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短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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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06월 136호
선원의 해제철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방선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잠시도 좌복 위를 떠나지 않던 수좌 스님도, 지대방에 딩구는 것이 즐거움인 선객도 해제한 선벙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날 동안 운수의 행각을 마치고 저녁 무렵 찾아든 선방은 추녀 밑 노을만 황홀할 뿐 숨죽인 고요만이 흐른다. 그 고요속을 사뿐한 걸음으로 포행을 하다보면 어디선지 “딱 딱’ 하는 나무 부딪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나는 진원지를 찾아 살며시 선방의 문을 열어 보면 어김없이 혼자 남은 노승이 척량골 곧추 세우고 좌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노승의 손에는 으레 탁구공 크기만한 윤기 나는 구슬 다발이 들려 있으니 , 이것이 바로 단주이다. 단주는 이처럼 선원의 수좌스님들이 화두를 참구할 때 돌리며 사용하는 완구품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긴 호흡의 한순간 한순간마다 단주를 돌릴 때 알들이 부딪혀서 나는 것이다. 출가 사문이라면 누구나 처음 출가했을 때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도는 선원의 적막아 좋아서 선방의 뒷뜰을 배회하다가 노스님의 손에 들려 있는 이 단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주는 주로 향나무나 먹사쿠라나무처럼 재질이 단단하고 향기로운 나무로 만든다. 보통 열 개쯤의 구슬을 철사에 끼워 둥그렇게 만들어 사용한다. 예불할 때나 부처님전에 절을 올릴 때 사용하는 염주念珠는 백팔 개지만 그 절반인 쉰네 개의 작은 알로도 만들어지는데, 이것의 재료는 율무나 보리수 열매이다. 흔히 염주가 염불이나 절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면 이 단주는 참선할 때 주로 사용한다.
선 수행을 히는 이들에겐 누구나 이 단주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이 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날 한바탕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시간에 정진 자리를 지키며 수마와 다투느라 정신을 놓고 있으면, 선원 조실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그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단주 세례를 받는 기억 말이다. 눈에 불이 나게 한대 얻어맞으면, 수마는 깨끗이 달아나고 새로운 마음으로 화두길을 찾아가게 된다. 어쩌면 수선 납자는 장군 죽비보다 단주세례를 받을 때 스승과 상좌사이의 정겨움을 느낄 것이다.
칠십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선방에는 이 단주가 무척 많았으나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편리하고 간편한 것만 쫓는 요즈음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수행의 길에 마음이 흔들릴 때나 길이 막힌 듯 답답할 때면 이 단주의 경책이 무척 그리워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