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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세월을 되찾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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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 서동석 1993년 01월 131호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를 겪은 대통령 선거가 지나갔다. 마치 큰 병을 앓고 난 뒤처럼 선거를 치룬 뒤의 정세는 예상밖으로 잠잠하다. 어쩌면 이렇듯 잠잠한 분위기가 있을수 있을까 할 만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선거 전의 열기와 대비해 보면 완전히 딴판이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사람들은 이른바 \'공약\' 을 내걸었다. 그 공약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모두 외울 수 없지만, 민중후보로 등록한 백기완씨를 제외한 다른 후보의 정책 공약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정책, 곧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인정,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 미묘한 사안에서만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한편 정주영 후보는 자신이 집권하면 공산당을 합법화하겠다고도 했다.
어쨌거나 여러 후보 가운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민자당의 김영삼 씨가 제14대 대통령으로 뽑혔다. \'안정 속의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 힘입어 자신이 당선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래서 작지만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여 새시대를 이끌어 가겠다고 장담했다.
대체로 후보 때 내건 공약이 막상 집권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자취를 감추는 것이 우리네 정치 풍토였다. 차기 정부가 또 그 전철을 밟을지 어떨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김영삼씨의 공약 가운데는 \'대사면\' 도 있었다. 말하자면 감옥에 갇혀 있는 구속자의 대폭 석방을 뜻한다. 물론 구속자를 석방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응징받아 마땅한 흉악범이나 반윤리적 사범은 포함되지 않는 범위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양심수\' 는 포함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몇 가지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교통사고율이 그렇고, 사십대 성인의 암 발생율이 그렇다. 또 세계 최장기 양심수가 이 땅에 존재한다.
무려 사십이년째 춥고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분이 있다. 이제 또 한해를 넘겼으니 그의 기록은 경신됐다.
말이 사십삼 년이지 한 인간의 삶이 고작 칠 팔십인 것에 비하면 참으로 길고 혹독한 세월이다. 말 그대로 ‘빼앗긴 세월’이다. 어찌 사람을 이토록 오래 가둬 둘 수 있올까. 이승만 정권에서 감옥을 간 이래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오공화국, 육공화국을 거쳐 곧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는 이 순간까지 고스란히 감옥에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저 머나먼 아프리카의 흑인 지도자 만델라가 이십칠 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자 이 땅의 일간지는 국제 소식란에 머릿기사로 다루어 주었다. 그러나 바로 우리 이웃에 사십년 넘게 감옥에 있는 분에 대한 기사는 아직 한 줄도 다루어 주지 않고 있다.
이 분들의 죄는·무엇인가 조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발톱에서 벗어났으나 외세에 의해 분단된 상황에 빠지자 새 조국의 비극을 구하고자 몸을 던진 결사의 행동과 실천이 죄의 전부이다. 조국을 사랑하고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좋아한 것이 국가보안에 중대한 위해를 끼쳤다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사십여 년 동안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칠십년대 초에는 감옥 안에서 강제 전향 사업이 벌어졌다. 이 전향 공작은 참혹하여 세계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사자들이 하는 증언을 들어 보면 그 고문이 너무도 잔인하여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상적인 지조를 지킨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이 분들에게는 \'비전향 장기수\' 라는 명칭이 붙어졌다.
일반 사범의 경우에는 무기형의 징역올 받아도 대개 이십여 년을 넘기지 않고 석방된다. 행형 급수에 따라서 누진처우제도가 있어서 감행을 받아 석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범에게는 이 제도가 적용되질 않아서 그저 그냥 감옥 생활을 감수해야만 한다.
불교인권위원회에서는 칠 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은 사람을 장기수로 분류하고 있다. 이번에 91년에 이어 92년에도‘양심수에게 경전 보내기 ’ 사업을 하면서 장기수를 선별해 보니 89명이 이에 해당됐다. 적게는 칠 년부터 많게는 사십삼 년을 감옥에 있는 분에게 경전 두 권씩과 영치금 일만 원씩을 보내드렸다. 하지만 빼앗긴 세월에 어디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비전향 장기수 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난 88년 겨울과 89년 봄에 석방되었다.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몇 분이 석방되었으나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대체되어 자유롭지만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석방된 몇 분이 현재 구로동에 ‘만남의 집’ 으로 이름지어진 작은 전세방을
얻어 살고 있다. 이종 선생, 황용갑 선생, 김영만 선생 등 네 분이다. 이 분들 가운데 이종 선생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1911년 충북영동에서 출생. 10대에 서울 상경 후 고학당에서 민족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이 싹틈. 항일 농촌계몽운동에 종사함. 해방 뒤 영동군당 총무로 활약하던 중 47년 청주와 서울 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함. 50년 월북해 중앙당학교에 입학. 52년 치공작원으로 남하했다가 58년 체포되어 10년 형을 언도받음. 69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으나 75년9월 다시 보안감호소에 구금됨. 88년에 출소함.
여든세 살의 고령인 이종 선생은 실어증과 중풍, 고혈압 때문에 엉망이 된
몸으로 출소한 뒤 현재는 다소 건강이 회복되어서, 시조를 틈틈이 지으시는
한편 지난 세월의 흔적을 회고하고 있다 .

호연이라는 제목의 시조 한 수는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어떻게 담금질하였던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잔정 속된 원이 얽히고 맺힌 매듭
푸는 게 얽어 매는 올올이 난마亂麻더니
호연히 그 밖에 서니 천만 코가 풀린다.

현재 감옥에 있는 양심수가 정확하게 몇 명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새로 구속된 사람도 있고 만기를 다 채워서 석방된 사람도 있어서 정확한 숫자가 아니지만 불교인권위에 소장된 자료에 따르면 팔백 명이 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남부 지역 조선노동당’ 사건으로 인해 대량 구속이 잇따랐다. 이 사건의 전모에 대한 정보는 전적으로 국가안전 기획부가 발표한 내용에만 의존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 서열 22위에 있다는 이선실이라는 여자가 남파되어 공작하고 다시 월북했다는 사실, 그리고 남한에 있는 동안 조직을 결성하고 사회 각계에 있는 사람을 포섭했다는 사실, 공작금으로 누구에게 얼마씩 주었다는 사실들이 안기부의 발표에 따랐고, 이 발표를 전해 받는 일반인들은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갖고 있을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한 것이다. 그사이 줄줄이 굴비 두름 꿰듯 구속자가 늘어났다

감옥에 있는 일반 사범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는 날이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을 비롯하여 일 년 가운데 몇 안 되는 날이다. 이 날에는 특별 가석방이 있기에 그렇다.
김영삼 씨가 공약한 대사면이 얼마만한 폭으로 이루어질지 한 가닥 기대를
걸어 보지만 왠지 썩 마음이 쏠리지 않는다. 그가 삼당 통합 때 사면 운운했으나 지켜지지 않은 전과가 있기 때문일까. 혹은 국가보안법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반민주 악법에 대한 그의 보수적인 태도 때문일까.
무엇보다 양심수의 수가 특별사면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권력의 본질로부터 발생하는 반민중적 억압은 끝없이 양심수
를 양산하게 된다.
제발 이 땅에서 빼앗긴 세월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없는 참 민주의 새 세상
이 오기만을 빌고 빈다.

서동석 씨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때부터 구로동에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로공단 노동자로 현실의 삶을 체험하였다. 85년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불교 인권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역사에 눈을 뜨고 민중운동에 뛰어들어 83년과 86년. 89년 세차례의 옥고를 치렀고, 89년 5월 민중 불교 운동 연합의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옥중서간집「몽키 스패너를 잡으면 세상살이가 더욱 빛나 보일 것이다」가 불지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