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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어머니가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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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을 위한 사색 - 현기 1989년 06월 88호
보살님 가을이 오는 것을 귀로 안다면, 겨울은 시린 손발로, 봄은 눈으로, 그리고 여름은 등골에 흐르는 땀방울로 아는 것 같습니다. 하여 가을이 스산한 바람소리를 듣는 감성의 창이라면 겨울은 아랫목을 지키는 내면의 뜨락이요, 봄이 꽃을 피우는 낭만의 숲이라면 여름으로 건너는 다리에 앉은 지금은 땀내 나는 일터입니다.
모두가 일손이 되어 버린 저녁 논두렁을 지나가면 빈손이 되어 있는 중의 모습이 왜 이리 부끄러운지요.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십여 년이 넘도록 맨손이 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모를 심는 농부의 손길은 모든 관념의 옷을 벗기웁니다. 정토와 보살이 어찌 멀리 있는 것이겠습니까. 푸른 생명의 한 뙈기 논이 정토요, 푸른 생명의 모 한 포기를 지키는 농부의 손길이야말로 보살이 아니겠습니까. 이 논과 저 논, 저논과 이 논의 물꼬를 틔워 마침내 한반도의 생명의 이루나니, 여기가 바로 우리의 대장경이요 법전(法田)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을진대 나의 빈손은 이 땅에서 척결해야 할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그해 여름 유월의 함성과 몸부림은 독재를 거부하는 부정의 몸짓이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목숨들을 푸르게 심고자 하는, 대긍정이었음을 오늘 저 농부의 일손이 가르칩니다.
오늘 이 땅의 논들은 말합니다. 다시 유월의 모든 함성과 크랙션 소리, 돌맹이의 외침으로로 한 포기 생명을 모를 심자고.
보살님, 금년 초파일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당신 가슴의 부처는 새롭게 탄생되었는지요. 행여 부처님 오신날의 풍속이 당신 가슴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저으기 염려됩니다. 초파일의 풍속이 마치 등장사를 하는 날로 변모되는 듯한 저의 느낌이 나만의 느낌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차라리 등불을 모두 꺼버리고 새벽의 햇빛을 기다림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보살님, 시골 암자에서 제가 보낸 초파일은 새로운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쌀 몇 되를 머리에 이고 올라와 지성으로 등불을 켜는 할머니들과 몇 겹으로 꼬깃꼬깃 접혀진 돈을 꺼내는 아낙들의 모습은 눈물겨운 정경이었습니다. 불교 신자이니까 등불을 켠다는 형식성과 남들이 켜니까 나도 따라한다는 식의 형태만을 보아온 저로서는 도저히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암자 옆에 달린 조그만 토굴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이 땅에서 불교를 지켜온 것은 누구이며, 불교를 불교답게 장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바로 저 가난한 노보살님들 쌀 몇 되가 우리의 불교를 지켜 왔고, 아낙의 등불로 향하는 마음이 바로 불세계를 장엄하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보살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저들의 모습을 지켜주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들 앞에 무슨 존재니 인식이니 하는 따위의 너절한 말들이 필요합니까.
가난한 사바티 여인의 등불 이야기는 단지 설화가 아니라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저들이야말로 척박한 땅 위에 푸른 모를 심는 일꾼들의 호흡이겠지요.
보살님 !
저희들은 먹물 옷을 입었다 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첫째는 왜 출가하였습니까. 둘째는 언제 출가하였습니까. 셋째는 나이는 얼마나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묻는다면 한번 빙그레 웃어 주면 되겠지만 진지하게 물어 오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과연 나는 왜 세속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출가하여 중이 되었는지, 나는 언제부터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아직 그무엇 하나도 준비된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형식적으로 답한다면 중이 좋아서 중이 되었고, 아직도 출가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이는 이 지구의 나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으며, 혹은 아직 진실로 출가하지 못하고 있으니 나의 나이는 있으나 마나 한 나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살님이 행여 이렇게 물어 온다면 나는 다시 반문하겠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 곳에 살고 있으며, 당신은 얼마만큼 이 세상을 살아 오셨습니까. 동양의 성현들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소련의 혁명가도 하루를 살더라도 일생을 사는 것 같이 하라 하였는데 당신께서는 그와 같이 살아 오셨는지요.
이 세 가지의 질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한 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입니다. 왜 출가하였느냐에 대한 것은 문제가 아니요, 왜 사느냐에 대한 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되겠지요. 다만 어떠한 문제의식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적 모습으로 나타나느냐가 더욱 중요한 점이겠지요. 그러나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에 살고 있느냐 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개인의 현실이 아니라 나와 너를 서 있게 하고 나와 너의 관계를 이어 주는 살아 있는 절대적 현실 말입니다 마치 탁자 위에 있는 찻잔들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 찻잔과 찻질을 관계 맺게 하는 것은 찻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찻상(현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처럼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삶의 태도와 실천이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을 규명하는 일이요, 사회의 온갖 구조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서 그곳에서 나타나는 불합리점을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앞서의 찻상과 찻잔에l 비유하자면 찻상의 모양과 질에 따라서 찻잔의 모양을 맞출 수 있고 찻상과 찻잔을 조화롭게 한덩이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찻상을 파악하는 일이 곧 현실입니다. 또한 개인의 깨달음이나 자아 완성이 결코 사회 현실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음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개인과 사회(현실)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도 결국 사회의식의 반영 속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살님, 이 세상에는 온갖 가치관과 철학과 사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이 올바른 가치인가를 혼돈합니다. 가치관과 사상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혼탁한 것이 아나라, 너무나 많은 가치관과 사상이 충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옳은 사상과 가치관을 찾아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모든 철학과 사장을 폐기하거나 올바르게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선은 현실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하겠지요. 그리곤 그곳에 우리의 생명의 주춧돌을 놓아야 할 것입니다.
보살님, 우리 개인의 완성을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현실로 돌아갑시다 사회의 완성올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출가의 마음을 가집시다. 개인의 삶에서 역사적 삶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출가의 참뜻이요, 역사의 문제를 내 몸 안에 흡입시키는 일이야 말로 보살이 되는 길이니, 우리 모두는 현실을 살아가는 일손이 됩시다.
보살님 ! 지난번에 주신 편지의 내용 가운데 언어에 대한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속성에 관한 문제만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쓰는 이력서를 보면 나이를 표기하는 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만 세라고 활자화되어 있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인 나이의 헤아림은 만이 라는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만 0세라는 표기는 서구 문화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만 0세라는 말은 세상에 태어난 날로부터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중의 십개월을 한 살로 셈하여 나이를 말했었습니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존귀와 사랑 태동의 근원을 표현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좋은 문화적 풍토가 제국 문화의 침탈 과정 속에서 그들의 사고로 전환된 것입니다.
음력과 양력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지요. 단기를 사용하지 않고 서기로만 표현되고 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것은 미국이 한반도를 지배하면서부터 교묘히 이 땅의 민족문화를 단절시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보살님 ! 민족문화를 지켜내는 일은 진실로 중요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민족의 어머니가 되소서. 그길이 바로 보살님을 보살피게 하는 길이 됩니다. 모두의 어머니가 되소서. 가난한 사바티의 여인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