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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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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 편집실 1993년 07월 137호
한자로는 봉선화鳳仙花라고 쓰지만 우리 말로 그냥 ‘봉숭아’라고 일컽습니다. 옛 책에는 “줄기와 가지 사이에 꽃이 피며,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모두 오뚝하게 일어서 마치 봉鳳의 형상과 같으므로 봉선화라고 했다” 고 이름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이스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여신이 도둑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올림푸스 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몸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훔친 물건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누명을 벗을 길이 없어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여신은 죽어 봉숭아꽃으로 변했습니다. 봉숭아 꽃은 누구나 자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씨주머니를 터뜨렸습니다. 죽어서도 자기의 결백을 말하기 위하여 자기의 속을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몽고의 지배를 받고 있던 고려26대 출선왕은 몽고의 공주보다 조비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를 왕위를 내 놓게 되고, 몽고 수도로 붙들려 가서 감시를 받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왕은 늘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왕은 한 소녀가 자기를 위해 가야금을 타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줄을 뜯을 때마다 소녀의 열 손가락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놀라 꿈에서 깬 왕은 하도 이상하여 궁녀들을 다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열 손가락에 모두 흰 헝겁을 동여맨 눈먼 소녀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 소녀의 신분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 궁녀는 고려에서 온 공녀인데 집이 그리워 울다가 너무 울어서 눈병이 난 것이고, 열 손가락은 봉수아물을 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왕은 이처럼 다른 나라에 와서까지도 자기 나라 풍습을 지키는 것이 기특하여 조용히 그 소녀에게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소녀의 말이 자기 아버지는 충선왕파라는 이유로 관직에서 쫓겨나고 자기는 붙들려 공녀로 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곳에 계시는 충선왕에게 바치려고 오랫동안 준비한 가락을 들려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왕에게 꼭 귀국하시라는 노래에 붙인 가야금 가락이었습니다.
왕은 노래에 감격하여 이로부터 다시 고국에 돌아갈 뜻을 품고 원나라의 무종이 왕위에 오를 때 크게 힘을 도운 끝에 고려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왕은 간신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왕은 소녀의 일을 생각하여 불러 오려고 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소녀가 죽은 뒤였습니다.
왕은 소녀의 애틋한 정을 기리는 뜻에서 늘 궁궐 뜰 앞에 많은 봉숭아를 심게 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