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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麗末)과 선초(鮮初)의 불교적 상황과전재(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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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향기 - 시명 1989년 06월 88호
조선 전기(前期) 의 불교사상-
함허, 설잠, 보우선사를 중심으로(1)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개국은 왕조가 바뀌는 정치적인 변혁과 함께 사상과 종교에서도 일대 변혁을 가져왔으니, 고려말부터 시작된 척불이 바로 그것이다. 개국과 함께 조선 왕조가 강조한 숭유억불의 정책은 신라 이래로 고려말에 이르는 일천여 년 동안 융성하였던 불교에 큰 시련과 박해를 가져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호법 (護法)의 큰 사명을 안고서 당시의 정치적, 사상적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사상에 대항하여 불교의 우위성을 주장하거나 불교사상서를 저술한 대표적인 사상가들이 있었다. 함허 (涵虛) 득통 (得通)과 설잠(雪岑) 김시습, 그리고 보우 (普雨)선사틀이 바로그들이다.

1. 함허 득통(涵虛得通, 1376~1433)함허스님은 충주출신으로 속성은 유(劉) 이름은 수이 (守伊)였으며 법호는 득통이다.
이태조의 왕사였던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의 수제자인 함허스님은 그 법계를
따지면 나옹대사와 무학대사에 연결되어 선종의 임제종에 속한다 하겠으나, 그의 저술율 살펴보면 교학도 제한없이 수용하여 선과 교를 겸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함허스님의 저술은 선과교의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참으로 방대하다. 그중 선에 대한 저술로는 원각소(圓覺疏) 3권, 반야오가설의(般若五家說誼) 1권, 현정론(願正論) 1권, 반야참문(般若鐵文) 2질,윤관(倫貴) 1권, 대령소참하어 (對靈小參下語) 등이 있으며, 교학에 관계되는 저술로서 법화경송(法華經領) 미타경찬(彌陀經讚) 미타찬(彌陀讚) 안양찬(安養讚) 들이 있고 또 유교와 불교와의 비교종교학적인 저술로서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 같은 것이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쳐 살았던 함허스님은 고려불교의 타락과 붕괴 그리고 척불의 시련을 감당해야했다. 그런속에서 스님은 함부로 불법을 훼손하려 했던 몰지각한 유생들로 하여금 불교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불교 교의를 확고하게 정립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 생활에서의 선 수행의 활용을 전개해 나갔다. 함허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일찍이 유학을 깊이 공부한바 있으며 입산 후에는 율사로서 선교 양종에 두루 달통한 선지식이었다. 그러나 선과 교를 모두 병행한 가운데에서도 스님은 교보다는 선을 강조했으며, 그 선도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품행을 중시하였다.
함허스님의 선관(禪觀)은「금강경설의」와 어록, 「원각경송」에 잘 나타나있다. 「금강경설의」에서 스님은 “惺慢者定慧圓明寂照不二之謂也“ 하였는데, 이는 임제선의 종통에 따른 선의 입장에 국집한 논리라기보다는 통선적 (通禪的)이며 나아가서는 통불교적인 입장에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선의 전통은 보조국사의 정혜쌍수사상이나 굉지정각(宏智正覺)의 적조불이 (寂照不二)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함허스님은 선의 근본을 임제선에 두었으나 그것에 국집함이 없이 선가의 제 사상을 두루 수용하였으며 또한 선가의 입장에서 교도 아울러 활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함허 사상에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조선초에 유생들에 의하여 대두된 억불정책의 대응책으로서의 저술 활동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현정론 (願正論)과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을 들 수 있는데, 「현정론」에서는 유∙불∙선 삼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책의 말미에 나오는 결론 부분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노자(老子)는무위 (無爲)이면서 하지 않음이 없고 함이 있으면서 무위이어야 한다“고하였고, 석가는 고요하면서 항상 비추고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다 하였고, 공자는 역(易)이란 생각이 없고 무위이며 적연(寂然)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감동(感動)하면 서로 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유교의 ‘적연’이란 것은 일찍이 감동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므로 곧 불교의 ‘고요하면서 항상 비춤’과 같은 것이며, 유교의 ‘감응하면 통한다‘는 것은 일찍이 고요하지 않음이 없는 것인바 이는 곧 불교의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며, 또한 도교의 ’무위이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것은 바로 고요하면서 항상 감응하는 것이요 도교의 ‘함이 있으면서도 무위’라는 것은 바로 감응하면서도 항상 고요함을 말하는 것이니, 따라서 유∙불∙선 삼교가 말한바가 서로 부합되어 마치 한 사람이 말한 것과도 같다.

日老之言 日無爲而無不爲 當有爲而無爲 釋之言
日寂而常照 照而常寂 孔之言 日失易 無思也
無寫也 寂然不動 感而途逋 夫寂然者 未嘗無感
卽寂而常照也 感逋者 未嘗不寂 卽照而常寂也
無而無不爲 卽寂而常感也 有爲薦而無所爲 卽感而
常寂也 擾此則三家所言 冥相符契而如一口也

위와같이 함허스님은 유∙불∙선교의 가르침이 비록 외형적으로는 그 표현이 저마다 다르나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다보면 이 삼교의 가르침이 바로 한 가르침이 됨을 설파하였다. 이처럼 스님은 유∙불∙선교가 결국에는 일치점에 이르르는 것이므로 서로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면을 알고서 화합하고 융섭해야 함을 암시함으로써 당시의 불교와 유교의 대립적 관계를 타개해 보고자 노력했던 흔적이 많이 보인다.
한편 「유석질의론」에서는 이 삼교에 대해여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종교에 지나치게 국집하다보면 도(道)의 근본을 잃어버리고 도의 깊고 옅음과 멀고 가까움을 잘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근천한 곳에만 집착하지 말고 큰 마음으로 심원한 대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 편견과 집착을떠나서 바른 견해부터 확립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함허스님은 이 논(論)에서 삼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유로써 삼교의 회통(會通)함을 충분히 논하고 있다.
곧, 삼교를 나무 한그릇에 비유하면서 “땅이 종자를 함양하고 있음은 불교에, 종자에서 싹이 터 나오는 것은 도교에, 가지와 잎이 한뿌리에서 자라남을 유교에 비유하였다. 한 나무가 자람에 있어 좋은 땅에서 뿌리와 줄기가 배양되면 꽃과 열매가 무성하듯이, 삼교가 서로 도와 가면 천하가 화성(化成)하게 된다. 유교가 도표를 배척함은 꽃을 좋아하되 나무 있음을 알지 못함과 같고, 도교가 불교를 배척하는 것은 나무를 심되 뿌리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같은 함허스님의 삼교회통의 논리는 “儒者 主乎氣者也, 老者 主乎氣者也, 佛者 主乎性者也“라는 표현 속에 집약되어 있다. 이는 곧 불교를 성(性)으로,유교를 심(心)으로, 도교를 기(氣)로 또는 불교를 성체 (性體)로, 유교를 사물(事物)로, 도교를 변화(變化)로 그리고 불교를 진(眞)으로, 유교를 적(迹)으로, 도교를 접어양간(接於兩間)으로 특정짓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삼교의 특징을 허심탄회하게 잘 지적한 것이니, 실제로 이 삼교를 원리와 실천 및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인식의 면에서 볼 때, 불교는 체성적(體性的)인 명심(明心)의 면에 주체를 두어 왔고, 유교는 격물치지 (格物致知) 하는 사물적인 의리(義理) 면에 주체를 두어 왔으며, 도교는 영묘조화(靈妙造化)의 변화적인 무위(無爲)의 면에 주체를 두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진공(眞空)한 체성을 근본으로 하여, 유교의 대본(大本)에 입각한 사물의 의리를 밝히며, 도교의 곡신적 (谷神的)인 현묘한 조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유석질 의론」의 이론은 오늘날에 동양의 삼대 종교에 대한 비교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한다면 두드러진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 호에서는 이어서 설잠 김시습과 보우선사의 이론적 세계를 섭렵해봄으로써 여말과 선초의 불교적 상황과 그사상적 전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