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승랑(僧朗) 대사

다음 게시물
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89년 06월 88호
승랑대사는 고구려 요동성 사람이다.
그는 제말(齊末) 건무년(建武年 494-497) 무렵에 중국의 하북에서 강남으로 왔던 삼론종(三論宗)의 대가이다.
스님은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 불교학을 연구하는 데 전생애를 보냈으므로 국내의 활동과 업적은 전해오는바가 없다.
그러나 혜교(慧較)의 「고승전」에 소개된 그의 인물됨은 매우 탁월하여, 학식이 해박하고 사색력이 명석하며 모든 경론을 두루 강설할 수 있었고 화엄과 삼론은 특히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스님은 당시 구마라습(Kumarajiva 344-4l3) 계통의 삼론학을 연구하였다. 삼론학이란 원래! 인도의 용수를 중심한 대승불교학파가 세 가지 논서(論書) 즉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및 백론(百論)을 중심으로 하여 체계를 세운 사상이다.
이 사상은 주로 바라문교와 소승불교를 위시해서 그외의 다른 대승불교가 내세우는 편견을 철저히 반박, 부정함으로써 불교의 궁극적 진리 즉 공(空)을 천명하는 이른바 중관사상(中聽思想)으로 대표된다.
대체로 라습에 의하여 전래된 삼론학은 라습 사후 연대가 오래되면서 거듭된 사회, 정치적 혼란 때문에 관심이 흩어져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었을 때 승랑은 강남으로 내려와 초당사에 머물렀고 얼마 후 섭산 서하사(樓露寺)로 옮겨 법도(法度)의 제자가 되었으며 삼론학에 매진하였다.
당시 중국의 불교학은 대체로 남북으로 전해졌는데 북쪽에는 주로 비담종(毘曇宗)이 강남에는 성실종{成實宗) 이 유행하고 있었다. 비담종은 원래 소승불교 계통의 종파로 중국에서 대다수의 소승 연구는 거의 쇠미했는데도 이 일파만이 아직 연구되고 있었다.
이 학파의 교의는 무아(無我)는 체득하였으나 법유성(法有性)에 집착하여 이를 실유(寶有)라고 편집하고 있는 유부(有部)계통이다. 이에 대하여 강남은 대체로 공반야(空般若) 의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 학파의 관점은 아I我)와 법(法)이 모두 공이라고는 보나 너무 공의 일변에만 편집하는 데서 공이 곧 불공(不空)임을 몰랐다.
승랑대사는 이와같이 대립된 불교학의 풍토에서 성실종의 모순올 지적하고 삼론학의 정통을 발양함으로써 삼론학을 정립시켰고 동시에 삼론종의 기원을 이루었다.
이 삼론종은 승랑대사 이후로 그의 제자인 승전(僧詮)을 거쳐 법랑(法期)에 이르고 이 법맥은 이후 당나라 시대 가상대사(嘉神大師) 길장(吉藏 549-623)에 이르러서 크게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