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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국제불교회관 원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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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연진 1993년 06월 136호
안국동은 서울의 가장 시끌한 도심을 이웃으로 하면서도 여태껏 한가로움을 잘 지니고 있다. 번잡하지 않은 골목길에 나란히 이어지는 고가들의 운치도 좋다. 곱게 빛 바랜 나무 대문, 쇠로 둥글게 만들어진 문고리의 둔탁함, 대문위로 납작하게 드리운 검은 빛 기와 그리고 뱅 돌려져 네모 낳게 된 작은 마당이 고즈넉하게 보이기도 한다. 곱게 나이 든 모습이랄까.
연동국제불교회관은 안국동 고가들이 운집한 곳에 있다. 개량된 옛날 양옥집인데 단란하고 깨끗해 보이는 목재 탓인지 한옥집의 느낌을 준다. 문 앞에는 이곳을 알려기 위한 연등그림이 걸려 있다.
사실 연등은 등으로서 불을 밝힐 때라야 아름답다. 그냥 대낮에 보면 조금 튀는 분홍 꽃잎이 영 부자연스러운게 그저 그렇다. 그러나 부처님을 향한 서원을 안고 어둠 속에서 붉게 불을 밝히면 그때의 아름다움은 장관이라 할 만하다. 삶의 힘겨운 질곡으로부터 연꽃 피어나듯 돋아나는 믿음과 서원이 초파일을 맞이하여 연등으로 타오르게 되는 것이리라.
철쭉꽃이 만발한 자그마한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신 분은 외국인 비구니 스님이셨다. 스님은 활짝 웃는 얼굴로 합장 인사를 먼저 하며 또렷한 한국말로 원명스님을 찾아오셨냐고 물었다. 곧 우리는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책장, 벽 그리고 곳곳에 여러 가지 정보를 회원들에게 알리는 메모지가 붙여 있다. 물론 모두 영어로 쓰여진 알림 표시이다. 책들도 거의 외국서적이다.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신문 nvewsletter”와 관계 홍보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한눈에 이곳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연등국제불교회관은 오늘날 국제화시대에 부응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불교를 알리는 불교계의 의미 있는 소임을 맡고 있는 곳이다. 사실 요즘은 외국인의 방문도 낯설지 않고 외국으로 가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야흐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지구촌이며 세계는 하나인 것이다. 앞으로도 외국인 관광객은 늘어날 것이다.
우리의 전통과 가장 밀접한 우리 불교는 그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데, 바로 그 실천이 이곳의 목적이라 한다.

원명스님은 나라안에서보다 나라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포교 활동을 하시느라 바쁜 탓이다. 이곳의 일도 많을 텐데 외국에서 오래 계셨으니 요즘 스님의 생활이 얼마나 바쁘실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오늘도 약속을 취소하고 우리를 만나주셨던 터라 여기저기 스님을 찾는 소리에 스님은 경황없이 움직이다가 ‘아이고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하며 끊어진 말끝을 찾는다. 십여 년의 선방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다소 번잡스러울 이 일에 이미 많이 적응이 되었겠지만 하얀 티를 법복 안에 받쳐 입고 투명한 얼굴에 싱그러울 만큼 활짝 웃음을 띠는 모습이 아직도 도시보다는 산사의 정기가 더 어울리지 하는 생각이다.
“참선하고자해서 출가했으니 처음 십여 년 동안은 선방만 다녔지요. 그런데 어느 날 화두는 안 들리고 망상만 드는데 그 망상이 재미있어요. 난데없이 학교 다닐 때 배우던 영어가 생각이 나는데 , 그것이 다 외워질 정도로 또렷하더라구. 그것도 하루만이 아니고 계속해서 머리 속을 빙빙 돌더군요. 해제가 가까와 오길래 해제하면 서울에 가서 딱 석달 반 영어 공부를 하고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석 달 공부하면 웬만큼 할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거든요. 무슨 목적이나 의도도 없이 하도 생각이 떠나지 않길래 그냥 공부한 것 이예요.”
재미있는 일이다. 느닷없는 망상으로 오늘의 일을 하시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투리로 말씀을 놓는 듯, 서두르는 듯 빨리 이어지는 말투 때문인지 더 웃음이 나고 그 상황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스님도 그때의 일이 다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신지 웃음을 터뜨리신다.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부처님의 의도된 계획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석 달 동안 스님은 영어 실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참선으로 식이 맑아 있었던 까닭이리라. 스님은 기왕에 배운 영어를 사용하고 싶어지기도 했고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외국어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학원에 한국어를 배우러 온 스리랑카 스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 스님을 통해서 간 것은 아니지만 그 만남으로 스리랑카에 갈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곳에 가서 얼마 머물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남방불교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도 없어졌지요. 나중에는 서양사에 관심이 생겨 영국으로 가서 몇 년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 몇 년 동안 경험한 세계는 제게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올 때 마음이 그렇게 착잡할 수가 없었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선방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체험한 세계의 변화에 부응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어요. 결국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일을 하기로 결정했지요.”
스님을 기장 자극시킨 것은 세계에서 한국 불교의 위상이 거의 세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대개의 나라들은 저마다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반면우리 불교의 홍보를 위한 노력은 전무하였단다. 그래서 스님은 영문잡지를 만들어 한국 불교를 포교하는 일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만드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 줄은 몰랐었지. 사무실도 없고 잡지 만들 여유도 없어 고생하다가 처음 전세를 얻어 들어온 곳이 지금의 이곳입니다.”
처음엔 완전히 빈 손으로 시작했었다며 빙긋이 방을 둘러보신다.

이곳의 일은 다양하다. 참선을 알리고 실천하는 반, 영어로 경전 공부하는 반, 그것도 쉬운 내용을 하는 반, 어려운 경전 공부 반 등이 있다. 그 가운데에 번역 일은 국내에서 최고라 할 만큼 뛰어나다고 자부하신다. 번역뿐 아니라 선사스님들의 법어록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재원들의 능력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한다. 심산유곡을 마다 않고 찾아드는 이들만의 가슴을 보듬어 주던 불교가 이제 멀리서라도 마음을 내기만 하면 모든 중생들을 향해 열린 가슴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하고 많은 나라 가운데에 왜 하필 러시아 포교를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자 스님은 고개를 저으신다. 모든 것은 인연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의도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인연이 그렇게 흘렀지. 올림픽 때 외국인 대상으로 불교포교를 하다가 러시아사람과 알게 되었고 나중에 그 사람이 오라고 초청해서 89년도에 러시아를 처음으로 갔지요. 물론 별다른 생각없이 갔었죠. 그런데 타시켄에 살고 있는 20만이나 되는 한인 교포들과의 인연으로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곳을 찾게 되었지요.”
그들은 종교에 대한 관심 이전에 조국에서 온 스님이라 좋아했고 스님을 통해 조국을 느끼고자 함이 더 컸다고 한다. 요즘 스님은 현지인들 포교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온 그들은 종교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이 살아왔단다. 그래서 지나치게 현세적인 우리의 불교와는 달리 철학적이고 숭고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 한다.
“마치 누렇게 다 익은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과 같아요. 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이미 숙성해 있습니다. 끌어 주기만 하면 그들은 이끄는 대로 믿고 실천해 나갑니다. 저는 그들이 좋아요. 순수하고 자연과 조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이미 러시아에는 개방의 물결을 타고 세계 모든 종교인들이 포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단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부처님 품안으로 오고자하는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깝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일반 민중의 스승인 스님들은 의무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이야 합니다. 세상에 스님들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요.”
요즘 스님들의 안일한 태도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신다. 스님은 많아도 일할 사람이 없으니 하면서 허전한 웃음을 띤다. 그 넓은 땅의 여기저기 일곱 군데 돌아다니면서 법문한다는 것이 보통 버거운 일이 아닐 것이다. 종단 차원의 뒷받침이 요망되는 일이지 싶은 생각도 든다. 부처님 가르침에 ‘우리’와 ‘그들’이 다를 리가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우리의 불교를 알리는 의미있는 일이니 적극 나설 일이 아닐까.
그러나 스님은 희망을 접어 놓으신 듯 “내 인연으로 힘 닿는 만큼만 해야지 어쩔 수가 없어요. 요즘 스님들은 다른 일에 워낙 바빠서...”하며 허허 웃으신다.
러시안에서 법문하실 때 스님은 여러 가지를 전해 준다고 한다. 참선도 화두선만이 아닌 관법도 초심자에게 가르쳐 준단다.
“우리의 것만을 전하기보다는 부처님 가르침의 원대함을 전하는 데 관심을 둡니다. 더 이상 불교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 한국불교의 선불교적 특성은 대단히 우월하고 정통성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불교라면서 정작 참선은 스님들의 전유물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일반화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 문제이지요. 그러면서 다른 것을 지나치게 배격하니 초심자들, 불자들은 혼돈된 가치관을 갖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불교의 과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현대를 알이야 오늘을 사는 대중을 이끌 스승이 되지요. 인재 양성과 오늘의 문제를 직시할 때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든실한 불교로 흔들림 없이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며칠 있으면 러시아에서 스님 상좌가 된 현지인 스님 세 분이 오실 예정이란다. 신나는 일이다. 그들이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한국에 와서 강원 교육을 받게 될 것이란다. 영 먼 이국이라 생각되던 러시아에 우리의 불교사 싹을 피워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나, 둘 모인 작은 불씨들이 어우러지는 정겨움이 느껴지는 듯해 가슴이 부푼다.
이제는 변화와 전통 사이에 내재된 갈등의 고리를 풀어 내야 할 때인 듯 싶다. 스님은 극단적인 사고를 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함을 강조하신다. 본디의 근본 마음 자리를 언제나 되집어 보면서 나아가면 된다는 말씀이다.
“밥상 다리가 부러져라 차려 놓고도 찬이 없어서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의 인사말을 하는 마음씨가 저는 좋아요. 문명의 혜택 없이도 자연과 함께 어울어질 줄 아는 사람들이 소중합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하는 관계 속에서 그러한 순수함을 되찾을 수도 있고 되 찾아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변화를 인정하면서 나아가는 가운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한다.

산의 녹음이 짙어간다. 곧 발 아래 드리운 그늘은 지친 걸음으로 찾아들 우리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찬 바람에 몸을 털고 빈 몸에 되면 햇살 아래 휑하게 드러날 자리지만. 자연은 작은 바람에도 살랑이며 부산을 떤다. 정지하는 순간이 없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가슴 벅찬 새로움을 가슴에 안긴다. 신비로운 모습이다. 바람에 몸을 나부끼면서도 뿌리를 더욱 깊이 내려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할 수 있는 그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쩌면 전통과 변화사이의 간극은 심각한 거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싶다. 아니 그것은 서로 다른 방향 아닌 한곳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닿고 능력이 되면 외국인을 위한 국제 선원과 선의 보편화를 이를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하면서 스님은 원력이라 이름하지는 않으신다. 작은 바람이라도 인연이 되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만을 내 보이신다. 얼마뒤 한참여름의 더위로 숨이 차오를때 스님은 추운 지대에서 온 세 분의 상좌들과의 상봉으로 더욱 바쁘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