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인과 문화민족이 지닐 정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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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큰스님 - 편집실
1982년 08월 6호
물은 어디든지 들어가야 하고 필요한 것이다.
물이 없으면 잠시라도 살 수가 없다.
마셔야 하고 물로써 청결하게 때를 씻어야 한다.
우리 일상 생활에도 불교의 진리를 생활화 해서 정신적으로 좀더 향상되고 여유있는 생활을 하자면 진리가 어렵고 요원(遺遠)하더라도 꾸준히 수행을 해서 생활 불교를 실천해야 하겠다.
그러니 진리는 물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에 뗄레야 뗄수 없는 밀접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정신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첫째는 겸손하고 부드럽고 사양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내가 조금 물질적으로 손해보고 사양을 해야 일이 잘된다. 그렇다고 부드럽고 화하고 너무 어질기만 해도 못 쓴다. 부드럽고 어진 그 속에 강철같은 심지를 넣어서 겉으로는 부드러워도 남이 휘어 잡으려면 휘어지지 않는 굳센 의지가 있어야 도(道)도 이룰 수 있고, 모든 세상일을 성취할 수 있다. 물질을 가지고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물질에 초월한 불타(佛院) 정신을 가지고 사양할 줄을 알아야 문화민족의 긍지가 싹트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사물에 순응하고 일을 지낸 뒤에 그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이 마음은 천번 만번 변경(變境)에 부딪쳐도 원래로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 심성(心性) 자리는 죽지도 않는 것이요. 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심성 자리를 알아 증득(證得)하면 삼라만상 온 누리에 크게 자유자재하게 된다. 그러고 일을 지낸 뒤에 마음이 편안하고 후회함이 없어야 하는 것은 우리 양심이 곧 참 부처인 때문이다. 올바른 양심이 선지식이니 모든 일을 이 선지식한테 묻고 마음을 올바르게 지니면 자연히 생활에 평정(平定)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진리적으로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비진리적으로 사는 사람은 우선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자기의 양심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늘 우중충한 생활을 해야 하고 결국에는 불행하다.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이 빈 손 빈 몸으로 옷까지 훌훌 벗고 왔건만 지혜있는 사람은 잘 살고 지혜없는 사람은 못 사는데 지혜는 곧 진리이며 인생의 생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비진리로써라도 세상을 교활하게 살아가는 그런 지혜가 아니고 인습(因習)이 물들기 이전 순수한 본래의 무구(無坵)스런 자아 발견의 지혜를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행복된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이며 멋있고 아름다운 생활인 것이다.
셋째로는 입으로 고운 말을 쓰고 나쁜 말을 하지 말며 망녕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입으로 죄악을 가장 많이 짓는데 비단 짜듯 거짓말하고 한 입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며 이간 붙이고 흉악한 욕이나 악한 말로 남을 헐뜯고 하는 것이 전부 불화와 시비의 원인이 되는 것이니 생활주변에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언어부터 우선 나쁜 점은 고쳐서 순화시켜야 한다. 공중도덕을 지킬 줄 알고 개인과는 서로 존경하는 신뢰를 길러야겠다.
이 범람하는 불신 풍조를 조금이라도 씻어 버리자면, 그 만족의 체취(體昊)와 역사, 생활양식의 측면을 제일 잘 노출시키는 언어에 관심과 주의를 가져야 되겠다.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면 곧 잘라 버려야 일이 커지지 않는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는 것도 나의 용심(用心)하는 데 있으며 잘 안되는 일도 나에게 있는 데 나쁜 생각이 떠 올라 그놈이 하자는 대로 따라다니면 출발점부터 어긋난 일이라 헛된 힘만 들고 끝내 그 망상이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글만 읽고 있던 선비가 하루는 생전 처음으로 논에 가보니 논뚝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새기에 흙을 가지고, 안으로 막아야 될 것을 밖으로 아무리 막아도 풀이 여전히 새어 나와 집에 와서 머슴에게 하는 말이 「일꾼 몇명 얻어서 논뚝 막으러 가자.」 하니 머슴이「우선 논에부터 가 봅시다.」
둘이서 논에 가 보니 물이 겨우 졸졸 새는 것을 가지고 야단이다. 그래서 머슴이「도대체 어떻게 막았습니까?」
「밖으로 막았는데 아무리 막아도 새더라.」
머슴이 흙 한 삽 떠서 안으로 막아 버리고 선비에게
「이것을 글로 한번 지어 보시요.」
선비의 말이
「방기원(防其源)」이라 했다.
즉 「그 근원을 막아라.」라는 뜻이다.
넷째는 너무 슬픔과 기쁨, 즐거운 정에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사노라면 잘 되는 일도 있고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비애를 느끼면 몸과 마음에 아주 해롭다.
비관스런 생각을 갖는다고 일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니 쾌활하고 항상 낙천적인 어릴 때의 천진난만한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
근심 걱정을 버리고 세상일은 될 만큼 된다고 여기고 여유있는 생활을 마음으로라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또 너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넘쳐도 몸에 해로운 것이다. 회노애락 즉 기쁘고 성내고 사랑하고 즐거운 것이 지나치면 오장 육부가 나빠지고 몸과 마음에 지극히 해로우니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이러한 것을 유의할 일이다.
다섯째는 이익 없는 일을 하지말고, 해로운 일을 멀리 해야 하는데 이 말은 너무나 평범한 것 같고 또 쉽게 들리기 쉬우나 평범 한 가운데 미처 살피지 못할 일이 많으며 진리는 또한 평범한 속에 있는 것이고 쉬운 일이라도 실천에 옮기자면 어려운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안 될 일과 손해 볼 일은 시초에 끊고 막아야 편안하고 망신을 안 당한다. 공부하는 수행자도 공부가 잘 안되면 무엇 때문에 잘 안되는지 생각을 해 봐서 근본으로 오욕락(五欲樂)이나 무엇에 걸려 있으면 그 생각에 걸려 있는 바를 배워야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한다. 공부인이 무엇에고 마음이 걸려 있다면 공부는 안되니 공부를 하려면 마음부터 비우고 시작해야 한다. 수행인과 세상 사람도 일을 시작할 때 예산과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서 분명히 해 나가야 일도 그렇고 공부도 쉽게 이룬다. 누구든지 한 세상 사는 것을 계획과 예정을 잘 짜서 포부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보람있게 살지 않겠는가.
여섯째는 호흡을 정밀하게 고르고 위생을 여실히 해야 하는데 부처님의 바른 법을 닦아 행하는 사람은 가고 오고 앉거나 눕거나 하는데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고르고 망상을 조복받고 몸을 고르고 규칙과 절제있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고르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이 몸이 법을 담을 그릇인 줄 알아 위생에 유의하여 밥도 적당히 먹고 몸을 어린 아이 키우듯 해야 한다.
일곱째는 정밀하게 선정을 익혀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망념이 없어야 한다. 평소에는 마음이 잠잠하게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참선(參禪)을 하노라면 십분도 안되어서 망상과 분별이 죽 끓듯이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나고 잠시라도 정신이 한 곳으로 모여 집중되지 않고 어릴 때 소꼽질 놀던 생각까지도 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죽은 마음이요 산란한 마음이요 생멸(生滅)을 받는 마음인 것이다. 용맹한 장군이 울도 담도 없는데 칼을 빼들고 버티고 서 있으면 감히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들고 있는 이 화두(話頭)도 용맹한 장군 같아서 화두만 간절히 들고 있으면 망상 도적이 침노하지 못한다. 공부를 어서 하려고 다잡으면 기운이 머리로 올라와 머리가 아파서 공부를 할 수 없으나 어서 하려는 생각을 쉬고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순일히 지어가야 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닭이 병아리 까듯이 공부를 지어가라고 말하였는데 그 의미를 생각하여 보면 참으로 절묘하다.
급한 마음으로 공부하다가 상기(上氣)가 오르면 바르게 앉아서 전신이 단전(丹田)〈배꼽 밑으로 세치쯤되는 부분〉에 얹힌 듯이 앉으면 단전이 튼튼해 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심호홉을 하면 상기가 내려간다.
여덟째는 앉고 눕는데 시간을 지키고 게으른 습관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몸은 꼭 습관들이는 대로 된다.
사람의 몸의 신경과 여러 기관은 참으로 영리한 것이다. 수행인이 공부를 하는데도 또 세간에서 무엇을 연구한다든지 무슨 사업을 하려면 몸과 마음이 항상 맑고 가벼워서 자기가 평소에 습관들인 잠, 음식, 명예, 재물, 성욕 등 모든 즐거운 욕락에 자유 자재 해야지 잘 잠을 다 자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 아무것도 못 이룬다.
공부를 해 가노라면 마음도 공하고 경계도 공하는 경지(境地)에 이른다.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서 앞 생각과 윗 생각이 뚝 끊어질 때가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처음 단계인 고요한 데 이르는 것이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들라는 경계에 이르러야 쉽게 공부를 이룬다.
죽은 자식은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늘 생각나듯이 화두를, 팔십 먹은 노파가 외아들 잃고 생각하듯이 간절히 들어 생각하면 화두가 눈앞에 역력히 들린다.
강철이라도 섭씨 삼천도만 되면 녹듯이 한 생(一生)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생명을 걸고 하면 도업(道業)을 반드시 이루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아홉째는 착한 공덕을 많이 짓고 남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남모르게 공덕을 많이 쌓고 선행을 하는 것은 복을 받고 몸이 건강해지고 오래오래 사는 근본이 된다.
열째는 고생하는 사람, 재난을 만난 사람을 구하고 곤궁한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하나의 긍지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 영원한 자비 보살(慧悲菩薩)의 깃발인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게는 범부를 고쳐서 성인(聖人)이 되어가는 길이요, 사회적으로는 악의 근본을 제거하고 바른 길로 이끄는 산 표본이 되는 것이요, 국가적으로는 한 민족이 번영하고 문화가 발달할 상징이 되고 인류가 행해야 할 기본 자세인 것이다. (이 법어는 그 동안 통도사 극락암에서 한국 선종의 등불을 지켜오시다, 지난 7월 17일-열반에 드신 경봉 큰스님의 법문이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