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정신으로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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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지상
1989년 06월 88호
몇 년 동안의 일본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을 앞둔 무렵, 그동안 가까이 모셨던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가 그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무척 당혹해한 적이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요즈음 서울국제공항에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 말에 우리나라 정세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을 짐작할수 있었다. 시위, 농성,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얼룩진 거리의 무질서와 혼란∙∙∙그래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걱정과 한탄으로 무겁기만 했다 동시대의 아픔을 같이해야 하는 출가인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스스로의 물음에 고뇌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도착f하여 시간을 보냄에 따라, 경향 각지에서 그칠 날 없는 파업과 진압이며 시위와 최루탄 공세와 같은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되었다. 그보다 더 다급한 불교종단의 문제가 앞섰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하던 이름의, 그 정체도 모르겠는 수많은 불교 단체들이 마구 일어났는가 하면, 총무 원장직을 위시하여 말사 주지직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자리 다툼과 분규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 한국불교를 질식시켜 버릴 듯하였다. 그러니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아예 없었다.
물론 나라와 민족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종단의 위기 상황 앞에서 멈추어 버림에 대해서 그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을 질타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출가하여 사문의 길을 가고 있는 한사람이기에, 능력이야 있든 없든 대통령은 불자여야 한다는 평소의 주장과 더불어, 이러한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올 거두어 들일 생각은 없다.
사고가 단세포적이라는 비난보다도 오히려 내 피부에 따갑게 와 닿는 문제는, 오늘날의 참담한 한국불교의 현실과 무기력하게 떠 있는 승가상을 앞에 두고도 꿀 먹은 벙어리인 양 가만히 있는 우리 모두의 한심한 모습이다. 종단의 운영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사회로부터 온갖 질타를 받고 있는 처지에 ‘나라와 민족 운운’하는 조계종 종도의 모습이 얼마나 가소롭고 가증스러운가 스스로 자책할 따름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하나뿐이다. 모두가 부처님 앞에서 두손을 모두고 오늘의 땅에 떨어진 승가상을 돌이켜볼 일이다. 그리고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각자가 처음 출가할 때의 그 마음을 되새겨 볼 일이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와는 달라서, 불교는 특히 조계종은 출가한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마음으로 출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총무원장이 되기 위하여, 종회 의원이 되기 위하여, 본-말사의 주지가 되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명성을 얻기 위하여 출가한 이는 진정코 없을 것이다. 출가를 결심했을 당시만 해도 총무원장이나 주지라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인식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수중에 갖고 있던 재산도, 주어진 명성도 남검없이 떨쳐버리고 지 않았던가. 그리고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마음 가운데 애욕을 여윈 사람을 사문이라 하고, 세속적인 일체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離心中愛是名沙門 不戀世是名出家)“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종단의 모습을 보면, 적어도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곤 하는 스님들을 보면,
마치 총무원장이 되기 위하여, 주지가 되기 위하여, 또 무슨 무슨 감투를 쓰기 위하여 출가한 이들 같아보이는 것이 웬일인가.
이제 우리 모두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사십 년 전으로, 저마다 처음 출가하던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텁텁한 냄새로 찌든 행자실에서 부엌에 나와 밥을 지으면서 천수경을 외던 그 시절로 다시 한번 되돌가 정신을 돌이키자.
그러면, 바로 거기에 종단을 구하고, 불교를 구하고, 나아가서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해 표류하는 나라를 구할 길이 있음을 비로소 발견한게 될 것이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