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운동의 실패를 딛고
한 살림운동이 태동하게 된 배경은 1970년대 원주에서 장일순 씨를 중심으로 김영주, 박재일, 이경국, 그리고 시인 김지하 씨 등이 강원도와 충청북도 지역의 농민과 광상 근로자를 중심으로 협동운동을 조직했던 일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협업운동과 신용협동 조합운동을 중심으로 일이 진행된다. 그 뒤 운동의 주요 인자가 여러 가지 사건으로 흩어지면서 신협운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패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이 이념적인 토대가 취약했던 데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들은 생명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며 분열시키고 죽이는 삶의 질서에 대항하여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인간의 생명을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하는데 뜻을 같이하게 된다. 그 일환으로 농촌과 도시, 생산과 소비를 연대시키는 광범위한 협동운동이 필요함을 깨닫고 인근 농촌과 농민운동과 연대하는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을 설립한다.
한편 농민운동을 통하여 땅과 생명이 화학농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것을 걱정하던 박재일 씨는, 땅과 인간의 순환에 기초한 유기농을 농촌에 보급하고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유기농운동을 도시 소비자와 연대시키기 위해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6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최혜성 씨가 합류하면서 조직의 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이들은 한 살림운동이 유기농운동과 소비자운동의 연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소외, 분영시키고 억압, 파괴하는 ‘죽음의 질서’인 산업문명 전반에 대항하여 생명을 총체적으로 살리는 전면적인 생명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이념과 실천 방략을 찾는 연구모임으로 ‘한살림연구회’를 만들어 공부모임을 계속하고 , 1989년 10월 29일 ‘한살림모임’을 창립하게 된다.
이러한 운동의 기저에 있는 세계사적인 흐름의 한 줄기도 간과할 수 없다. 60년대 우리나라는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절정을 이루었고, 구라파에서는 불란서 오월혁명과 프라하의 봄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반문화운동과 반전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학생운동은 기존의 권위와 체제에 대항하는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물결이었고, 근본적으로 기존의 문영에 반대하는 문명비평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 운동은 한참 동안 잠복 기간을 거친 뒤에 1980년대에 녹색운동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운동의 사이클은 세계사적으로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이들은 생명운동의 내용으로 환경문제, 문명사적 문제, 새로운 세계관의 문제, 그리고 민족 주체의 문제, 동양 전통 사상의 문제 등을 떠안게 된다.
과학기술주의에서 생태주의로
이러한 관심에서 출발한 한 살림모임은 많은 토론과 연구를 거쳐 다름과 같은 명제들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지금의 산업문명의 위기적 증후군들을 핵 위협과 공포, 자연환경의 파괴, 자원 고갈과 인구의 폭발, 문명병의 만연과 정신 분열적인 사회 현상, 경제의 구조적인 모순과 악순환, 중앙집권화된 기술 관료체제의 의한 통제와 지배 등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적 상황을 가져온 산업문명의 사상적 배경을 서구의 계몽철학, 실증과학, 산업혁명, 시민혁명에서 찾고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 뉴톤의 물리학, 존 로크의 사회사상은 인간과 물질을 고립되고 단절된 원자적존재로 파악하고, 자연과 사회와 우주를 기계론적 모형으로 설정하였다고 비판한다. 또 그들은 인간이 육체 안에 외부와 격리되어 존재하는 정신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육체와 감성의 존재 의미를 상실케 하였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기술 주의는 직관적 지혜보다 분석적 지식, 통일보다는 분리, 조화보다는 대립, 협동보다는 경쟁에 더 치중해 인간을 자신과 공동체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격리된 존재로 전락시킴으로써 생태적 불균형, 공동체의 상실, 자기 소외의 문명사적위기 상황을 가져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 이러한 문명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인류와 그 삶의 토대인 지구 자체를 파멸로 이끌 수 밖에 없음을 운동의 추동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기의 대안으로 이 운동은 인관과 자연을 살아 있는 체계로 보는 생태주의를 제창한다. 생태주의는 결국 인간이 자연이 한 부분이라는 것, 인간과 자연이 동등하다는 것,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근대 과학사상으로부터 다시 자연으로 복귀함을 말한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이론의 토대는 결정론적인 기계론의 모형인 뉴톤-데카르트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과학이론에 근거한다. 신과학은 사물을 분할하고 구성요소를 환원하여 인식하는 분석적 방법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세계는 분할될 수 있는 수많은 부품이나 단위로 구성되는 기계가 아니라 분할될 수 없는 하나의 살아있는 전체로, 상호관계의 그물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주의 역동적인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점에서 신과학은 인간과 자연을 상호 유기적인 통합의 관계로 파악하는 동양사상고 맞닿아 있다. 특히 한 살림운동은 사람이 한울님이고, 천지 속에 내가 있고 천지가 내 안에 있어 천지와 내가 하나라는 시천주사상을 말하는 동학사상에 주목한다.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고 나아가 자연을 정복해야 한다는 서구의 합리주의가 배태한 현대 문명의 병폐는 상생 相生의 원리를 제창하는 동양사상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데 도달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과 생활문화운동
근대 문명의 말기 상황을 진단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동양사상에 근거한 생명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 한살림 모임은 구체적인 실천 양식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전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 사회적 삶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에 기초하여 심신수양 활동, 생활문화 활동, 사회실천운동을 통해 생명의 전일적인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각성은 세속을 떠난 산사나 수도원에서만 아니라 숨쉬고 밥먹고 노동하고 이웃과 부벼 대며 사는 생활의 일상 속에 체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유통, 소비의 전 생활 과정에서 자연과의 조화, 이웃과의 협동을 구현하는 생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생산자운동과 소비자운동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농업에서는 유기농을 권장하고 제조업에서는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을 제시한다. 이러한 한살림공동체의 이념에 동의하여 유기농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대구의 천규석 씨, 충남 전의의 신성준 씨, 충북 괴산의 흙살림연구소 들이 있다. 또 소비자운동을 선도하는 그룹은 서울 양재동의 한 살림생협, 대구의 한살림생협 등이 대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동네살림모임’을 구성하여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주민은 주로 천주교 교회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데, 직접 유기농 현장을 답사하는 학습과 무공해 제품 만들기 등의 실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전일적 생명의 현장을 학습하게 된다. 그밖에도 각종 위원회를 설치하여 다양한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이와같은 사회실천운동은 생태적 균형, 사회정의, 인간화를 목표로 하는 시민운동, 정치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며 반핵, 반공해를 지향하는 환경운동, 민초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지방자치운동, 모성과 주부로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고양시키는 여성운동, 평화와 통일을 동시에 실현하는 평화통일운동을 제창한다. 이렇게 했을 때 문명의 피해로 발생한 민족의 통일도 이룩될 수 있다고 보며, 더 나아가 산업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여 지구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는것이다.
이렇듯 한살림운동은 연구와 실천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병행하고 있다. 연구모임에서는 오늘날 문명이 가지는 한계와 병폐를 진단하여 새로운 대안이 무엇인가 연구 토론하고, 실천의 영역에서는 작은 시안 하나라도 실제 우리 생활에 유익하도록 이끌어 내는데 힘을 쓰고 있다. 아직은 운동이 출발한 기간이 짧아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문명의 병증을 누구보다 많이 느끼고 있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한살림모임은 귀중한 모델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의 작은 한 영역에서나마 이러한 모임들이 착실히 꾸려진다면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하여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