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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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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강좌 - 편집실 1986년 01월 47호

편집실

카필라를 떠나온지 열두해, 부처님의 나이도 마흔이 넘었다. 라자가하를 떠난지 두 달만에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성에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아들의 모습을 대한 슛도다나왕은 실망의 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궁중에 머물러 있었으면 세계를 지배할 전륜성왕이 되었을 것을....\" 초라한 감색옷으로 몸을 감싸고 이 집 저 집 문전을 돌며 밥을 비는 탁발승(托鉢僧)의 모습은 그것이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슛도다나왕에게는 부처님, 싯다르타 태자보다도 더 쓰라린 운명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부처님에게는 한 사람의 아우, 부처님의 이모이자 양모이기도 한 마하파라파티가 낳은 난다가 있었다. 부처님이 카필라에 도착했을 때 왕위 계승자인 난다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올려질 즈음이었다. 부처님은 신랑이 될 난다를 데리고 야외 니그로다 정사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깍아 그 자리에서 출가를 시켰다. 어리둥절한 난다는 형님인 부처님의 뜻을 어기지 못하고 출가를 하였으나 두고온 아리따운 여인 순다리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와 하였다.
이를 안 부처님은 히말라야 숲 속의 흉한 암원숭이를 보이며 물었다.
\"이 원숭이와 너의 그 아가씨와 어느 족이 더 예쁘냐?\"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난다를 데리고 천상계로 올라가 천녀들을 가르키며 같은 질문을 던진다.
순다리만을 생각하던 난다는 이들 천녀에 비하면 그 아름다움은 히말라야 숲속의 암원숭이보다 더 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난다조차 떠나버린 슛도다나왕은 이제 왕위 계승자로서 의지할 사람은 손자인 라훌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이 라훌라도 부처님을 찾아가서
\"저에게 물려줄 재산을 주십시오\"
라고 말한다. 이에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고는 재차 사리풋다에게 말했다.
\"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라훌라의 나이 열 두 살, 부처님이 물려줄 재산, 그것은 바로 법의 재산, 출가수행의 길이었고 라훌라는 최초의 사미(사미) 즉, 견습승이 되었다.
난다의 뒤를 이어 라훌라마저 떠나버린 슛도다나왕의 만년은 그 비통함이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부디 이제부터는 부모의 승낙 없이는 미성년자의 출가를 막아주시오\" 슛도다나왕의 이 간절한 소원을 받아 들여 부처님은 이를 승단의 규칙으로 삼았다. 아들과 손자를 떠나보낸 부모로서의 슬픔이 다른 부모들을 헤아려 잘 나타나 있다.
부처님의 카필라에 계시는 동안 오백명에 가까운 귀족청년들이 출가하였다. 석가족의 이발사인 우팔리와 야쇼다라의 형제이자 부처님의 사촌인 아난다와 데바닷타도 이때 출가를 한다. 우팔이는 후세에 부처님 제자중 계율 잘 지키기로 유명하고, 아난다는 일생을 통해 부처님을 공경하고 시봉하였으나 형인 데바닷타는 부처님 교단에 반역하여 부처님을 괴롭히는 존재가 된다.
슛도다나왕이 노쇠하여 병상에 누워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급히 카필라로 간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당신의 덕은 청정하며 마음의 때도 없어졌습니다. 걱정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들은 법을 다시 생각하고 지금까지 행하여온 선행을 믿고 마음 놓으십시오\"
왕은 부처님의 손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합장하며 만족하다는 뜻을 보이고 숨을 거두었다.
슛도다나왕이 죽은지 얼마되지 아니하여 부처님이 머무르시던 니그로다 동산에 양모인 마하파자파티가 찾아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왕비는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얼마 뒤 스스로 머리를 깍은 뒤 누더기를 걸친채 맨발로 부처님 행로를 따라 나섰다. 이를 본 석가족의 많은 여성들도 동행을 하였다. 돌부리에 채여 맨발은 피가 맺히고 얼굴은 눈물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부처님 지금 밖에는 카필라에서 맨발로 이까지 걸어온 마하파자파티와 수많은 여인들이 여성의 출가를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부처님 만일 여성일지라도 출가하여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한다면 남자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그렇다. 여인도 법(法)에 의하여 지성으로 수행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에 힘을 입어 아난다는 다시 한번 여성의 출가를 간청하였다.
\"출가한 사문은 청정한 계율을 닦고 세속의 애착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여인들은 세속에 애착이 강하므로 도(道)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법이 이 세상에 오래갈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잡초가 무성한 논밭에 곡식이 자라지 못함과 같다.
가정에 여인이 많고 사내가 적으면 도둑이 들기 쉽듯이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교법이 오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이 넘치지 않고 둑을 쌓는 것처럼 교단의 질서를 위해 따로 여덟가지 계법을 마련한다. 출가한 여인은 반드시 이 여덟가지를 지켜야 한다\"
이리하여 어렵게 여성의 출가가 허락되고 마하파자파티는 최초의 비구니가 된 것이다.
부처님 교단이 날로 번창하자 그 만큼 이를 시기질투하고 야심을 품은 자들이 나타났다. 이교도들의 온갖 모함과 데바닷타의 반역은 부처님으로서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음모도 여래의 법 앞에서는 무력했다.
\"여래는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법이 없다.\"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에게는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날까지 부처님 가르침이 이렇게 멀리 멀리 전해지게 된것도 그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부처님을 모시던 제자들이 1250명이나 되었고, 이 중에 가장 훌륭한 제자 열 사람을 \'10대 제자\'라고 한다.
부처님 만년에 이르러 몇 가지 가슴 아픈 일들이 발생한다. 슛도다나왕의 죽음과 더불어 카필라국이 코오살라에 의해 멸망당한 일과 가장 아끼던 두 제자 사리풋다와 목갈리나의 죽음, 친척인 데바닷타의 반역등이 그것이었다.
\"가까운 사람과는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 법,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세월에 따라 변해간다. 이 무상함을 알아 너희들은 언제나 자기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법과 자기자신에 의지하여라\"
사리풋다의 죽음을 슬퍼하던 제자들에게 부처님은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 나이 여든, 리자그리하성에서 슈라바스티성으로 가시는 도중 베살리 마을에서 병이 나셨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석달 후에는 열반에 들리라\'하고 예언하셨다. 파바고을에서 대장장이 춘다가 올리는 공양을 드시고 병이 더욱 깊어지셨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쿠시나가라고 오신 부처님, 사라나무 아래 옆으로 누우셔서 조용히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자기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이 밖의 다른것에 의지하지 말라. 모든 것은 쉬임없이 변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 모든 것은 덧없이 흐르나니....\"
육신의 나이 여든, 카필라국의 태자로 태어나 오직 진리를 찾아서 모든 것을 떨쳐버리신 부처님, 피나는 출가수행 끝에 비로소 지혜의 눈을 뜨시고 사십 오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자비를 몸소 실천하신 부처님, 부처님은 이제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라까지의 긴 여정을 마치고 조용히 열반의 언덕에 들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