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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동물산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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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강좌 - 윤상림 1993년 07월 137호
나카무라 하지메 편 , 윤상림 한글 번역


불교이 진리관은 연기법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간에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이해 세워지고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또한 이러한 연기법의 한 표현입니다. 불교이 세계관에서는 동물의 세계 또한 인간의 조건과 상호 관계가 있다고 파악합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일자로서 인간과 동물은 똑같은 반열에있다는 세계인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나까무라 하지메 박사의 「불교동물산책」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동물이 어떻게불교적 세계관을 담지하고 있는지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바라보고 재미있게 이야기합니다. 이책의 저자 나까무라 하지메 박사는 일본 동경대학에서 강의하였고 많은 불교 저서를 출간한 탁월한 불교 학자입니다. 더불어 이 책은 저자의 동의를 얻어 번역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머리말
인류의 지구 지배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동물은 어떤 위치에 놓을까 하는 생각은 많이 변해왔다. 옛날에는 대도시 교외에도 물맑고 조용한 곳에서는 반딧불 잡기를할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야마구찌현 縣의 동쪽인 산인(山陰)땅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였지만, 그래도도랑물에서 올챙이를 잡을 수가 있었다.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다이쇼(大正 1912∼1988) 연간에 이미 신문 기사화된 적이 있었는데,뉴욕의 어린이들은살아있는닭을 본 적이없다고한다. 닭을 깃털 없는 식료품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도회지 어린이들은소나말을 본적이 없고, 오히려 팬더곰쪽을 더 잘안다고 한다. 동물원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소나 말은 동물원에는 없다. 오히려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더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지구 침략은 동물에 대한 경험조차도 변하게 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기계 문명이 진전이 이제까지 잘 몰랐던 동물의 생태를 밝혀 주었다. 특히 텔레비젼의 발달은 동물의 생태에 관한 지식을 풍부하게 했고 그 사는 모습을 자세한 것까지 알게 했다. ‘워칭 Watching\' 이라는 프로를보면 동물과 인간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동물도 기쁨과 슬픔이 있고 욕망도 있는가 하면 싸움도 있다. 그들도 무리를지어 살며 보스가 지배하는 것이 인간 사회와 다를 바 없다. 사회는 인간만 만든다고 배웠지만 그것은 인간의 건방과 뽐냄이 아닐까.
일찍이 러시아의 크로포트킨은 시베리아에서 동물의 생태를 관찰했는데, 그들도 서로 돕는사실을알고는 감격하여 그때부터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품었다고 한다. 동물을 잘 관찰하는 것은 우리들의 인간관을 바꾸게 한다.
불교 문헌은 동물에 관한 지식과 공상의 무한한 보고이다. 동물에 관한 설화가 이처럼 풍부한 종교도 또 없을 것이다. 불교는 동물에 대한 인간이 독선적인 자만이 가장 적은 종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동물설화를 읽는것에 의해 우리들은 자신만 혼자 잘났다고 하는 생각을 돌아보게 한다.
이 동물산책은 결코 체계적인 서울로 이루어진 글은 아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읽는 사이에 독자는 가슴 뿌듯한 그 무엇인가를 느낄 것이다.
1988년 4월 18일

1. 중시되는 동물
인도에서는 사람들과 동물이 함께 살기도 한다. 가축의 우리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가난한 농가 같은 데서는 사람과 한집에서 산다. 베다 이래의 기도문 속에는 늘 ‘자손과 가축이 늘도록 해주옵소”라는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가축이라고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어서 소가 특별히 중시되고 물소와 말이 그 다음,새는 공작과 학과 크나라새를 귀하게 여긴다. 돼지나 토끼는 특수한 신화나 전설과 관련된 의미가 중요하다.
불교의 교리대로 한다면 모든 동물을 똑같이 사랑해야하겠지만, 몇몇 동물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인도 전반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불교문헌에도 보인다.

소-신성한 동물
인도에서는 꽤 옛날부터 소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머리에 혹이 있고 목 언저리에 살이 축 늘어진 하얀 소이다. 그밖에 우리에게는 낯익은 갈색 소나 물소 따위가 있다. 생김새가 매우 특징적인 흰 소는 인더스문명 시절부터 있었다고 한다. 얼마 뒤 인도를 침입한 아리아인은 원래 유목민족이었다. 그 아리아인이 소를 기르게 된 것은 인도 침략 전이었는지 뒤였는지 필지는 견식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어느쪽이든 아리아인도 인도 땅에 살면서 소를 귀중한 가축으로 길렀음에는 틀림없다.
왜 소가 귀중했는가 하면, 먼저 우유를 비롯한 갖가지 유제품의 원천임과 동시에 수래도 끌게 하고 또 농사도 지었으며, 거기다 말린 쇠똥은 땔감으로도 썼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가 귀중한 재산이었다는 점에서 화폐 경제가 별로 발달되지 않았던 때에는 물건의 가치를 소의 마리 수로 셈했다. 일본에서도 화폐 경제는 충분히 발달했어도 에도(江戶) 시대까지도 재산은 쌀로 계산했다. ‘안동 땅 백만 석 부자’를 인도풍으로 말하면 결국 ‘안동 땅 소 백만마리 부자’쯤 될는지.
인도에서는 소는 신성한 동물이고 시바신이 탄다고 전한다. 또 소를 신성시하므로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된 것도 독자들은 잘 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소를 신성시했던 이들은 원래 아리안계 사람들이 아니고 전부터 인도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리아인도 소를 귀중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꽤 후세까지도 쇠고기를 먹는 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다가 쇠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은 아리안 종교가 선주민의 종교와 완전히 합쳐져 이른바 ‘힌두교’가 생기면서라고 한다.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자 일부 인도인 사이에 몰래 소를 먹는 일이 생겼다. 그러나 이 일은, 인도가 식민지가 된 것은 영국인의 체력이 우월하기 때문이며 그 영국인의 체력을 지탱해 주는 것은 쇠고기이므로 인도가 영국의 압제를 몰아내려면 먼저 쇠고기를 먹어 체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애국심에서 나온 일이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도 그 자서전에 젊은 시절 그런 생각으로 딱 한 번 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청년 간디의 마음에 거센 회한의 감정을 일게 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를 우유도 마시지 않으며 철저하게 살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게 했다.
오늘날은 인도의 대도시라면 꼭 어딘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원래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일반인도 오기 때문에 조금 쇼크였다. 그러나 ‘일반인’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아무래도 해외에서 쇠고기를 먹던 사람이든가 전통에 비판적인 젊은이가 중심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아직도 세간의 빈축을 산다.
그럼 이쯤에서 불교의 이야기와 연결해 보면, 석존 등 부처님은 지주 소나 소임금님이라고 불렸다.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도 소(흰소)가 당당하고 멋있으므로 그렇게 불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덧붙여 석존의 씨성氏姓의 이름은 빠리어로는 ‘고타마’이고 산스크리트어로는 ‘가우타마’인데 어느쪽이든 태고의 베다에 나오는 선인仙人 고타마가 배경이 된다. 또 ‘고타마’는 ‘으뜸가는 소’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인 석존에게는 처음부터 소의 이미지가 붙어 다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