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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언어를 통해 가르침은 어떻게 수행되는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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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에의 초대 - 혜묵 1989년 06월 88호
5. 앞의 五體는 모두 마음을 근거로한다.-擔境唯心體

(가)경전해석의 선결 과제에서 교학체계의 본성론적 기초로 앞의 五體(音聲言語體, 名句文身體, 通取四法體, 通擔所詮體, 諸法顯義體)는 모두 마음이 변한 것으로써 自體가 없고 唯心으로 근거를 삼는 것이니 교체는 오직 유심일 뿐이라는 주장과 이에 대한 해명이 이 절의 주제가 된다;
慈思窺基의 「大乘法義林章」에는 外道나 각 부파 사이에서 벌어졌던 교체론의 논점들이 비표적 소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들의 논쟁은 대개가 詮을 매개로 한 성명구문과 의미의 관계에 촛점이 맞춰진다. 그러한 논쟁들은 그들의 목적이 詮의 성취, 획득에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급기는 이러한 과거의 다양한 논쟁들이 안고 있던 구체적 헛점들을 비판한 뒤, 소위 大剩라는 이름 아래 전혀 발상이 다른 새로운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즉, 성명구문과 의미의 상호 지시 관계로 압축되던 교체론을 有遍心과 有偏文義의 관계로 해석 倚諦에 편입시키고, 이들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부처님의 無遍大定智悲와 부루문의를 眞諦中道로 상정하여 교체론이 당면한 한계를 돌파하려 한다; 心,識,文,義,의 眞, 無漏, 따위의 새로운 가능성의 토대 위에서 계속적인 의미의 교체논쟁을 해소시켜 버리려는 것이다. 어쨌거나,교체논쟁이 더 이상 단순한 능소전의 의미구조에 얽매일 수만은 없게 됐다는 사실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 眞, 無遍, 中道 따위의 새로운 범주가 이제까지의 구체적인 논증으로 입증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교체논쟁은 여기에 이르러 독자적인 전개가 불가능해지고 관념적, 형이상학적 이념체계 속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새로이 제시된 범주들은 法相唯識의 교학체계의 전체적인 도움없이는 확인될 수도 증명될 수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유식교학은 “唯心”이라는 본성론적 대전제를 다각적으로 논증해 가는, 그리고 그 전제를 가지고 다양한 현상세계를 해명하려는 경론과 세계에 대한 해석체계로 구성된다.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방법과 범주들은 唯心이라는 이념을 향해 조직되어 있다. “敎體=唯心”이라는 명제에는 교체론의 구체적인 난점들을 그 체계의 지말적인 요소들로써 해소시켜 버리면서 가르침을 유심이라는 대전제 위에 재구축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명제는 교체론과 유심을 지향하는 교학체계 전체와 동일시한다. 교체론은 더이상 가르침을 수행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되지 못한다. 체계적인 논증의 결과로서, 체계 안에서만 보증될 수 있는 대전제가 거꾸로 그 체계 자체를 보증해 주는 가르침의 근거로 제시된다. 교학을 시작하기 위해 요청되었던 교체론이 본성론적 교학의 결론으로 완결되는 것이다.
화염교학은 法相교화의 방식, 즉 구체적인 난제들의 초점을 전혀 별개의 범주로 옮겨 놓는 방식에 주목한다. ‘본성론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전환이 교체론의 난제들에 적용된다. 교체문제는 본성론적 교학 전체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고, 구체적인 교체론의 장단점들은 그 일부로 포섭되어 거꾸로 그 교학체계 자체를 유지시켜 주는 요소들로 작용한다.
유심이란 원칙은 화염교학의 체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커다란 지주들 중의 하나이다. 현담은 교체론을 이 원칙으로 끌어들이면서 화엄교학이 해석하는 唯心義를 지신의 체계에 따라 단계별로(立相始敎, 賴敎, 終敎, 圓敎) 설명하고 經文으로 인증한다. 이것은 유식교학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체계와 방법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견지하면서 유식교학의 유용한 논증을 활용하는 이중의 목적을 달성하가 위한 사전포석이 된다. 이후의 논증은 사실 모두 法相唯識家의 전적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唯心을 經證하는 부분은 번잡하고 또 앞에서도 지적한 순환도의 난점을 안고 있어 별다른 의미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현담의 의도만을 간결히 도표로 제시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유심이라는 원칙이 결국 해석된 경전에 의해서 밖에 확증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會玄記」에서는 유식과의 차이를 相應心과 不相應心의 차이라고 해석하여 常住, 不變하는 自性淸淨心을 기초로 화엄교학의 유심의가 성립한다고 한다. 본성론적 교학은 이런 식으로 점차 견고하게 강화되어 간다.

(나)가르침을 수용하는 사람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本質과 影像의 상응관계-法相家의 해석과 현담의 四句
㉠本質敎와 影像敎
護法論師계통의 이론을 正論으로 계승한 「成唯識論」과 法相唯識家에서는 모든 認識의 구성을 대상(실유하던 않던)에 의해 依他起한 見相二分의 상관관계로 해석한다.부처님의 가르침이(言說로 전환된) 외부로부터 聞者의 耳識을 자극하면 聞者의 識上에는 見相二分이 성립하여 그 가르침을 반영한다. 본질이라는 표현은 識上에 轉變된 見相 二分에 대해 이를 실질적으로 촉발시킨 對相 自體를 지칭한다. 이에 대해 부처님의 언설로 인해 聞者의 식상에 형성된 文義相은 영상이 된다 즉 부처님의 설법은 文이거나 義가 모두 妙觀察智와 이에 相應하는 無遍爭熾이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현존하는 가르침이 因이 되어 聞者의 認識上에 文義相이 영상으로 발생한다. 사실 문자의 측면에서만 보면 오직 영상만이 존재할 뿐,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영상의 결과를 놓고 그 원인을 상대적으로 본질이라 假立하는 것일 뿐이다 가르침은 건, 무루의 본질교에 의거한 영상교를 가리키게 된다
그렇다면 본질교와 영상교는 어떤 관계를 갖고 연결되고 있는가 유루심으로 획득한 유루의 文義相은 어떻게 본질로부터 무루의 근거를 보장받는가. 사실 이런 유형의 認識이론에 따르면 대상(본질)과 주관(영상) 사이에는 뚜렷한 단절이 있을 뿐이다. 이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有部와 經都또 唯識家 사이의 業說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唯識敎學의 業說이 결국 이 단절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본질교의 측면에서는 부처님의 利他善根이 因이 되고 聞者의 善根이 緣이 되어 부처님의 意識(무루정식) 상에 文義相이 생하고 이를 음성에 담아 전달하면, 영상교의 측면에서는 聞者의 善根이 因, 부처님의 선근이 緣이 되어 聞者의 의식상에 문의상이 생하게 된다. 이 문자의 식상에 형성된 문의상은 문자 자신의 상황을 親因으로 한 것이지만 부처님의 강력한 利他善根을 증상연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佛說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본질과 영상 사이에는 因緣의 業力이외에 다른 연관은 없다는 것이다. 양자의 관계를 도시하면 아래와 같다.


가르침의 수행은 유루무루 의 마음과 다시 마음으로 환원되는 업력으로 설명된다.

㉢聞者의 의식상에 文義相이 變起하는 세부적인 과정 - 영상교의 體로써 聚集顯現의 과정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이(본질교) 聞者의 인식을 자극하면 이에 따라 聲, 字, 名, 句, 義, 등의 다종의 相을 형성해 낸다. 이 본질에 촉발하여 문자의 식상에서 수행되는 轉變의 과정을 聚集顯現이라고 표현한다. 「會玄記」에서는 이를 本識 가운데서 種子가 형성되는 것을 聚, 뒤에 들은 字相을 앞에 들었던 字相과 연결 현재에 묶어 인식하는 것을 集, 이에 따라 所詮義가 의식상에 나타나 바른 이해가 결정되는 것을 顯現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法相唯識家의 여러 전적들에서는 諸行無常이라는 四字一句의 법분을 듣고 聞者의 인식상에 바른 해석이 나타나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예로 들어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과정은 보통 다섯 종류의 마음이 각각의 字相에 따라 앞뒤로 얽히어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이 五心의 구별은 「유가사지론」에서 유래한 것으로, 率爾心一대상을 반연하여 이를 단순히 수용해 들이는 마음, 尋求心-대상을 향하여(알고자 하는) 의지가 작용하는 마음, 決定心-대상의 의미를 해석하여 결정하는 마음, 梁淨心-선악,호오 등을 판단하는 마음(가치판단), 等流心-앞뒤의 마음을 연결시키고 관계 지우는 마음 등이다.
이러한 五心이 제행무상이라는 설법을 들을 경우에 번갈아 취집하여서 의식상에 이에 대한 해석이 형성되게 된다.
즉, 첫째, 諸字를 듣는 순간에 솔이심과 심구심의 二心이 나타나 가르침에 주목하고(이 상황에서 이미 種子를 薰成), 둘째, 行字를 듣는 순간에 솔이, 심구의 二心이 제와 행을 연결하고 결정심이 나타나 諸라는 字로써 모든 行을 포섭하고 있음을 결정하여 이해하게 되며 (앞에 들었던 諸字相과 연합하여 諸行이라는 相을 현행, 生起한다), 셋째, 無字를 듣는 순간에 다시 솔이, 심구의 二心이 無에 주목하고, 넷째, 常字를 듣는 순간에 앞의 字를 들음으로써 형성되었던 힘으로 말미암아 四字모두를 연합하여 五心이 모두 일어나 一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즉, 각 四聲, 四字, 四名, 一句, 所詮義의 14가지 相이 앞의 과정에서 본대로 五心이 열두 번 變起함에 따라 취집현현함으로써 聞者는 비로소 제행무상이라는 가르침에 대해 이해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때 四字간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종자의 훈습력이다. 가령 行이라할 때에는 諸字는 이미 과거로 흘러가 현재에는 本質이 없다. 相續하고 記憶하여 양字를 연대시키는 것은 훈습력과 唯識變力이 된다; 참고로 五心 가운데 심구, 결정, 염정의 三心은 오직 第六意識의 작용이고, 솔이, 등류의 二心은 前六識 모두에 해당한다. 七識, 八識에는 심구심이 없다. 또한, 솔이, 심구, 결정의 三心은 無記이며 염정, 동류의 二心만이 善惡의 가치판단에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