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제와 같은 그 새벽이요, 그 해요 그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답답하고 , 삭막하기도 하고, 멋이 없어 보인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그대로 표현하다 보면 너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어떤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붙이고, 자신이 붙인 그 의미의 굴레를 써는 것일까? 굴레를 써는 것은 짐짓 알고도 속는 것은 때때로 그것 자체에 대한 어리석음 보다 아름다움일 때가 더러 있다.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이 새벽에 듣는 쇠북소리는 더욱 우렁차고 송경(頌經) 소리는 더욱 청아하고 아!
새해 새아침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해하고 하는 의미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꿈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새해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는 오늘은 전혀 어제와 다른 날이요 새해는 묵은해와 다른 한해인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의식하는 것이다.
이젠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하더라도 오늘은 병인년 새해 새아침이다.
인간이란 언제나 기대속에 사는 존재 지난 삶이 피곤하고 괴로울수록 새로운 기대나 희망은 커진다. 그것은 마치 겨울이 춥고 길기 때문에 봄에 대한 동경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과 같음이다.
올해는 범띠의 해, 사나운 맹수 호랑이의 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의 호랑이는 마냥 사납기만한 짐승은 아니다. 곶감에게도 놀라 달아나고 양반의 비행(非行)을 꾸짖어 주기도 한 준엄한 판관 같이도 하고 익살스러운 사내아이와 같은 범님들.
우리 조선 사람들과 같이 호랑이와 친한 민족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군신화에서 시작한 호랑이는 이제 급기야 서울 올림픽 마크로까지 등장한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호랑이와 친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담배 피우는 호랑 영감과 손자 같은 토끼와 까치들, 이런 민화들을 보면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해학과 익살로 여유를 즐기는 민족인지 그 단면을 보는 듯도 하여 즐거워진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들은 과연 그러한 여유가 있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할 만한가.
세계에서 가장 교통사고가 많은나라, 기다리지 못하는 성미, 이젠 조용히 생각한다든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 되고 있다.
지나친 편의주의와 출세주의와 나날이 그 울타리가 높아지고 있는 개인주의가 빚은 인간서의 말살등은 우리 사회가 급속히 산업화 하는 과정에서 낳은 또 하나의 사생아들이다.
눈치주의나 한탕주의와 사행심(私行心)으로 가득차 있는 사회가 어떻게 건전하고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겠는가. 새해에는 좀더 우리 사회가 너긋해지고 여유를 가진, 그러면서도 성실한 자세로 일하는 한해가 되어야겠다.
범은 털을 아끼는 짐승이다. 그리고 죽으면서 그 털을 남긴다. 그것은 곧 인간이 명예를 존중함과 같음을 말한다. 우리네 옛 사람들은 권세와 부(富)보다는 고결하고 높은 품격을 가지고 살기를 원했다.
명예는 명리(名利)와는 다른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분수와 체통을 지키는 일이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나아가는 일이다. 하얀 눈 위에 발자욱이 남듯이, 우리의 시간 속에에는 자신의 삶의 자국이 남는다. 그 삶의 발자욱이 추악한 자욱이 되지 않도록 새해에는 다짐하면서 살자.
눈이 내린다. 서산(西山)스님의 시를 생각하면서 서설(瑞雪)이 내리는 겨울 숲을 걸어 본다.
어떻게 사는 삶이 인간답게 사는 삶인지, 그윽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바른 눈을 가지고 살자. 바른 잣대를 가지고 살자.
눈 온 들길을 걷는 사람이여
갈팡질팡 걷지 말아라
오늘 그대의 발자취는
뒷 사람의 이정표이리니···
踏盡野雪去
不須( )亂行
今日我 跡
成作後人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