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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바닷가에 있는 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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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응 1993년 07월 137호
바야흐로 휴가와 여행철이 다가오고 있다. 평소 행운유수 行雲流水처럼 사는 우리 승려의 모습을 보고 세속인들은 일면 부러워하지만 그 자신의 삶의 형태를 바꿀 만큼 탐나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 무엇엔가 묶여서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꼼짝 못하고 있든지.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 의기양양해하고 있던 차에 근자에 유홍준 선생의 「우리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 보니 또 다른 어떤 점을 깨달았다. 재미와 요령을 곁들인 설명과 문화와 역사의 이면을 읽어내는 선생의 예리한 안목에 경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승려의 운수행 雲水行과 학자의 답사행은 조금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승려의 운수행이란 집착을 버리고 자유를 지향함을 기본 정신으로 하지만, 학자의 답사란 의미 찾기와 의미부여의 작업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니는 절이요 유적이라 무심코 지나치고 말지만 학자의 눈으로 보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의미로서 구현되는 것이다.
이미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오늘의 시대는 이미 상실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이념에 등돌린 요즘 사람들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것은 실리요 돈이다. 승려라고 해서 이런 풍조에 무관하지는 않을 터이다. 돈의 위력 앞에 도의 품위를 잃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는 것도 변명 못할 이 시대의 한 단면이다.
화폐란 어떤 가치물과 대체 교환이 가능한 것이다. 물건이나 노동력을 살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귀신까지 부릴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화폐 그 자체에 특정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돈을 추구함은 돈을 통해서 그 어떤 것을 추구하려 함인데,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한편 그런 것을 심각하게 따지지 않고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돈부터 구해 놓고 보자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돈이 가치 매체일 뿐이라면 요즘 사람들이 진정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추구하는 가치가 화폐 속에 익명으로 잠복하다가 실종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추구하는 것은 접어둔 채 매개물인 돈 자체를 어느덧 목적이나 의미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왜 달리는지 어디로 달리는지 분명해 보이지않는다. 그 어떤 것에도 절대적 가치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 정신도 유독 돈에 이르러서는 투명한 눈길에 이따금 안개가 끼곤 하는 것도 별스러운 일이다.
요즈음 승속을 막론하고 여행들을 많이 하는데 그 반경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미치고 있다. 여행이란 승려의 운수행처럼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구가하는 것일 수 있고 학자의 답사처럼 특정한 가치를 찾아 나서는 행위일 수 있다. 기존의 삶의 현장을 잠시 떠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이 의존하는 가치 체계를 객관적 입장에서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풍물과 사람들을 접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과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란 무언가 자유로움이며 동시에 보람 같은 것이다. 그런데 마치 돈의 경우에서처럼 여행 그 자체가 목적처럼 되어 버렸고 그저 시간과 돈과 정열을 과시적으로 소비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면 안타까운 노릇이다. 의미를 잃은 삶, 뜻없는 여행이 진정 오늘의 우리 모습일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붕의 구만리 비상만이 소요유 逍遙遊랴! 좌선하는 방석 뒤의 일념 속에서 법계를 노니는 즐거움을 남이 알까. 아깝다.
올 여름 휴가와 피서는 대낮의 매미소리 한가롭고 한밤의 별빛 볼 만한 절을 찾아 속진을 씻고 의미로 가득한 삶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해인사는 이번에 7차에 걸친 여름수련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가야산은 아직 손바닥으로 움켜 마실 만한 오염 안된 시원한 물줄기가 남아 있다.
고인의 말씀에 “백년 동안 탐낸 재물 하루아침 티끌 되고 삼일동안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일세(百年食物朝塵 三日修心千載寶)”라고 했으니 어디한번 실천해 볼 일이다.
지난번 서울에서 해인사가 어디에 있냐고 묻는 학생을 만났다. 그는 해인사가 남해안이나 동해 쪽 어딘가에 있는 절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럴 듯한 상상이다. 절 이름도 그러하지만 풍수가의 말을 빌면 가야산 해인사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형국이라니 말이다.
해인사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