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무적(慈悲無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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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각원
1989년 06월 88호
예나 지금이나 불교도들에게 일년 중 가장 큰 축일(祝日)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화현(化現)하신 ‘부처님 오신날’일것이다.
해마다 오는 이 날이지만 늘 가슴 설레이고 기대감에 차오르는 것은 오월의 신록 사이로 현란하게 수놓질 초파일 밤의 등불의 향연 때문일 것이다.
올해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갖가지의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지만 아무래도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제등 행열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손에 손에 등초롱을 들고「석가모니불」을 제창하면서 하는 제등행열은 불교도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며, 이 경건하고 아름다운 행열로 인하여 불교신자가 된 사람도 적지 않으므로 이 행사 자체가 갖는 포교적 의미나 신행적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5월 7일 밤 제등행렬에서 일어난 경찰의 불손한 언동과 과격한 진압은 불교에 대한 종교적 탄압이라고 규정지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경찰이 진실로 많은 군중이 모이는 집회에서 신도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대중집회얘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불편을 해결해 주기 위해 왔다면, 마땅히 그들의 변명대로 그 종교적 행사 분위기에 어울리게 경건하게 민주경찰답게 점잖게 처신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경건하기는 커녕 경찰의 상당수가 온통 행사장올 휘젖고 다니면서 예사 담배를 피우고 불교의식의 경건함을 무시한 것은 아무래도 민주경찰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그리고 설령 종교적 목적과는 관계없이 젊은 불자들이 시국에 관한 비판행동을 하고 구호 몇 마디를 하고 또 그런 내용의 프랑카드를 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과격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과민하게 제지하려는 물리적인 힘이 없었다면 아마도 몇 번 그러다가 저절로 종교적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을 텐데,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경찰들의 여유없는 행동에 반사적으로 더욱 행동이 거세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실상 경찰이 우려하던 대로 서울 시민이나 불교 신도들이 그런 몇 마디의 구호나 선전문구에 놀라거나 거기에 동조하여 혼란을 야기하지도 않았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쯤 시위에는 불감증에 걸려 있는데 오히려 지나친 시위진압이 언제나 시위를 격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시위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가 나고 말리는 스님들의 가사와 장삼에 피가 묻고 찢기는데 흥분하지 않을 불교도는 없다는 사실을 왜 그들은 모를까 무방비 상태의 경찰이 죽었을 때 과연 국민은 누구의 편이였나. 그렇게 격렬하게 시위하던 학생들도 반성하지 않았던가.
불교의 명구(名句) 가운데에는 자비무적(慈悲無敵)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자비 앞에는 적이 없다는 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강한 것에는 언제나 강한 것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고 싶은 말은 이 땅의 행정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이다. 경찰이 잘못했음이 인정되었다면 그 수반인 내무부장관이 국민의 상당수에 이르는 불교도를 향해 잘못되었음을 사과하는 것이 민주주의 본보기일 텐데 권위를 내세워 경찰국장 선을 고집하는 태도는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태도이다. 거기에다 더 부끄러운 사실은 오히려 권력자에 비굴하게 붙어서 아직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히는 총무원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