼자 감상하기는 너무 아까워서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닿는 곳에 모셨네.”
공 화백은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김 사장의 배려가 고마웠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해해 주는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역시 자네뿐이네 이 사람아. 그래 그림을 어디다 걸어 뒀나?”
“자네가 내 진심을 이해해 줄지 모르겠네만 화장실 벽이네. 거기야말로 오직 한 가지 목적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장소 아닌가? 내가 어느 고급 사무실에 가 보았더니 그 회사 화장실 벽에도 시가 걸려 있더구만 나는 바로 이거다 싶었지. 모름지기 예술은 생활화되고 일반 대중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야”
공 화백은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벽을 올려다 보던 공 화백은 이빨을 뽀도독 소리내어 갈면서 그림을 뜯어 놓는다. 그것은 그림이 거꾸로 붙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림 밑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청결과 질서는 문화인의 상식. 설마 당신은 위의 그림같은 난장판을 원하지 않겠죠? -
만약 일주일 뒤로 예정된 전시회 일정만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 김 사장과 사생결단 결투라도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참는 수밖에 없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만약 얼굴에 생채기라도 난다면 그런 낭패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MBC 박 PD와 KCS 오 PD를 그만큼 구워 삶았는데 설마하니 이번 오프닝 때도 다른 급한 촬영이 있다고 따돌리지는 않겠지 싶었다.
그는 정말 눈코 뜰 사이 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인쇄소 드날락거리랴, 현수막 주문하랴, 오픈 때 입을 양복 가봉하랴, 오줌누고 뭣 볼 여가도 없었는데 드디어 오픈은 내일, 그는 전시장으로 임대해 놓은 파라다이스 호텔 양식부로 들어갔다.
공 화백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작업실 겸 학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의 전세를 빼냈다.
사실 학원 간판이야 붙여 놓았지만 원생의 숫자는 밝히기 창피한 정도였고 모두 명태 눈을 달고 다니는지 그림 값을 물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어차피 이판 사판이었다. 아내의 말마따나 이번 전시회에 실패하면 어디 사립학교 미술교사로 취직을 하든지, 아니면 공종달 이름 석자가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그림 값이 이수근 화백이나 누구만큼은 못 따르더라도 호당 백만 원 받기는 다방 레지 엉덩이 두드리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호텔 입구에서 또 한번 눈 앞이 노래지는 충격을 받았다.
주문한 사이즈 대로 대형은 틀림없는데 현수막 글씨를 발바닥으로 썼는지 아니면 유치원 원생이 썼는지 괴발개발 제 멋대로인 데다가 크기도 엉망이었다.
그가 초고속으로 간판집까지 달려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 간판 쟁이는 가게에 있었다. 그는 대뜸 간판쟁이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미친놈아! 너 나하고 전생에 대체 무슨 원수를 맺었길래 남의 전시회를 망치려고 대들어도 유분수지 그걸 글씨라고 썼어?”
간판쟁이는 유들유들했다.
“아니 여보쇼. 그 글씨가 대체 어쨌다고 그러쇼? 가서 길을 막고 물어 봅시다 보기에 드문 초현실적 구상에다 색채가 아닌가….”
“이 뺑끼쟁이 새끼가 지금 누굴 약올리는 거야?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 따위 씨도 덜 여문 수작을 해?”
“그 말씀 한번 잘 했소. 나는 당신을 알지만 댁은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쇼?”
“누구긴 누구야? 간판이나 그리는 뺑끼쟁이지…”
“그건 맞소. 당신이 당신 분야에서는 제 일인자라고 자부하듯이 나도 이 방면에서는 내가 최고라고 ale고 있는 사람이요. 왜? 그 작품이 어디가 어때서 그래요. 내 솜씨를 탓하지 말고 선생의 낮은 안목을 나무라쇼. 정 마음에 안 들면 내 돈은 안 받을 테니 나처럼 천한 뺑끼쟁이에게 일 맡기지 말고 고상한 당신이 직접 그리든지, 다른 집에 가서 알아보쇼. 내 말 알아 들었으면 자리 줌 비킵시다. 나도 일을 해야먹고 살지∙∙∙”
공 화백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급행료를 주는 조건으로 다른 간판집에서 현수막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소동은 다음 날 오픈 직전에 일어났다.
호텔 양식부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주효해서인지 손님은 꾸역꾸역 모여드는데 작품 두점이, 그것도 가장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1999와 작품 2020이 없어졌다.
작품 1999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피카소가 와도 감탄할 역작으로, 그 상징적 의미는 해학의 극치였는데, 법석을 떨며 찾아보니. 휴지통에 들어가 었었다. 같은 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마찬가지로 화장지도 뒤를 닦으면 휴지가 되지만 알록달록 채색을 해 .놓으면 예술품이 되는데, 무식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식당 안이 어지럽다고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으니, 공 화백은 이제 호당 가격을 따져서 호텔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보는 방법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