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홀로―정영상 형을 생각하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전우익 1993년 06월 136호
형兄.
며칠 전 한겨레신문에 이런 시가 났더군.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라는 시인데 작년 겨울호 창비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최영미라는 분의 시니까 형은 창비에 실린 이 시를 보았겠지. 난 이 시를 신문에서 먼저 본 다음 「창비」에서도 보았는데, 시가 괜찮거니와 형에 대한 내 심정을 잘 말해 주는 듯해서 인용했어.
농사꾼이 땅에 씨를 뿌리듯 친구란 서로의 마음속에 친구를 안고 사는 것 같아. 정성스럽게 묻으면 오래 가고 흐지부지 묻으면 금방 사라져 버리겠지.
초상 땐 형의 몸은 있었으나 정이 없더니 몸이 떠나간 지금은 정이 되살아나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형이 결혼하기 전의 살벌한 시절이었어. 안동에서 어쩌다 만나면 술도 마셨고 큰 책상과 그림 놓여 있는 형의 하숙방에서 같이 자기도 했지. 해직당한 뒤에는 안동과 영주, 우리 집이나 단양 전교조 사무실, 또는 형의 집에서 만나 함께 자면서 많은 이야길 나누였고, 광주와 변산반도로 함께 여행도 했지.
형이 그 누구 이야길 쓰면서 ‘산과 같은 사람’이란 표현이 말도 안 된다고 나무랐더니, 몹시 속상해 한 다음 우리는 더욱 친해졌고, 과찬過贊이 비례非禮라는 걸 서로 확인도 했지.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의 애증愛憎은 좋지만 무자비하지 말자고 다짐도 했고 원만하고 싶어하진 않았지만 우상화, 절대화가 편협한 인간을 만드는 것 같아 조심하자면서도 안팎이 같게 시는 건 태평성대 때 할 일이고 속으로 미워도 밖으로 다정한 척 살아 보자고 했는데, 갑자기 형은 가버렸어.
난 형의 죽음을 슬퍼하진 않아 제법 좋은 시 몇 수 남겼고 다정다감한 나머지 수많은 친구들과 사랑 싸움도 무척이나 했고, 형이 떠났다는 소문 듣고 전국에서 모여든 친구들이 애석한 마음에서 뜨거운 눈물 흘려 주였고 자다가 자는 듯이 갔는데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 내가 눈물이 나는 건 몽길이나 열림이 때문도 아니야. 그들은 그럭 저럭 크겠지. 형의 죽음이 몽길 엄마한텐 무슨 종신형終身刑 같은 선고였기 때문일세. 물론 사람의 일이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
농사를 지어 보니 밭 갈아 씨 뿌리는 일 정도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싹트고 크고 영그는 일은 땅기운, 햇빛, 비바람의 조화로 이루어집디다. 농산물이란 사람의 노력이 좀 들어간 자연의 산물인데 철없는 인간들이 자신의 피땀만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해.
우리의 생명도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 성 싶습니다. 천지 조화의 힘이 인간의 노력에 비할 수 없이 큰 것 같아요. 삶과 죽음으로 인간은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삶만 보교(그것도 겉 활기로) 죽음이란 또 하나의 조화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이건 다 쓸데없는 소리고 형의 죽음이 몽길 엄마한텐 청천벽력인데 그걸 감당해 가는 데 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그가 다시 일어나기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볼 뿐이네. 형이 떠난지 보름이 지난 뒤 남편의 친구라고 나한테 애절한 편지가 왔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다시 보름뒤에 편지가 왔는데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는 기운이 엿보이네. 오늘(5월 23일) 전화를 했더니 형의 무덤을 찾아가서 통화를 하지 못했다 하네.
형.
홀머니의 심정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연암 박지원 선생의 함양 박씨전을 읽고 어림짐작을 할 뿐입니다. 거기엔 홀어머니의 삶을 지탱해 준 굽이 다 닮고 글자도 다 문드러진 동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분이 비록 천하의 문장가라 할지 라도 당자들의 외로움을 다 그리지는 못 했을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결과는 형이 유작시로 남긴 “목욕탕 엘 가면”을 쓰면서 인간의 죄를 힘겹게 지고 저승으로 간 것 같습니다.
이승에서 읽는 형의 시를 저승에서 들어 보소.

목욕탕엘 가면 바닥에 뒹구는 일회용 면도기들이 언젠가 두고 보자며 나를 벼르는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흩어진 칫솔, 비누, 때 타올 등 제 목숨껏 살지도 못하고 쓰레기 더미가 된 일회용들이 으드득 이를 갈며 한결같이 큰 재앙이 되어 다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면도를 하는 동안에도, 때를 미는 동안에도 계속 틀어 놓은 수도 꼭지에서는 보람도 없이 억울하게 버려지는 물들이.

“인간들아.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며 씨불씨불 흘러가는 물들이 바닥에 질펀한 罪를 씻어 내리며 언젠가, 언젠가 두고 보자! 그렇게 벼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꼴들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지 고쳐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형.
지난5월 3일 조영옥 선생님과 함께 형 댁에 다녀왔습니다. 학교로 가서 몽길 엄마 찾아보고 저녁은 형이 거쳐하던 방에서 모두 함께 먹었습니다. 조 선생님은 연필과 몽길의 노리개 사 가고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편지 영인한 엽서 사다드렸는데, 15일에 온 편지를 보니, 형이 미리 보라고 형 사진 아래 모셔 두었다더군요. 다 읽어 보았는지 묻고싶소.
형이 기다리던 저의 책이 나왔습니다. 책 제목도 길고 뜻도 내 생각과는 다릅니다. 형이 가는걸 보고 다시 확인한건데 사람이란 결국은 혼자 살고 혼자 죽는구나, 살아있는 그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걸 절감했습니다. 잘산다는 건 옳게 사는 거지 많은 데 따라가며 사는 건 아니지요. 혼자 외롭게라도 살 각오가 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건 가능하지만. 다 떠나도 전교조야 형과 같은 사람이 모여야 일이 되지 숫자만 보고 기어드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모인들 그게 무슨 맥을 추겠어요.
표준말(?)이란 결로 글의 흐름을 망쳐 버렸습니다. 표준말 사투리란 게 따지고 보면 대처와 촌놈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데서 나온 거 아닙니까. 차나 컴퓨터 같은 거야 읍놈들이 잘 알지만 농삿일, 나무 풀은 촌놈이 더 잘 이는데, 어째서 도시말이 다 표준말입니까. 한문을 진서라 하고 한글을 언문이라 했던 줏대없는 어용학자들과 그 잔당들이 백성들이 쓰는 말을 상말이라고 깔보았는데, 그 영향 지금까지 이어져 제법 깨우쳤다는 사람들도 사투리 쓰는 사람들을 얕잡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넣었는지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아마도 글이 시시껍절 하니까 얼굴까지 끼워야 될동 말동해서 그런 모양 같으나 그 얼굴이 또 얼마나 꼴불견입니까. 이삼십 년 전에는 책에 글 쓴 사람사진 없었어요. 그땐 책 읽으면서 글 쓴 사람이 어떻게 생겼을까 이모저모 그리면서 책을 읽은 다음 그 사람 만나보면 맞는 데도 있고 틀린 데도 있어서 재미있었는데, 그 재미도 없어졌어요. 결국 생각하기 싫어하고 얕은 호기심만 충족시키고 있는 게 오늘의 출판문화 같은데, 사진술의 발전이고 독자 대중에 대한 서비스라고 당당하게 맞서고 있어요. 글이 사라지고 그림 같지 못한 그림이 판을 칠 세상이 옥죄어 오고 있습니다.
그저께 저녁에 친구 한 분과 친구의 선배 한 분과 셋이서 이런 저런 이야길 했습니다. 새로 만난 분은 사대가 한집에 사는데 동생이 암에 걸려 오늘 내일 한답니다.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토하듯 내뱉는 말이 “찢어지고 구멍난 깃발은 풍향도 타지 못해 나부끼지도 못하고 깃봉에 돌고 감기기만 한다. 내가 죽어서 만일에 환생을 한다면 결단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가장 구슬피 우는 짐승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합니다. 찡한 말이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형은 저승으로 나는 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