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의 사업장과 노조
노동조합은 당연히 사업장이 있어야 하고 그 사업장에 일정 규모의 상시 근로자가 있어야 일차적인 조건이 마련된다. 그런데 교계에 과연 상시 근로자가 일정한 수 이상으로 있는 사업장이 얼마나 될까. 대충 떠올리려 해도 머리에 잡히는곳은 그나마 몇 안 되는 언론사뿐이다. 불교방송을 비롯해서 교계의 각 신문사가 대표적인 사업장이 될 것이다. 교계에서 노동조합 문제가 바로 이 언론사에서 일어났던 사실은,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명확히 구분되는곳에서는 언제나 양자 사잉의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뜻한다.
공식적으로 지난해 9월에 설립된 불교신문사의 노조가 교계 최초의 노조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노조로 기록된다. 다소 뜻밖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불교신문사의 노조는 결성 이후 큰 물의 없이 운영되고 있다. 아직 노동조합 혀판을 걸지 못한 실정이지만.
올해 2월에 있었던 불교 방송국의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한 파문은 첫 번째의 노조사건이 된다. 방송국 직원이 기습적으로 설립하였으나 방송사측 장상문 사장의 별세 이후 사장이 공석인 점 등 상황이 무척 어려운 시점이므로 노조 결성은 회사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였다. 결국 마포구청에 노조설립 신고를 한지 보름여만에 노조는 자신 해산을 했다. 대신 노사 양측은 사규에 노사협의회를 설치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임직원 모두함께 일백삼십여 명의 교계의 각 신문사가 대표적인 사업장인 불교방송이 노동조합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만 노조 설립을 전후하여 말썽이 되었던 ‘자비의 집 성금 유용’ 과 관련한 임원에 대한 문책이 있었다고 한다.
거이 같은 시기에 노조 문제가 대두된 법보신문사와 불지사(편집 기획사)에서는 앞서의 두 경우와는 달리 진통이 심하다. 또 그만큼 앞으로의 후유증이 오래 갈 것으로 예상된다. 법보신문사는 교계의 다름 신문보다 늦게 창간되었으나 기사 내용이나 ‘가로짜기’의 도입 등 편집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진보성을 띈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는 ‘민주언론’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정작 진보적인 조치가 있으리라는 ‘노조’문제에서는 단호히 아니었다. 종단의 기관지인 불교신문의 노조와 비교할 때 정말 거꾸로 된 입장이 됐다. 법보신문사의 노조는 불교방송의 노조와 마찬가지로 설립 이후 제대로 단체교섭 한번 갖지 못한 채 해산되는 운명을 맞았다. 불지사는 교계 편집대행사의 간판격으로 그동안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착실한 발전으로 출판 문화의 모범을 보인 사업체로서 대중의 신망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곳에 노조 설립의 움직임이 일자 사주측과 직원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어 마침내 폐업하기에 이르렀다. 뜻하지 않은 폐업에 당황한 직원이 연명하여 사과함으로써 일단 재신고의 절차를 밟고 있으나, 이 파문으로 몇 명의 직원이 해고되었다.
공동체 의식과 노조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구호 가운데 ‘사원을 가족처럼’이라는 것을 본다. 말하자면 사업장에서는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자는 뜻을 강조한 구호다. 사주다 종업원이다 하여 편을 가르기보다 하나의 가족처럼 회사를 꾸려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이 구호는 종업원에게 봉건적 생활을 강요하는 올가미로 쓰이고 있다. 고용된 사람의 요구보다 회사를 우선하는 사고는 결국 사주의 입장을 강화시키게 된다. 공동체를 내세웠으나 결과는 고용된 사람의 침묵을 강요하는 닫힌 공간이 되고 만다.
그곳에서는 내부의 모순이 해결되기 보다는 지연되면서 갈등의 진통만 키워 가게 된다. 진정 참다운 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종교계의 사업장이 그 모범이 되어야함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오히려 종교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일반 사업장보다 더 폐쇄되어 있다. 극단적인 예로 ‘신앙촌’의 경우는 역사 발전을 거꾸로 거스리려는 반사회성을 띄고 있다. 종교가 현대화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현대 사회의 기제를 순리적으로 반영하는 실천과 합치될 때 현실화 된다. 단순히 교리의 재해석이나 문명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화의 길은 아니다. 수공업 시대의 운영 방식을 산업사회에 적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를 대처해 나갈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건전한 사회로 이행하려면 과거의 낡은 제도와 관념을 청산하여야 한다. 봉건적 신분제도의 유제인 성적 차별이나 관적 절서는 현대에 와서는 발전의 걸림이 되고 있다. 일반사회만이 아니라 종교에서도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우려 했다가는 호된 비판을 받는다. 불교가 현대인을 감싸 안는, 그야말로 현대인의 종교로 되려면 불교인의 사고가 산업사회에 맞게 교정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바른 모습은 부처님이 가섭에게 선뜻 당신의 자리를 반 나누듯, 저 뒤에 오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세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