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浮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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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07월 137호
하루 열시간 이상의 좌선은 힘든 일이다.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은 예삿일이고 결제하고 두 달쯤 지나면 통통한 정갱이가 홀쭉해지기도 한다. 이런 고된 좌선을 하는 수좌에겐 선방 주위를 포행하는 것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뻐꾸기 소리 잦아 들고 석양에 황혼이 초록색 이파리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 무렵 뒷짐을 지고 가벼운 산행을 다니는 곳에서 으레이 부도군을 만나게 된다. 큰절 주변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깊은 적요만이 감도는 곳이다.
사운 社運이 번성했고 역사가 길었던 절은 좀 더 많은 부도가 함께 어우러져 있고 그렇지 못한 절은 몇 개의 부도만이 잡초더미에 쓸쓸히 서 있기도 하다.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 舍利나 유골 遺骨을 안치한 묘탑이다. 본디는 붓다(Buddha)를 번역한 말이라고도 하고 솔도파(率屠婆:Stupa), 곧 탑파의 전음이라고도 한다.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으로 인해 생겨났다 불교에서의 장례는 화장법이고 여기서 타고남은 유골을 안치하기에 좋은 방법이 부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도라는 용어로 스님네의 사리탑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신라 하대부터이다.
본디부도의 건립은 법제문도 法弟門徒들이 스승을 섬기는 극진한 마음에서 스승이 입적한 뒤 정성을 다하여 세우는 것으로서 당나라 선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러한 점은 구산선문이 있던 절에 부도군이 많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각 선문의 제자들이 각기 소속 종파가 확장되면서 그들의 조사를 숭앙하는데 , 평시에 설법한 내용이나 교훈을 어록 형태로 남기거나 조형적인 장골처 藏骨處를 남기려 한 데서 비롯된다.
부도는 다른 조형물과 달리 탑비 塔碑를 함께 건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주인공의 행적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이나 문화상도 함께 알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부도의 조각은 정교하고 화려한 것도 많아 우리나라 석조 미술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어느 한여름날 솔잎파리 수북히 쌓여 향기 싸한 부도전에 가서 역사의 뒷켠으로 사라진 무수한 고승의 숨결을 한번 듣고 오는것도 우리에겐 소중한 지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