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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8 - 중국기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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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 - 혜묵 1993년 01월 131호
작년에 낙양의 용문석굴에서 만났던 선교사 한 분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부셔도부셔도 다 부술 수 없었던 불교의 찌꺼기들이-용문석굴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파과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는 불교의, 종교의 상징물처럼 보인다고. 아마도 중국인들은 저 스스로 부수어 버린 폐허를 딛고 새로운 불교를, 나아가 중국인들의 종교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다분히 감상적인, 착찹한 표현이었지만, 그의 말대로 파괴의 흔적 속에 한 조가리 돌덩어리로 남은 보살의 희미한 미소에서 불교의 새로운 가치를 새삼 발견해내는 중국인들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얼마 전 가까이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문득 내게 \"오늘이 바로 한국 사람들에게 최후의 날이 아니냐\"고 물어 온 적이 있다.
그 물음에 의아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 얼른 한국에서 벌어졌던 종교 소동에 대한 소식을텔레비전에서 보았노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길거리에서 그런 소동을 벌인 사람들로부터 호통을 당하며 봉변을 겪었던 기억이 있던 터여서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는 있던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그 이야기는 그 즈음 북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가십거리였던 모양이다. 종교하고는 상관없이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그런 종교 행위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줄 법도 한 노릇이었다.
또 언젠가는 한 친구가 통일교에 입교하여 집단 결혼을 한 일본의 유명 연예인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견을 물어 온 적도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별 관심도 없던 일이어서 별걸 다 묻는다는 투로 시큰둥했었다.
진지한 물음에 대한 반응치고는 너무나 무심해 보였던지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였다 중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종교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의도적으로 조심해 오던 터였다. 하물며 그따위 해외 토픽류의 우스갯소리에서 진지함을 찾으리라곤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경우를-매우 진지하고 집요한-몇 번 겪으면서 그들의 호기심과 의문이 정말 어렵게 나온 것이며 , 또한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그렇게 가볍게 넘겨 버릴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아직 대개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일상으로 접할 수 있는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나 지식도 비교적 제한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접했던 판단 불가능한 종교 현상을 통해 한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삶의 형태를 알고싶어 할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한국에서 온 종교인, 그리고 동종의 전문가이기도 한 당사자로부터 일차적인 정보나 직접적인 해답을 듣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런 기분들을 터득해 가면서 나는 그들이 나를 여러 유형의 종교인들과 한무리 , 곧 괴상한 종교 현상을 신봉하는 집단과 한무리라고 여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곤혹스럽고 허탈한 느낌을 갖기도 했다.
한국의 중인 내가 푸닥거리하는 선무당이나, 휴거 따위를 외치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광신자들과 동격으로 취급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야 사실 불교나 중의 영역이 정해져 있고- 어떤 것이며 얼마 만큼인지 알수는 없었지만 각 종교 사이에도 일정한 울타리들이 있어서, 서로 혼란을 빚는 경우도 드물고 따라서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기도 어렵다. 이를테면 불교의 가치 같은 것들도 사회 속에서 자기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검증이나 비판 없이 자연스럽게상식선에서 수용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런 가치를 추종하고, 추구하는 행위도 의심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불교가 있으니까 절이 있고 .해인사나 송광사가 있으니까 중들도있겠거니 하는 식이다. 불교 내부만 놓고 보더라도 다양한 성격들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로 뒤섞여 저마다 자신들의 존재 영역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큰 모순이 닥쳐오더라도, 자신의 동일성을 쉽사리 위협받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많아도 책임질 사람은 적은 것과도 같다.
절간에서 막대기를 들고 패 싸움을 벌이더라도 우리는
그들과 자신을 쉽게 이질화 함으로써 같은 불교인이라는 책임을 벗어나
다른 불교인이라는 동일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방법을 쓸 수도 있고, 오락가락하며 궤변을 늘어 놓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의 관계는 더욱 명백하다. 가끔씩 각계의 종교인들이 모여 성명서에 서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종교 사이의
이질적인 측면이 강조되기 마련이어서 ‘종교인’ 따위의 한 범주로 섞여
들어가는 데에 익숙하지 않게 된다. 기독교 내부에서 생긴 괴상한 행위들을
똑같은 종교인이니까 불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 공인된 보호막속에서-
모호하긴 해도-
저마다 편견을 갖고 저마다 통일성을 보장받고 있다.
미신이나 사이비 종교와의 비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비정상적인 종교 행위들이 존재해 온 만큼 그런 종교 현상들과 이른바 고등 종교를 분별하는 방식들도 섞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상식 밖의
행위들을 경험하더라도 종교 자체에 대한 회의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죽의 장막 저편의 빨갱이들은 모두 뿔 달린 괴물 같은 것으로 배우고 커온 세대들이다. 이제 와서 그러한 생각은 물론 따져 볼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맹랑한 편견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종말이라든지 집단 결혼한유명연예인 따위에 대한 종교인의 입장을 진지하게 물어 오는 중국인들에게도 우리가 가졌던 것과 같은 편견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 그들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빨갱이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같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필시 그들도 어린 시절부터 모든 종교 행위는 통치 계급의 사기극이라든지 나약한 인간들의 도피적인 미신이라는 따위의 말을 듣고 성장한 사람들일 것이다.
중국에는, 한국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종교에 대한 보호막 따위는 완전히 제거되어 버린 것 같다. 따라서 전문가들이든, 보통 사람들이든 종교에 대한 견해는 매우 냉정하고 견고해 보인다. 사실 그들의 내심이나 자세한 실정을 판단할 근거도 없지만-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종교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쳐 놓은 갖가지 교묘한 팔진도 따위는 애초에 제거되어 버렸기 때문에-그들의 순수하고 천진한 의문은 더 진실과 문제의 중심에 쉽게 다가가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난 뒤 한국의 종말론에 대한 그들의 질타-우스개 뒤에 담긴 질타→에 할 말을 잊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런 분명하게 변태적인 미신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 종교인인 나에게 도발적이고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던 것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한국에서 내가 사용할수 있었던 교묘한 말장난이라든지 나를 오래도록 숨겨 주었던 낡은 보호막들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러한 술수 따위를 희롱하며 비정상적인 종교 행위들에 코웃음이나 치고 있던 사이에, 어느새 그들에 의해 미신과 변태의 방조자로, 한패거리로 낙인찍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천진한 물음을 통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방치해 두고 있던 좀더 본질적인 문제들이 다시금 눈앞을 막막하게 가로막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청말 해나 달처럼, 아니 그것들보다 더 자연스럽게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렇게 고리타분하고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도 어느덧 한국에 존재하는 안전판과 보호막 안으로 돌아와 보면 그저 웃겨 넘겨 버릴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해 버린다.
쓸데없는 감상이나 주제넘은 과민 반응에 빠져 버린 꼴이 된다.
어차피 우리가 그들을 편견으로 볼 수 밖에 없듯이, 그들도 우리를 편견으로 보기 마련이다. 이렇게 저렇게 이유를 달고 말을 펼쳐, 분명한 각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는 다시 그저 그런 한 사람의 한국 중이 되고, 안락하게 존재 이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작년에 낙양의 용문석굴에서 만났던 선교사 한 분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부셔도 부셔도 다 부술 수 없었던 불교의 찌꺼기들이-용문석굴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는 불교의, 종교의 상징물처럼 보인다고. 아마도 중국인들은 저 스스로 부수어 버린 폐허를 딛고 새로운 불교를, 나아가 중국인들의 종교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다분히 감상적인, 착찹한 표현이었지만, 그의 말대로 파괴의 흔적 속에 한 조가리 돌덩어리로 남은 보살의 희미한 미소에서 불교의 새로운 가치를 새삼 발견해내는 중국인들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가혹한 비판과 거부 뒤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종교의 가치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얼마 전에 사회과학원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젊은 중국 스님이 생각난다.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여 불교사전을 만들었다고 보여주던, 단아하고 신념에 찬 목소리도 생각난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도 그들은 그렇게 출가자로서, 중국의 젊은 불교인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묵묵히 헤쳐 가고 있었다.