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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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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3년 01월 131호
김장하는 첫날은 화엄전 뒤쪽 채마밭에서 배추를 뽑는 일이 먼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무서리가 허옇게 내렸다. 김장하는 날에는 꼭 춥다.
가만히 있어도 입김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 산중에선 김장을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때를 놓쳐 배추나 무우에 바람이 들거나 얼어 버리는 날에는 낭패를 당하는 탓이다. 첫눈 내리기 전에 히는 일이 곧 김장울력이다.
채마밭의 배추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벌레도 먹지 않고 잘자란 배추는 포기마다 속이 꽉 찬 게 눈에 보일 정도다. 그래서 잎이 부서지지 않게 짚으로 묶어 주는 일부터 하였다. 그런 다음 배추를 뽑는 일이다.
\"칼자루를 단단히 쥐고 왼손으로 이렇게 머리 부분을 눌러 주면서 밑둥을 자르면 일하기가수월하지요?\"
원주스님이 밭일에 서툰 스님들을 위해 밭 가운데서 배추 뽑는 요령을 일러주었다. 배추가 상하게 될까봐서 걱정이 되었던 게다. 소임자들은 자기 일처럼 꼼꼼이 하는데 나는 그렇질 못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덤벙덤벙하는 게 내 버릇이다. 그리고 금방 싫증을 내는습관도 고쳐야 할 점이기도 하다.
대중울력을 해 보면 아무래도 구참久參스님네들이 빠그레 하질 않고 차근차근 하는 편이다.
우행호시牛行虎視의 공부 방법이 몸에 익어서 그럴 게다. 혼자 하면 꾀가 생겨 벌써 그만둘 일도 이러한 스님들 때문에 마음을 고쳐 먹는 경우가 많다.
배추를 뽑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밭의 배추를 큰절 마당으로 옮기는 일이 더 성가신 작업이다.
밭 한쪽에다 구덩이를 내고 무우를 묻는 일까지가 밭일이다.
다음 일은 배추를 절이는 순서. 이 또한 반나절 일이다. 많은 배추를 절이기 위해선 커다란 통이 필요하다.
한 번 쓰자고 큰 통을 여러 개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게 칸막이를 이용하는 원리. 마당 한켠에 통나무로 망치질을 하여 네모꼴로 만들었다. 다시 합판을 붙이고 두꺼운 비닐을 모양대로 깔고 나니, 물이 새는 것도 막을 수 있는 구조물이 되었다. 크기는 만들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다 만들어진 것을 보고 한 스님이“머리 좋은 스님네와 살면 손발이 고생을 덜해요’ 하고 말하여 스님네들을 웃게 하였다. 대중과살게 되면 미처 모르고 지내던 일을 새롭게 배우는 잇점이 있다.
배추를 반으로 자르는 일이 절이는 일보다 쉬울 것 같았다. 부서지거나 시든 잎을 떼어 내고 밑뿌리를 잘라내는 일도 숙련이 필요했다. 두 쪽으로 쪼갤 때마다 배추 속이 촘촘하게 드러났다. 큰 포기는 네 쪽으로 나뉘어야 두 쪽 낸 크기와 같게 되었다. 절이는 작업도 신나기는 마찬가지다.
소금물에 한 번 담궜다가 꺼내면 바로 큰 통에 차곡차곡 쌓는 일은 몇몇 스님이 호흡을 잘 맞춘다. 한 줄씩 재고 나면. “비켜요 비켜!”하면서 굵은 소금을 척척 뿌리는 것도 그렇고 소금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쪼개진 쪽을 그 위로 놓이게 쌓는 스님의 솜씨도 절밥을 하루 이틀 먹은 솜씨가 아니었다. 이렇게 절이는 일까지 마쳐야 첫날 일이 끝난다. 이튿날은 절여진 배추를 씻는 일이다. 그래서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 하룻밤을 지내면서 소금에 절여진 배추는 부피가 많이 줄어 있었다.
개울이 후원 가까이 있어서 씻는 문제는 어려움이 없었다.
물살이 돌아 흐르는 곳에 돌을 막아 작은 소沼를 하나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설명하자면, 절여진 배추를 위쪽에서 던지면 아래쪽에선 떠내려온 배추를 건져 올리는 식이다. 그리고 하나씩 깨끗이 씻는 일은 힘들고 소금기를 빼는 정도다. 그래서 절 김치에 한번씩 솔잎이나 작은 낙엽이 끼여 나올 때가 더러 있다. 개울가에서 씻는 스님네들은 모두들 추워서 혼났다.
물가에서 하는 일이라 그렇다.
씻은 배추를 후원까지 옮기는 일을 하면서 무리하게 팔힘을 쓴 탓인지 그 일을 끝내고는 팔 전체가 한참이나 후들후들 떨렸다. 김장하는 날은 쉬는 손이 없다. 행자님들도 바쁘고, 처사님들은 김장독 묻을 구덩이 파는 데 한몫을 한다. 후원의 채공보살님들은 양념 만들기에 분주하다. 양념을 버무릴 때 따로 맛을 내기 위해 청각, 생강, 당근, 미나리를 썰어 넣는다. 파와 마늘은 절집에선 쓰지 않는다. 혀를 자극하는 독특한 향이 공부하는 스님에게 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 김치는 감칠맛은 없어도 느끼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 자랑이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절 김치에 인이 박힌 까닭일까. 이제는 우습게도 세속 김치맛은 은근슬쩍 내 비위를 상하게 한다. 젓갈이나 고기를 넣지 않았다고 해서 소素김치라고도 부른다.

꼬박 이틀 동안 김장 담그는 일을 한 셈이다. 삼백 접 정도는 족히 될 듯하다. 내년 초파일때까지 햇김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겨울 안거를 지내려면 반드시 김장을 봐 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큰일로 치고 있는 것이다. 김장만 해놓으면 소임자 스님들은 겨울나기 준비를 다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한겨울엔 울력이 적다. 이제 해젯날 까지 열심히 정진하는 일만 남았다.

현진스님은 법주사 이두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송광사 율원에서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