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과 할아버지를 태운 포장마차는 계속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았습니다. 밤하늘에는 차츰 새벽의 옅은 기운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동이 틀 기색은 쉬 보이지 않았으나 이따금
들리는 땅 아래 마을에서의 닭 울음 소리가 그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꺼지기 직전의 불빛이 가장 아름답던가요? 별빛이 또한 그러했습니다. 많은 별들이 시내를 이루며 하늘 한복판을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정말 찰랑찰랑 하는 개울물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잠시 고즈넉한 침묵에 빠져들었습니다. 각각의 상념에 젖어든 탓이었지요. 아사달은 자신의 고향인 하늘나라를 떠올렸고 할아버지는 이팝나무 만개한 고향 동리에서의 추억에 젖었습니다.
“모든 별들이 사랑에 빠진 것 같구나. 가만히 냄새를 맡아 봐라. 어때 어떤 향기가 느껴지지 않니?”
할아버지는 숫제 자신이 어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밭에 들어와 그 꽃 향기를 맡는 것처럼 연신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내 생각엔 모든 별들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 무릎 위에 이마를 누이구요.”
객관적으로는 별들이 사랑을 나누는 향기가 느껴진다는 할아버지의 말보다는 별들이 꿈을 꾼다는 아사달의 이야기가 더 설득적이겠지요. 그러나, 얼마 후면 약혼녀 순복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으로 할아버지의 뇌리 속에는 이미 아사달의 이야기는 들어오지 않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억의 강물은 이미 사십여 년 전으로 첨벙첨벙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그 강변에는 이팝나무 꽃 외에도 무수한 꽃들이 다투어 향키를 뿜어 냈습니다. 아카시아, 찔레, 창포, 자운영... “이상하구나. 정말 이상해. 하나도 바뀌어진 것 같지 않아 사람도 그렇고, 마을도 그렇고, 강물도 다 똑같아.”
할아버지는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이미 스물 몇 살의 추억 속으로 돌아간 할아버지에게 예전 풍경이 하나 둘 되살아나는 것은 사실 이상할 것이 없었지요. 왜, 그런 말이 있지요,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은 늙지 않는다구요.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구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말인 것 같다구요. 글쎄,
그렇던가요.
“봐라! 저거 좀봐! 저 녀석이 저렇게 자랐어. 나와 순복이가 함께 물을 줬던 그 아기 이팝나무야.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말 모르겠구나.”
할아버지는 은하수의 한 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은하수는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꽃가지처럼 할아버지의 눈 앞에서 펄럭였습니다. “잘 자란다는 것은 너무 아름다운 일이구나. 그래, 썩 잘 자랐어. 난 사실 저 녀석이 잘 자랄 줄 알았지. 그런데... 그런데...”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잠시 여기서 끊겼습니다. 은하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왜요? 무슨 일이 있나요?”
아사달이 물였지만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은하수 속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본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아사달은 비로소 은하수 속에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절실히 그리워하는 풍경들이 새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여태까지 할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은하수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스무살적 꿈을 보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할아버지의 모습은 조금 달랐습니다. 뭔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무슨 불길한 조짐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아사달은 곧바로 할아버지가 느끼는 불안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복이, 할아버지의 옛사랑 순복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애가 없어. 꽃나무는 무성하게 자랐는데 가지 사이를 아무리 살펴봐도 그 애가 보이지 않구나. 그래, 바로 저 자리야. 그 애가 늘 나를 기다리던 자리지. 아래로부터 세번째 나뭇가지야. 그 앤 저 지리에 올라 나를 기다렸단다. 그런데... 그런데...”
할아버지의 불행은 지극히 현실적 일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복이로 치자면 라죽동에서는 그 자태가 제일 고운 처자였습니다. 비록, 공부는 전혀 하지 못했지만 그 하는 행실만큼은 어떤 공부한 신식 처자보다도 더 향기로웠지요. 여름날 새벽, 깊은 산속에서 피어난 보랏빛의 더덕꽃, 송이를 본 적이 있는지요? 그렇습니다. 순복이가 지닌 아름다움이 꼭 그러했지요. 한없이 순박하고 맑고 투명했습니다. 그러니 만큼, 근동의 사람 보는 눈이 조금이라도 있는 총각이라면 한번쯤은 다 자신의 눈 안에 순복이 의 모습을 새겨 보지 않은 이가 없었답니다. 순복이가 지나가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그냥 가슴만 쿵쿵 울려 대던 치들도 부지기수였지요. 상머슴 살던 돌쇠도, 면사무소에 나가던 갑수도, 용정에서 독립군 살다왔다는 노총각 진범이도, 하다 못해 어쩌다 한번 라죽동에 들른 적이 있는 이름모를 어떤 옹기쟁이나 피리쟁이들도 순복이의 모습을 한 번 눈 안에 담고서는 그냥 설레이는 가슴을 어쩌지 못했답니다. 그 모두가 다 아름답고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옹기쟁이 총각 하나의 이야기는 여기 좀 새겨 둘 필요가 있겠군요.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옹기쟁이 총각은 저 아래 반도의 남쪽 땅에서 이곳 평안도의 맨 윗 땅끝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때 유명한 가마터가 있는 곳이라면 만녘 땅에서는 강진이나 고창이었으니까 바로 그 어디쯤의 총각이라 해 두면 되겠지요.
남남북녀라고 했던가요. 옛말의 진실성은 이 남녀 총각의 허우대에서도 썩 어울리게 드러났습니다. 이목구비가 수려해 한눈에 범상한 옹기쟁이로 보이지 않았지요. 어떻게 해서 이 총각이 지게에 옹기 한 짐을 지고 라죽동에까지 흘러 들어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답니다. 어쩌면 그 또한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구요. 그 총각은 순복이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지요. 그러나 그는 사정이 의외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답니다. 순복이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 애인이라는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웬걸, 천민인 옹기쟁이로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동경 유학생이 바로 그 애인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동경 유학생이 바로 지금 아사달 곁에 있는 할아버지이지요.
이 순박한 옹기쟁이는 다시는 남쪽의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대로 라죽동 언저리에 주저앉았지요. 압록강이 보이는 한 언덕받이에 토굴을 파고 거기서 옹기를 구우며 새 삶을 펼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삶은 지극히 쓸쓸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이 옹기쟁이 총각의 내면에 든 생각과 고통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한 옹기쟁이 총각이 압록강변에 새 옹기들이 도무지 다른 옹기들과는 형상이 틀리다는 것이 사람들이 알 수 있었던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그가 만들어 낸 옹기들은, 예를 들어 물함지박이라면 바닥에 받침이 괴어 있었는데, 한쪽 받침은 여자의 고무신 형상으로, 또 한쪽은 남자의 짚세기 형상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떡시루의 경우 두 귀가 크고 잘생겼는데 그 귀도 한쪽은 여가, 또 한쪽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질화로에 새겨진 무늬들도 남달랐지요. 그가 만든 질화로의 표면에는 예외없이 분곽이나 유병, 경대와 같은 여자들의 세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양산이나 꽃가지 같은 것도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을 쓸 사람의 형상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점에 대해서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재미있는, 괴짜 옹기쟁이 하나가 자신들의 삶 곁에 자리를 편 것쯤으로나 생각했지요.
사실 이 옹기쟁이 총각의 괴짜 옹기들은 그 곳 아낙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습니다. 길쌈과 들일, 부엌일을 다 해내야 하는 아낙들에게 이 옹기쟁이의 유별난 작품들이 하루의 노동의 피로를 닦아 주는 청량제 노릇을 한 것이지요. 가끔 가다 우물가 같은 것에서는 아낙들의 농담이 무슨 꽃다발처럼 피어났습니다. “워따, 이 머스마 짚세기 한번 잘생겼다.”“밤마슬 도는 데는 이 짚세기가 제일이라. 소리가 나나, 흔적이 남나.”뭐 이런 정도였겠는데 이 옹기에 새겨진 여자 형상의 모든 조각들이 사실 이 옹기쟁이 총각의 눈사진기에 찍힌 순복이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은 이 총각 외에 알 도리가 전혀 없었지요.
어느날, 물을 길어 가던 한 동내 아낙이 그만 실수로 넘어져 물함지박을 깨들리게 되었는데 여자 고무신 형상의 받침이 붙었던 맨 바닥에 순복이란 이름이 한글로 뚜렷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문은 동내 아낙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 갔지요. 어떤 아낙은 심심풀이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함지박의 밑받침을 망치로 살살 두들겨 떼내어 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도 어김없이 순복이란 두 이름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이 옹기쟁이 총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작, 순복이가 이 소문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거니와 어쨌든 동애 아작들은 이 옹기쟁이 총각의 순애보에 대해서 모두들 안쓰러운 생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순복인 참 좋겠다. 말이야 바른 말로 그런 총각은 다시 찾기 힘들다. 나 같으면 곧장 따라갈 거다. 사랑에 무슨 학사모가 필요하고 땅 문서가 필요하나. 그냥 만주벌판 같은 임의 앞가슴이 제일이지. 어디 내 말이 한 구석이라도 틀렸나?”
한 아낙의 이런 말에 동내 처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은하수는 가물거리며 아사달과 할아버지의 눈앞을 흘러내렸습니다. 고향이 가까워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할아버지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가장 두렵고도 확실한 것은 언제나 현실 그 자체의 모습인지도 모르지요.
멀리서 반짝이는 몇 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빛들은 분명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불빛들이 바로 자신의 고향 마을의 불빛이라는 것을 할아버지는 덜리는 가슴속에서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향이야. 이젠 다 왔어. 사십삼 년만이로구나. 그런데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옛날과 똑같아. 정말 똑같아.”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마치 도착지에 다다른 항공기처럼 하늘을 두어 바퀴 선회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마치 꽃등처럼 타오르는 한 신비한 꽃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꽃나무는 바로 자신과 자신의 옛 약혼녀가 함께 사랑을 나누던 이팝나무였습니다. 그 나무의 바로 곁에 그보다 조금 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역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얼른 보아도 그 모습은 아기 이팝나무의 모습 그것이었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 모두 아름다운 꽃등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나무 곁으로 다가갔을 때 해일처럼 훅 꽃 향기가 달겨 들었습니다. 아직 꽃이 피려면 너댓 달은 더 지나야 할 터였으나 할아버지에게는 이미 그러한 생각들은 자리할 틈이 없었습니다.
땅에 내린 할아버지는 강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곧장 이팝나무 밑둥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 때의 몸짓처럼 할아버지의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첫번째 가지가 할아버지의 손에 잡혔습니다. 그 감촉 또한 할아버지가 한창 청년이었을 적 느꼈던 그 감촉 그대로였습니다. 두번째 가지가 할아버지의 손에 잡혔습니다. 할아버지의 팔 근육이 가볍게 떨렸습니다. 아니 할아버지의 가슴속 풍경이 떨렸다고 보아 옳을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세번째 가지가 할아버지의 손에 잡혔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늘 그랬듯이 자신의 옛 사랑이 앉았던 나뭇가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순간, 바로 그 순간의 희열이라니요!
나뭇가지에는 순복이 자신의 옛 약혼녀가 스무 살 바로 그때의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순복이 처자 또한 그러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 함께 끌어안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모습 또한 사십여 년 전 그때의 모습으로 이미 돌아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데 아울린 모습을 이팝나무 만개한 꽃송이 들어가려 주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아사달은 혼자 서울로 돌아오는 하늘 길을 밟고 있었습니다. 일사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오다 지뢰를 밟아 죽은 순복이 처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 옛 애인을 만날 수 있었는지 그것은 아사달만이 이는 비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