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에 선거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행복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해 불행했습니다.
선거전은 세 후보간의 치열한 각축전이었습니다. 세 후보들은 저마다 안정과 도전과 경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결국은 안정 쪽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선거 전 날, 안정 쪽의 후보는 증권거래소를 방문했습니다. 후보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주식 시장이 활황을 이룰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선 자신에게 한 표를, 아니 몰표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증권거래소에서는 이 후보의 방문에 때 맞추어 온라인 시스템이 한동안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이 다시 작동되기 시작했을 때 그때까지 떨어지던 주가가 상승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주가 조작이라는 소동이 일어났지요. 그러나 진실 여부는 차치하고 사람들은 대체로 흐뭇해 했습니다. 왜냐구요? 이 후보가 당선이 되어야만 떨어지는 주가를 올릴 수-억지로라도-있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도덕성이나 진정성이 어디 한 끼의 밥을 먹여 줍니까? 죽을 먹여 줍니까? 중요한 것은 눈 앞에 드러나는 현실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 후보를 지지한 지지자들은 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위대한 현실 만세!\' 하고 소리쳐 불렀다는데 글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랍니다.
도전을 내세운 후보는 젊은 유권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지식인들이야 본디 ‘힘’에 철저히 약하고 변절이-죽 끓듯 하니까 -표현이 좀 심했을까요? 그렇지만 역사상 보통 사람들의 변절이 문제가 된 경우는 좀처럼 드물답니다. 어떤 이는 지식인의 이런 속성을 두고 ‘계급이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우리 역사에서 보더라도 4·19때 시위대의 맨 앞장에 선 사람들이 향후 어떤 삶을 선택했는가 살펴보면 이런 사실은 쉽게 드러난답니다 - 별 변수가 되지 못하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 후보를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히 다른 두 명의 후보들과의 차이점이었지요. 이 후보는 특히 역대 권력자들의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그 햇수가 무려 20년이 넘었지요. 그가 그 고통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데는 자신의 말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와 그 자신 민중에 대한 사랑’ 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 후보 가운데에 가장 진보주의자였지요. 경제, 사회, 교육의 여러 분야에 만재한 갖가지 부조리들을 한꺼번에 척결하기 위해서는 이 후보가 아
니면 안 된다고 이 후보의 지지자들은 믿었습니다. 당연히 이 후보에 대한두려움, 혹은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들은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노골적으로 ‘최악‘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현지의 기득권이 지대한 타격은 입는 것은 물론, 일정 부분 부정 부패와 손 잡은 댓가로 얻은 몫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역공이 이른바 색깔론이었답니다. 이 후보의 어딘가에 좀 붉은 물이 든 것이 아니냐, 노골적으로는 빨갱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전 세계의 사회주의가 패망하고 한편으로는 북방정책이라고 해서 소련이나 중국과 그토록 간절히 수교를 염원했던 현실에 비하면 확실히 이 논쟁은 구시대의 케케묵은 짓이었습니다.
어쨋든 선거 전날 명동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장미 한 송이를 나누어 주
던 이 후보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부덕한 패장은 말이 없다는 말과 함께 그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경제를 내세운 후보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내일 모레면 필순이니까요. 단순히 나이와 열정으로 따지면 이 후보의 약진은 확실히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최대 미덕은-그의 선거 공약과는 별도로-이 세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가상한
용기를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보아라, 팔순 노인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 그는 소리치고 또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의 기세가 한창 거세어져 “이거 정말 노인이 일 내는 것 아니야?” 하는 의문들이 일어났을 때 한 경쟁 후보자 측에서는 이 노인 후보를 향하여 ‘노인이라 침을 질질 흘리고 흥분하면 바지에 오줌을 질펀히 싼다’ 고 원색적으로 공격했지요. 이 공격에 대한 자질 시비는 잠시 젖혀 두고 충청도에 사시는 한 노인은 여기에 대해 “호로 상것들 같으니라구 그래 팔순 노인이 침 좀 흘리고 오줌 좀 싸는 것이 뭐가 어쨌다구 그리 요란법석이야“ 하고 적극으로 옹호하기도 했지요. 이 필순 후보는 자신만이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노라고 사자후를 터뜨렸습니다. 일수 월수표를 얻어, 끼니를 굶어 가며, 자전거를 타고 쌀 배달을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는데, 지지여부를 떠나 이 후보의 인생 역정은 확실히 남 다르고 각별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성공을 향한 집념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가지만 청문회 때인가요? 내보라 하는 국회의원들이 증인석에 선 이 후보자를 향하여 회장님은 고사하고 증인님이라 불렀던 것은 이 후보의 경제적 성공이 얼마만한 위력을 지녔는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코믹한 사건이었지요.
경제를 앞세운 이 후보는 그러나 그가 내세운 공약들에서 여태까지 자신의 삶과는 상반된 내용들을 앞세워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중소기업의 확장과 재벌 해체, 금융실명제의 즉각 실시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들은 그가 대기업군의 회장 재직시에 철저히 반대해 온 것들이었답니다. 여성 문제와 노사 문제도 이 후보에 줄곧 따라다닌 문제들이었는데 여성 문제가 에덴 동산 이후 인간 역사의 어떤 근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덮어둘 수 있다는 아량을 지닌 반면, 노사 문제는 확실히 그렇지 못했습니다. 골리앗 파동이라는 가장 대표적인 노동자 탄압을 진두 지휘한 것이 바로 그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어쨌든 이 후보는 \'애국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과반수가 넘는 득표율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을 여러 차례, 누누히, 신념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청와대에서 오 년을 다른 대통령 십오 년만큼이나 열심히 일한 뒤 서산 간척지에서 트랙터 운전수를 할 것이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후보도 낙선되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오 년을 열렬히 살지 못한 그가 서산 간척지로 돌아가 트랙터의 핸들을 잡을지는 미지수로 남게 되었습니다.
안정을 내세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식을 끝내자마자 조금 별다른 행동으로 국민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우선 한 일은 국민들에 대한 일종의 사과였습니다. 사과의 내용은 대부분 선거 운동 기간중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것들에 대한 것인데, 이를테면 끝까지 경쟁한 후보에 대한 색깔론의 제기. 필순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발언, 초원복어탕집에서의 기관장 회의. 텔레비전 토론의 불발, 증권거래소 방문 때의 주가 조작에 대한 의혹들이 바로 그런 내용 가운데 일부였는데 그는 이런 사실들이 당락 여부를 떠나 잘못된 것이었다고 \'솔직히\' 시인한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은 그의 이런 시인에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을 놀라게 한 일은 그 해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선거 운동 기간중 그가 공약한 일이 없는 사항들을 즉각 실시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우선적으로 해낸 일은 천오백명에 이른다는 해직 교사들의 완전 복직이었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인정도 당연히 뒤따랐지요. 금융실명제는 육개월의 시간을 두고 바로 실시에 들어간다고 선포했습니다 토지의 공개념 또한 좀더 엄격한 룰을 제정해 금용실명제와 함께 실시에 들어간다고 발표했습니다. 자치단체장의 선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직할시와 도. 시, 군의 자치단체장 선거를 여건을 갖춘 뒤-늦어도 일 년 안으로 실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확실히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행동들이 그의 비서진과 그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어서 그의 당선을 돕는데 앞장을 섰던 조금은 구린 데가 있는 일부 그의 지지지들을 당혹시키는 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이것 정말 된통 난 것 아냐. 고양이를 피하려다 호랑이굴로 들어온 것 같아. 아무래도 여기선 안 되겠어, 미국이나 호주로 나가야할 것 같아. 이봐, 자네도 빨리 서둘라구. 언젠가 우리 차례가 올지도몰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자네와 나는 사실 좀 구린 데가 있는 것 아냐?’하고 수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일반 시민들은 그의 일련의 \'공약파기\'를 열정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이러한 환영은 특히 도전과 진보를 지지했다 실패한 지지자들 쪽에서 더 강하게 일어났는데 그것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환영 무드는 어쩔 수 없이 안정 쪽의 후보를 지지하기는 했으나 마음 한 켠으로는 어딘가 찝찝한 감정이 남아 있던 국민들 쪽에서도 당연히 일어났습니다. 도전 쪽의 후보가 인물이나 자질면에서 더 나은 세계관을 갖지 않았는가하는 양심의 가책들이 상당히 깊게 남아 있었는데-눈앞의 조그만 이익 때문에 역사 발전 주체로서의 의무를 버리지 않았나하는-당선자는 이런 양심의 가책들을 다 씻어 주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의 모든 양심수와 장기수들을 가석방했습니다. 이인모 할아버지. 문익환 할아버지, 임수경 누나, 문귀현 신부 아저씨 등,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다 석방되어 나왔습니다. 특히 그는 임수경 누나가감옥에서 나올 때는 청주까지 직접 내려가 교도소 문 앞에서 임수경 누나를 기다리다가, 누나가 나오자 감격적인 포옹을 했습니다. 통일의 꽃이라는 찬사와 함께 말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에 대한 감사와 감동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도
다음과 같은 그의 말처럼 감동을 준 것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사십 년 오랜 친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양김’이라 불렀습니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 친구가 다하지 못한 일의 대신이기도 합니다.
곽재구 님은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함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전장포 아리랑」「한국의 연인들」 등 다수가 있고, 최근에는 참새 한 마리의 삶에도 아름다움과 꿈이 있다는「아기 참새 찌꾸」라는 동화집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