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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 禪書를 읽자(4) - 전심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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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해설 - 신규탁 1993년 07월 137호
‘선문답한다’는 말은 본디 뜻과 다르게 쓰일 때가 있다. 이 말은 때로는 동문서답한다는 뜻으로 통하기도 한다. 선문답이 이런 인상을 주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큰 이유는 대화가 함축적이기 때문이다. 보기 하나를 들어보자. 내가 아는 일본 사람 가운데에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이가 있다.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던 시절 김포공항에서 입국검사를 받는데 또박또박 한국말로 대답하니까 검사관이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물었다.
“당신은 뭘 하는 분입니까?”
“보통 사람입니다.”
심사관은 그만 웃음을 떠뜨리고 말았다. 노대통령의 “보통사람”구호를 모르는 사람은 심사관이 웃은 영문을 모를 것이다.
선서의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함축되어 있는 데다가 당시의 시대 상황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게다가 당대의 선서는 일이 십 연도 아니 천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잇다. 그것도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서 말이다. 선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당시의 지적 분위기는 물론 유행어까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전심법요」를 읽기에 앞서 당나라 중엽의 불교상황을 살펴보자. 이 무렵은 극락정토 왕생을 위한 갖가지 기도가 유행했던 때이다. 여러 왕생담도 이때 만들어지고, 사원에서는 무슨 때면 재齋를 지내고 , 귀족들은 이 재에 참석하여 행도 行道를 돈다. 이런 행도의 제도는 「통전」, 「당육전」, 「당률소의」등에도 여기저기 실려 있다.
그런가 하면 열두 대문을 상징한 종이를 접어 놓고 염불을 하며, 그것을 가르고 극락으로 왕생하는 과정을 승려들이 신명나게 연출한다. 재자는 감동하고 새전은 쏟아진다. 이런 신앙 형태는 명나라로 이어져 우리나라 굿판(장례 뒤의 자리걷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임금이 사는 내전에도 법당을 짓고 영험있는 스님을 모셔 밤낮 기도가 끊이질 않는다. 이 기간 중에 변방의 적군이 물러갔다는 파발이라도 전해 오면 임금은 비단을 하사하는 등 대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쪽 하늘에 별똥이 떨어져도 기도를 올린다. 양자강 강가에는 수륙재가 철마다 열리고 , 울긋불긋 번 幡이 펄럭이고 스님들의 가사 색깔은 휘황찬란하다.
838년부터 약 십여 년에 걸쳐 당나라를 구법 여행한 일본의 승려 엔닌(圓仁)은 당시이 이런 풍습을 소상하게 전한다. 「입당구법순례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당시 사원의 행사와 신앙 형태의 연구에는 물론 어법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한글 번역도(신복룡 번역, 주해, 정신세계사 1991)있어 아쉬운 대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수행의 절차와 도량을 장식하는 일은 또 어떠한가. 당나라 때 만들어진 「원각경」에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물론 「능엄경」에도.
「원각경」의 첫머리에 여래의 삼매 속에 정토가 나타난다. 당시의 정토신앙이 「원각경」에 반영된 셈이다. 교가들은 이 정토를 법성정토法性淨土라고 해석하지만, 이것은 당시 민중 내지는 민속경전으로 등장한 「원각경」을 현학적으로 사변화한 것이다. 서역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그 지방의 풍속을 담고 있듯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경전에는 당시 중국의 풍물이 암암리에 배어 있다.
그때 유행하던 수행법은 천태 계통의 문헌에 많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에 천태스님의 「석선바라밀차제법문釋禪婆羅密次第法文」(선수대장경 권46)이 유명했다. 이런 천태의 수행법은 규봉스님에게 이어져, 「원각경도량수증의」(만자속장경 128책)로 정착된다. 절차와 작법이 자세하다 못해 지나치게 복잡하다.

Ⅲ
이런 상황에서 펼쳐지는 것이 바로 황벽선이다. 「전심법요」에서 황벽스님은 당시의 세태를 단호하게 지적한다. “요즈음 도를 닦는 이들은 제 마음을 깨치려 하지 않는다. 마음에 모두 간직되었건만(부족하다고 여겨 모자라는 것을 보태려고) 마음을 낸다. 그리하여 형상화된 단계적 절차를 밟아 수행한다. 이것은 악법이며 깨닫는 길이 아니다.”
「전심법요」의 한글 번역으로는 1.「한글대장경-경덕전등록181」(월운스님, 동국역경원, PP. 340-351), 2.「문촬요(회암스님, 수덕사, 3. 「선림고경총서1, 선림보전(백련선서간행회, 장경각, PP. 229-345). 4.「전심법요」(일지 역주, 세계사) 등이 있다. 그리고 일본어 번역으로는 5.「천심법요」(우이하쿠쥬宇井伯壽, 岩波文庫)를 비롯하여 6.「禪の語錄8, 전심법요, 완릉록」(이리야요시다카入失義高, 筑摩書房) 등이 있다.
4에는 역자의 주가 자세히 달려 있는데, 이것은 5의 주해를 수용한 것으로 이용도가 높다. 5는 역자의 면밀한 언어 훈련과 문학자로서의 개성이 어우러져 황벽선의 선명함을 잘 드러낸다. 5는 오역이 심해 5의 출현 이후 무대에서 사려졌다.
번역에는 번역자의 개성이 들어가기 마련이니, 여러 책을 대조해 가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되도록이면 원문을 옆에 놓고 자신이 판단해서 각 구절마다 옳은 번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Ⅳ
이 「전심법요」는 당시 최고의 지식관료 배휴(797∼870)에 의하여 정리된 것으로, 그는 질문자로서의 예리함은 물론기록자로서의 섬세한 필체도 겸비했다. 당시 최대의 관심사였던 ‘점차적으로 수행을 쌓아서 깨닫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놓고 주고받는 대화(3의 PR 261-262, 4의 PP. 80-83)를 보자. 상공 배휴가 질문하고 황벽선사가 대답한다.
“스님 , 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해야합니까?”
“상공께서는 도가 무엇이라 생각하시길래 수행하려 하십니까?”
“여러 지방의 큰스님들께서 모두들 참선하여 도를 배운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왜입니까?”
“그것은 근기가 낮은 사람을 지도하느라고 그런 겁니다. 그 말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참선해서 도를 배우는 것이 모두 근기가 낮은 사람을 지도하느라고 한 말이라면, 근기가 뛰어난 사람을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가르침(法)을 말합니까?”
ㄱ. “근기가 뛰어난 사림이라면 어찌 남에게 그것(法)을 구하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자기 자신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가르침(法)이 별도로 있다고 인정하겠습니까?”경전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르침이라고 하는 그 가르침이 어찌 모양이 있겠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러시면 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ㄴ. “구하려 하지 않으면 마음의 수고가 줄어들지요.”
“그렇다면 모두 부정하는 것이니 ㄷ.(결국 도가)없다는 말씀인가요?”
“누가 그것(道)이 없다고 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상공께서는 구하려 하십니까?”
“선사께서는 조금 전에 그것을 구하려 하지 말라고 하시고서, 왜 이제 와서는 그것(道)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까?”
ㄹ. “만일 도를 구하려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누가 정승더러 (도가 없다고)부정하시라고 했습니까? (예를들면) 정승께서는 지금 제 앞에서 허공을 보십니다. 그런데 어찌 이 허공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스님, 그러면) 이 가르침은 허공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허공이 언제 정승에게 같으니 다르니 말하기나 했습니까? 제가 잠시 허공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드렸더니, 상공께서는 대뜸 여기에 알음알이를 내시는 겁니다.”
ㅁ. “그렇다면 (스님께서 애초부터 이런 말 저런 말 하시지 마셔서) 제가 알음알이을 내지 않도록 하셔야될 게 아닙니까?
“저는 결코 상공을 방해한 적이 없습니다. 요컨대 저 지해 知解하는 것은 알음알이에 속하므로 알음알이가 생기면 지혜가 가려지는 법입니다. ”
“(선사께서 아까부터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되는 겁니까?”
q.\"(그렇습니다.) 만일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누가 이러쿵 저러쿵 말하겠습니까?“

대화의 논점과 직결되는 부분 중에서 번역에 문제가 있는 부분만을 검토해 본다.
ㄱ 의 원문은 “若是上根人, 何處更就人覓地, 自己尙下可得, 何況更別有法當情”이다. 他는 앞에나온 도를 지칭하는 지시대명사이다. 또 別有法當情에서의 情은 마음의 작용으로 넓은 의미의 인식 활동이다. 직역하면 ‘인식 작용의 대상이 되는 법이 별도로 있다.“이다.
ㄴ 의 원문은 “若與麽則, 省心力”이다. 與麽 는 문어체의 如此 와 동의로서 당대의 속어이다. 省心力은 省力으로도 쓰는 말로 費力(수고하다)의 상대어이다.「백련불교논집」2집 p.183 참조)
ㄷ 의 원문은 “如是則渾成斷絶, 不可是無也”이다. 不可是∼也는 의문문이다. 굳이 국한문 혼용체로 번역하면 “가히 이는∼가 아닌가?”이다.
ㄹ 의 원문은 “若不覓 便休”이다. 便休는 족하다, 됐다이다. 무심하면 됐지 그밖에 다른 수행 따위는 첨가할 필요없다는 것이다.
ㅁ의 원문은 “應是不興入生解耶”인데 應是不 ‘∼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강한 부정이고,「人」은 배휴를 가리킨다. 이 말은 괜히 헉공이 어떠니 저떠니 말을 해 가지고 왜 남(배휴)을 헷갈리게 했느냐는 불평이다. 그럴 바에야 애초 허공 얘기를 꺼내지 말 것이지!
ㅂ 의 원문은 “若不生精, 阿誰道是”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阿誰道是이다. 이것을 “누가 옳다고 말하겠는가?” 하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만일에 이렇게 읽으면 “만약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 옳다고 말할 사람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곧,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틀린다”가 된다. 이것은 황벽선의 내용과는 상반된다. 여기서는 是는 옳다는 뜻이 아니고, 지시대명사로서 이제까지 한 대화의 전부를 가리킨다.

황벽스님의 대답은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지 말고 무심하라는말로 일관된다. 돈오돈수로 표현하기도 하는 이 돈오무심 사상은 당대 선의 근본 흐름이다. 마음 그 자체에 모두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외면적인 수행의 절차를 거쳐 도를 깨치려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황벽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육도만행을 닦아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단계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깨쳐서 된 부처는애초부터 없다” 3.의 p. 240 참조) “제 마음이 본디 부처라는 사실을 단박에 깨달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수행해야 할 것도 없으며 이것을 최고의 도이며, 진짜 부처이다.”(3. 의 p. 248참조)
황벽선사의 이 돈오무심 사상은 신수대사를 제쳐 놓고 혜능 행자가 5조 홍인 스님의 의발을 전수한 이유를 설명하는 곳에서도 잘 드러난다. 3. 의 275 참조)
육조스님을 스승으로 받드는 선가에서는 기도라든가 단계적인 절차와 외면적인 행법은 도를 깨닫는 방법과 거리가 멀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부처가 된 경우는 없다고 마조, 백장, 황벽, 임제 선사들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육조대사의 가르침이라고 표방하여 제 마음을 깨치라고 부르짖는다. 이것은 당대 남종선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육조스님의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자처하면서 점수를 주장하면 자기모순이다. 오히려 남종선에 국한하지 말고 범위를 넓혀 불교라는 차원에서 점수를 논하는 편이 정당하다고 하겠다.
육조의 법손임을 자처하면서 점수를 주장하는 규봉스님이나 보조스님의 초기 사상은 당나라 시대의 남종선을 주체적으로 해석한 것이거나 아니면 오해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이 스님들이 당시의 사상사적 사실을 거스르면서까지 점수론을 주장한 의도를 분명히 하고 이 스님들의 내적 사상사 위에서 이 주장의 의의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이 돈점 논의는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역사학 방면의 연구 성과는 면밀한 자료 분석으로 당시의 시대사조 속에서 보조스님의 사상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킨 반면, 불교학, 철학 방면의 논의는 보조사상 그 자체와 그것을 바라보는 연구자의 생각이 뒤섞여 결과적으로 주관적 선언에 그치고 만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