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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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2년 07월 5호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거나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흔히 있다.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일은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으며, 저울로 길이를 잰다든지 자로 무게를 다는 일 따위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밥은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길이는 자로 무게는 저울로 재는 것이 어울리며 가능한 일인 것이다.
마음의 깊이나 무게 빛깔 따위는 어떻게 나타내야 어울리고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자로 잴 수도 저울로 달 수도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컨대 그것은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주고 받는 것이 가능하며 어울릴 것 같다.
종교,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내면 즉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진리를 외형적이고 물량적인 방법이나 수치로 표현하려는 것은 어울리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여러 종교단체에서는 각 종교의 힘 진리 또는 그들의 발전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나타내는 풍조가 심해졌으며, 최근에는 사회악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요란하고 소비적인 집회나 그 집회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 또는 사치스럽고 비대한 종교건축 따위로 힘을 과시하기도 하며, 종교 행사를 찌프리게 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연민해 하셨고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으며, 부처님은 바루하나 가사 한벌에 만족하셨으며 다섯 비구를 향하여 첫 설법을 시작치 않으셨던가, 베풀고 참으며 노력하는 것이 보살의 길이며, 고요하고 청빈하며 겸손한 것이 베네딕트의 생활이 아니었던가. 어두운 카터고움에서도 진리의 말씀은 퍼져 나갔고, 바람부는 길 위에서도 법음은 전해졌던 것이다.
조용하고 경건한 집회,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소박하고 주위에 어울리는 건물, 많지는 않지만 깊은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 이런 것들이 본래 종교에는 어울리는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낮지만 신념에 찬 목소리, 조용하나 확실한 행동,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종교를 우리는 기대한다.
그리하여 종교는 이 땅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며, 흐린 물을 맑게 하는 구슬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